한국 정치는 나이가 많다. 지난해 21대 총선 당선인 300명의 평균 연령은 54.8세, 20·30대 국회의원 13명으로 전체 4.3%에 불과했다. 한국 정치는 돈도 많다. 국회의원 1인당 평균 재산액은 22억 원, 집 없는 가구가 40%를 넘는데 무주택자 의원은 단 50명뿐이다.
1988년생 권지웅은 젊다. 집도 없다. 그래서 그는 집 없는 청년들을 대변하겠다며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가 낙선했다. 몇 달 뒤, 권지웅은 '청년대변인'이란 직함으로 마이크 앞에 설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 5월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임기도 끝났다.
정치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지만, 많은 이들의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0선'에서 유력한 당권주자로 떠오른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도 2019년 저서 <공정한 경쟁>에서 "정치를 하면서 고민했던 부분이 경제적인 여건"이라며 "방송이 경제적인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줬다"고 밝혔다. 권지웅 전 대변인 역시 "직업정치인이 이런 줄 몰랐다"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불안정하고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그는 정치라는 꿈을, 가치를, 수단을 꽉 잡고 있다. '이준석 바람'을 유심히 바라보며 이준석과는 다른 정치, 이준석보다 좋은 정치를 고민 중이다. <오마이뉴스>는 7일 오전 권지웅 전 대변인과 국회에서 만나 "우리의 숙제는 '민주당이 1번으로 머물 것인가, 1-1번으로 변할 것인가'"라는, 청년 문제는 "공정이 아니라 막막함, 불안"이라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청년 정치? 말할 수 있지만, 힘이 실리진 않는다"
- 대학 시절 민달팽이유니온을 만들어 청년 주거문제 활동가로 살아오다 2020년 민주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청년정치인 권지웅'의 1년을 돌아본다면?
"지금 민주당의 과업은 '여당으로서의 정치'라 세밀한 갈등을 직접 드러내는 주체로 역할하긴 어렵더라. 지난해 10월 세월호 참사 관련 입법청원 10만 명 달성을 첫 논평 주제로 쓰려고 했다. 그런데 당내에서도 의견이 나뉘는 상황이라 숙의를 거치지 않고 논평을 내긴 어려웠다. 결국 쓰지 않았다. 비슷하게 '이런 게 정부·여당 대변인이구나' 생각이 드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누가 저를 억압했다기보다는, 거대정당의 어려움이었다."
- '여당'이라는 위치에 너무 갇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되려 이런 느낌이다. '말을 할 수는 있게 해주지만, 힘을 실어주진 않는다.'
이후에 처음 나간 논평이 소방의 날(11월 9일)에 국일고시원 화재를 다룬 내용이었다. 고시원은 소방시설이 매우 취약하고 청년이 많이 사는 곳인데, 화재가 나면 높은 비율로 사망자가 발생한다. 그 사안이 논평으로 나간다고 당장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당내에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적절히 다뤄졌는지를 보면, 힘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우선순위가 아니더라. 어떤 주거환경에 살면 좀더 높은 확률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 그런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새로운 정치, 새로운 인물이 나왔으면 하는 사람들의 목마름은 오랫동안 고여왔는데, 잘 안 나오고 있다.
"작은 선거가 많아져야 정치신인들이 성장할 운동장이 많아진다. 구의원 선거도 작은 선거가 아니다. 그보다 먼저 당 안에 정치 지망생들이 뛰어들 선거가 많아져야 한다. 민주당의 경우 제일 작은 선거라고 해도 전국청년당위원장 선거다. 각 지역위원장이 임명한 청년위원장들과 만 19~45세 청년 당원이 투표로 뽑는데, 작은 선거가 아니다. 돈도 엄청 든다. 당원들에게 인사라도 하고, 문자도 보내야 하지 않은가. 문턱이 너무 높다. 지역 청년위원장 직선제 등이 많이 생겨야 새로운 청년 정치인이 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 지역 청년위원장 직선제는 당헌당규를 바꿔야 하는 문제인가.
"지금은 '선거를 할 수 있다'고 돼있다. 지난해 딱 한 곳, 전북 청년도당에서만 경선으로 뽑았고 나머지는 다 지역위원장이 임명했다. '선거를 해야 한다'고 바꾸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이 중사, 이선호... 우리가 그 문제를 모르지 않았다"
- 국민의힘도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이준석이 등장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3~4년간 당내 리더십이 많이 무너졌다. 그런데 당대표 선거를 하며 공간이 열렸고, 20대를 계속 호명해온 성실한 정치인, 10년간 방송하며 노련미가 생긴 정치인(이준석)이 뚫었다. 하지만 민주당에는 문재인 대통령, 송영길 대표 등 강력한 리더십이 있다. 핑계 대는 것은 아니고, 국민의힘에는 리더십의 공백이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또 이준석은 온라인의 20대 남성을 정치화했다. 저희는 1인 가구, 플랫폼 노동자, 월세 사는 청년 등 '울타리밖 시민'을 조직화해내야 한다. 이 게임이 새로운 정치의 게임이다. 생각보다 (게임의 시기는) 금방 올 수 있다. (공군) 이 중사가 죽었다. 우리가 그 문제를 모르지 않았다. 직장 내 성추행이 계속 있었고 그 책임으로 리더들이 바뀌어왔다. 평택항에서 이선호씨가 죽었다. 구의역 김군부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까지. 우리가 그 문제를 모르지 않았다.
왜 계속 반복됐을까? 그걸 제1의 문제로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을 집요하게 조직하는 정치인이 있었나? 그렇지 않은 정치가 무슨 수로 그들에게 가 닿을까. 저는 (민주당이) 그런 걸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가 만들 새로운 정치다. 그 게임을 하면 해 볼 만하다. 비정형노동위원회, 세입자위원회 등을 부동산특위처럼 중요하게 가면, 저는 필연적으로 젊은 세대가 호명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 부동산특위 얘기가 나온 김에, 청년주거 전문가로서 최근 특위에서 재산세 감면 등 부동산 세제 완화 움직임이 있는 상황은 어떻게 보는가.
"부적절하다. 지금 코로나로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양적 완화 조치를 하면서 실물자산이 많이 올랐다. 그로 인해 10억 원짜리 집을 가졌던 사람은 별 일 안 했지만 10억 원씩 벌고, 그런 집을 가질 수 없던 사람들은 평균보다 훨씬 뒤쳐진, 벼락거지·알거지가 됐다. 국가는 이 격차를 완화시켜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세금 강화인데, 강화는커녕 완화하겠다고 했다. 4.7 재보선 패배로 뭔가 변해야한다는 압박에서 고민할 수는 있다. 그런데 세금 감면이 정말로 부동산 가격 증가를 완화시키는 조치인가? 아니다.
더 나아가 양극화를 완화하는 데 있어서도 (민주당) 스스로 그 수단을 버렸다. 그런 면에서도 전혀 좋은 정책이 아니다. 주택소유자만 있으면 이렇게 (국민들이) 어려울 때 재산세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40%는 주택을 소유하지 않고 있다(2019년 기준 무주택가구 43.6%). 그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또 사회 전체를 봤을 때는 그들에게 부담을 지워서 전체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그 역할을 놓쳤다. 여기에 청년이 있었을까? 세입자로 살아가는 삶이 있었을까? 저는 없었던 것 같다."
-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이 청년을 외면했다면, 청년들도 민주당을 외면하고 있다. 특히 20대 남성들은 '민주당이 페미니즘에 경도됐다'고, 20대 여성들은 '민주당은 꼰대정당'이라고 정반대 평가를 내놓는 분위기다.
"젠더문제 중요하다. 그런데 20대 남성 일부가 강하게 반페미니즘으로, 또 일부는 페미니즘으로 뭉쳐져 있다. 한편 20대는 다른 연령에 비해 무당층이 많다. 저는 페미니즘/반페미니즘 그룹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걸 것인가부터 고민하고 싶다. 계속 그 운동장(젠더갈등)이 아니라, 여성표를 끌어오는 게 이익이냐 남성표를 끌어오는 게 이익이냐가 아니라, 그 게임을 넘어서야 한다.
예를 들면 질문을 이렇게 바꾸는 거다. '20대 남성은 누구를 대통령으로 지지할까요?'에서 '고졸 청년은 어떤 대통령을 지지할까요?'로. 거기에 '민주당을 조금 더 지지하는 것 같아요'라는 답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승부를 걸어야 한다. '프리랜서 청년들은 국민의힘을 지지할까요? 민주당을 지지할까요?'라는 질문이 언론의 운동장, 사회의 운동장이 되도록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준석이 좋은/나쁜 정치인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 아까 '이준석 바람'의 원인을 국민의힘 당내 리더십의 공백에서 찾았는데, 또 다른 이유도 있을까.
"변화에 대한 선택지의 공백이다. 기호 1번 민주당, 2번 국민의힘으론 도대체 변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2-2번이 나온 거다. (유권자들이 봤을 때) 뭔가 다른 느낌, 아이콘으로 이준석이 있어서 관심을 집중받고 있다."
-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변화를 당기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그의 정치가 사회를 더 낫게 할 것이냐에는 이견이 있다. 이준석은 절차적 공정을 얘기하는데, 절차는 시험에만 있지 않다. 교육의 기회, 자산, 누구의 자녀인가 등이 많은 것을 결정하는 사회다. 국가의 역할은 이때 생기는 박탈감을 어떻게 완화시킬 것이냐다. 하지만 이준석의 정치는 그게 국가의 역할이 아니라고, 박탈감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게 공정하다는 것은 모순이다.
세계적으로 볼때, 정치는 흑인, 여성, 비정규직 등 '울타리밖 시민'을 조직하면서 새 국면을 만들어왔다. 이준석이 운동장 밖에 있는 누군가를 호명하긴 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일까? 여전히 일터에서 죽는 사람들, 월세집도 못 들어간 채 고시원과 찜질방을 전전긍긍하는 청년, 저는 그들이 울타리 밖 사람들이고, 그들을 호명해내는 정치가 사회를 바꾸리라 본다. 그런 면에서 이준석이 좋은 정치를 만들 것이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하진 못하겠다."
- 어쨌든 이준석은 하나의 아이콘이 됐고, 민주당 등 다른 정당은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바깥에서 보기엔, 아직 뚜렷한 답변이나 행동이 눈에 띄질 않는다.
"그래서 사실 이준석이 좋은 정치인일 것인가, 나쁜 정치인일 것인가는 제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숙제는 '민주당이 1번으로 머물 것인가, 1-1번으로 변할 것인가', 이것만이 있다. 이준석이 어떻게 하는가가 게임을 좌우한다기보다는, 이준석을 통해 알게 됐다. 사람들이 변화를 아주 구체적으로, 강하게 갈망한다. 1번 자체로는 안 된다."
- 청년들이 공정 문제에 가장 관심을 보인다고들 하는 데에는 동의하는가.
"공정이라는 말을 쓰는 문맥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시험을 공정하게 치르게 해달라' '할당제 때문에 너무 화가 나' 이런 식이 (본질은) 아니다. '내 앞길이 안 보인다, 내가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가 핵심이다. 거기서 '시험이라도 공정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친구도, '직장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는 거다. 어떤 친구는 '내가 배워온 것이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겠고, 새로운 것을 하자니 겁나고 막막하다'고도 하고. 그러다가 집값이 막 올라서 멘붕되고."
"공정 아니라 불안... 이제 끈질기게 청년을 호명하자"
- 그렇게 청년들이 당면한 문제들이 굉장히 다양한데, 정치권에서 전부 '공정'이라는 단어로 묶는 것도 같다.
"저는 공정이 아니라 막막함이나 불안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게 더 본질이다."
- 하지만 민주당에서조차 계속 '공정'이라고 말한다.
"하도 혼이 많이 나서 그런지, 무서워서 그런지, 아니면 이준석이 말하니까 조급함이 생긴 건지... 조금만 더 성실하게 만나면 자신감이 붙을 텐데. 저는 좀 지루해도 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도 제가 하는 것보다 당대표가 끈질기게 '그게 아니라 불안이다, 불안이다' 하면 언론에서 써주지 않을까. 그 정도 스피커는 되니까(웃음). 저는 그걸(민주당이 주도하는 프레임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지금 민주당이 만나야 할 청년은 누구일까.
"(20초 가까이 고민하다가) 어떤 호흡으로 만날 거냐가 핵심이다. 누구를 만나든 이전처럼 한두 번 만날 생각이면 다 비슷할 거다. 핵심은 그 사람을 아주 끈질기게 호명하겠다는 입장을 세우는 거다. 당내 청년이든 당과 전혀 상관없는 보통의 청년이든 상관 없다.
지금은 무서워한다. '그랬을 때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5명 정도 끝까지 만났는데 아무 것도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라고. 그런데 뭐 어떤가. 지금 누구를 만나도 아무 것도 안 나오는 판에. 이러나 저러나 해볼만 하지 않을까. 저는 그 입장을 세워야 사람들이 마음을 돌릴 것 같다. 원래 사람들이 한 번 만나자고 하면, 아무리 시간 빼서 와도 말을 안 한다. 그런데 '이 사람 할 일 없나' 싶을 정도로 또 오면 언젠가는 슬쩍 '솔직히 그때 이런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 송영길 대표가 지난 2일 조국사태를 사과한 것은 어떻게 봤는가.
"속으로 놀랄 만큼 좋았다. 법적으로 조치될 것과 별개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녀교육과 관련해서 했던 것을 매우 통렬하게 반성한다고, 그건 조 전 장관만의 문제가 아니며, 나를 비롯한 내 또래가 가졌던 것을 반성한다고. 고마운 일이었다. 어쨌든 민주당 내에선 이 문제가 역린처럼 건들기 어려웠는데 그렇게 말해준 건 아주 잘한 일이다.
이제 넘어서야 한다. 조국을 버릴 거냐, 말 거냐 그런 게 어디 있는가. 검찰개혁도 하고, 불평등도 풀어내야 하는데 왜 그게 조국 때문에 엉켜있다고 (민주당) 스스로 인정하는가. 저는 민주당이 이걸 잘 받아 안고 해소해낼 체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송영길 대표의 리더십이 훼손됐다는 게 아니라 안고가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