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족이란 무엇일까? 연재 '비정상가족은 없다'를 통해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와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사고, 출생등록제를 통해 본 위기가족, 비혼 출산 등 가족 정책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친다.[편집자말] |
30대를 마무리할 즈음 나는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혼자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생계도 걱정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문제적인 가족으로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엄청난 두려움이고 수치였다.
남부끄럽고 창피하다는 부모님 때문에 친정도 못 가고 외로운 명절을 보내는 한부모들을 보면서 이혼이 죄인처럼 움츠리고 살아야 하는 일인가 싶었고 그 원인을 찾고 싶었다. 답을 찾고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어 한부모운동을 시작했지만 공고한 인식을 무너뜨리는 걸 포기할 때쯤 해답을 찾았다.
정상과 비정상
지난 2월 9일 국민의 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의 미혼모생활시설을 방문하여 미혼모에 대해 "정상적인 엄마는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어 엄마도 (아이를) 잘 보육하기 힘들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지적 장애, 한부모라는 특성 때문에 양육이 힘든 것이 아니라, 지적장애, 한부모라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보육 정책 때문에 힘들다는 것조차 모르는 무지한 정치인임을 확인했다.
유명 정치인이 국민들 앞에서 보란 듯이 차별적 언어들을 내뱉는 걸 보았고, 세상이 조금은 변했으리라는 기대는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 나는 그분이 말한 비정상적인 엄마였던 거지.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쳐다볼 것이 두려웠던 거야. 이런 생각을 확인하게 됐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은 미혼모, 결혼을 깬 한부모들은 가족해체의 주범이었고 그 시선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미혼모에게서 자라는 것보다는 양부모가 있는 집에서 사는 게 정상적이라며 입양을 권유하고, 입양부모로부터 학대 당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아이는 양부모의 자녀로 장례식을 치르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살고 있다.
혼자서라도 잘 키워보겠노라고 하는 미혼엄마에게 아이 잘 양육하도록 격려하고 지지하기는커녕 정치인이 앞장서서 '비정상적인 여성'으로 몰아가는 차별적 시선은 부족한 양육지원체계 외에도 미혼모들이 양육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성들은 다 어딘가로 가버리고 여성 혼자서 책임지다가 결국은 입양을 선택하거나, 죽기 살기로 일과 양육을 병행한다. 하지만 가난과 돌봄의 문제를 감당못해 결국 '비정한 모정', '자기가 낳은 아이 책임도 지지 못하는 무책임한 미혼모', '한부모 아동학대'라는 제목만이 포털사이트 첫 화면을 장식한다.
불쌍한 한부모, 미혼모를 도와주어야 한다면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료품과 생활용품 후원으로 생색내는 기업. 우리 사회는 여전히 취약가족으로 대상화하는 온정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부모 중심의 '건강가정'을 실현하겠노라 어린이집, 학교에서는 아빠참여 수업, 아빠참여 운동회가 열리고, 함께 달리기를 할 아빠가 없어 운동장을 뛰쳐나온 아이는 평생 씻지 못할 트라우마를 안게 된다.
가족다양성을 부정하는 법
출산하지 않을 권리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떤 가족상황에서 출산했는지, 누구와 사는지에 따라 아이들의 인권은 땅에 내팽개쳐지기도 한다. 출산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은 편집되고, 가족 형태와 가족 상황에 따른 차별을 조장하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2004년 요보호가족의 지원을 넘어 전체 가족의 복리증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건강가정기본법'이 제정되었지만, 이 법은 앞장서서 가족다양성을 부정하고 있다. 즉,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에서는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라며 법률혼, 혈연 중심의 협소한 가족 정의를 내리고 있다. 또한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제8조), "가족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9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법률혼,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출산하지 않은 여성, 이혼이나 사별 등으로 가족이 해체된 경우를 문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조항들은 전체 가족의 복리증진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 가부장 중심의 위계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며, 가족 해체 예방이라는 미명 하에, 가정 내에서 억압적 위치에 있는 이들, 여성과 아동·청소년이 고통을 떠안게 되는 차별적이고 구시대적인 법이다.
1997년 IMF를 맞으면서 많은 가족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해체되었고 수많은 여성들이 1인 생계 가장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남편의 빚까지 떠안고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자녀를 양육하거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도망치듯 나와 새 삶을 시작한 여성들은 결국 1인 가구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혼, 출산을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선택하거나 자발적으로 비혼 출산을 선택하는 이 시대에, 건강과 비건강, 정상과 비정상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나눌 수 있는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를 때, 어떤 존재가 "비정상"으로 낙인될 때, 정상에 이르지 못하는 불능의 존재가 된다.
2020년 말 국회에 '건강가정기본법'개정안이 발의됐다. 개정안에는 '가족의 정의'를 삭제함과 동시에 '가족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말아야 하며,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족을 실천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선언적인 문구에 그치지 말고 실제로 부양, 양육, 가사노동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가족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국회는 저출산 극복 중심의 가족정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가족 내부의 평등과 이를 위한 실질적 변화를 지원하는 기본법 제정 및 사회적 가족 등 실질적인 돌봄과 친밀성을 실천하는 다양한 관계를 지원하는 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동성결혼 합법화 시도"라고 혐오를 선동하는 세력에 눈치 보지 말고, 가족다양성과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공격하는 움직임에 대해서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가족정책의 방향을 제대로 세울 것을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전영순 시민기자는 한국한부모연합 전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