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 일본으로 향했다. 7년 전 2013년, 투석을 시작한 이후 고수지(가명, 53)씨는 일본행을 준비했다. 엄마가 신장투석을 했고 언니도 투석을 시작했다. '내 차례가 오지 않았으면...' 바랐지만, 일주일에 4번, 한 번에 4시간씩 꼬박 투석을 하게 됐다. 치료를 받으면서 고혈압과 당뇨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렇게 신장장애인으로 살게 됐다.
신장장애인은 신장이 그 역할과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주로 만성신부전이나 혈액투석환자로 분류된다. 주 3회 투석을 해야 하고, 1회 투석시 약 4시간이 소요된다. 국내 병원에서는 보통 한 공간에 침대가 20~30대가 설치돼 동시에 혈액투석을 진행한다.
지난 10월 30일, 경기도 평택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고수지씨는 "언니에게 처음 일본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일본에 있는 언니는 일본이 '신장장애인에게 천국'이라고 했다는 것. 일본에서는 투석비용부터 병원에 오고 갈 때의 비용까지 모두 정부가 부담하고, 집에서 투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거기에서는 밤에 수면 중 투석이 가능하고, 24시간 운영하는 투석 병원이 있었다. 지역의 투석병원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언니는 일본에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고,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나도 다시 건강하게 살고 싶다'라고 생각한 고씨는 일본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남편이 2015년에 먼저 일본으로 향했다. 2년 후인 2017년, 고씨도 일본으로 갔다.
그가 거주했던 도쿄에서 10분거리에 있는 병원을 찾아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진행했다. 병원에서 보낸 차를 타고 갔다가 병원 차를 타고 돌아왔다. 집 안까지 바래다주는 간병 시스템도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일본에 갔지만 확진자 관리 엉망, 무서웠다"
신장장애인에게 천국이었던 일본이 코로나19 대응에는 엉망이었다. 코로나 확진자 밀접접촉자를 자가격리는커녕 그대로 방치했다. 옆에 있던 형부를 통해 그 모습을 확인했다. 지난 9월 형부는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해 밀접접촉자로 분류됐지만, 별도의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씨는 그곳에서 위험을 축소하는 분위기가 점점 실질적인 위험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괴사 문제가 생겼다. 종아리 근육이 썩어가고 있었다. 일본에서 남편이 신장이식 공여를 하겠다고 해 알아보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동맥경화에 호흡곤란, 당뇨합병증으로 일본 병원에 입원했다. 목에 호스가 있어 고씨는 다리가 이상하다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코로나로 남편인 이상호(가명)씨는 병실에 함께할 수 없었다. 의사는 고씨의 다리에 괴사가 진행하고 있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의사는 종아리에 온열 파스를 처방했다. 괴사의 속도는 빨라졌다.
'살려면, 한국으로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다시 투석이 발목을 잡았다. 입국하면 2주간 자가격리가 필수였다. 이틀에 한 번, 투석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야 했다. 한국에 있는 조카가 이리저리 병원을 알아봤다. 조카는 고씨가 일본에 오기 전의 거주지인 평택 보건소에 문의했다. '각 병원에 전화해서 알아봐야 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투석병원에 일일이 확인하라는 뜻이었다. 고씨의 조카는 병원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병원은 다시 "환자 본인이 문의해야
한다"라고 했다. 고씨는 거주지인 평택에서부터 시작해 서울, 천안에 있는 병원에 '투석여부'를 문의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수십 군데 병원에 전화하다 지쳤어요. 모두 투석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투석이 가능하다 답한 병원이 딱 한 곳이었는데, 제가 일본에서 출국 전 그 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어요. 병원이 폐쇄됐고, 출국은 미뤄졌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고씨의 조카는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리고 한국신장장애인협회를 찾아갔다. 협회는 '국립의료원'을 소개해줬다. 이영정 한국신장장애인협회 사무총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서울·수도권에서 격리투석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사실상 국립의료원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현실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만성신부전 환자 등 신장장애인이 제때 투석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 2월 23일 대구에서 발생한 국내 5번째 코로나 사망자는 신장장애인이었다. 지난 3월 경기도 성남에서는 60대 만성신부전 환자의 투석이 이틀 늦어지면서 심정지로 숨졌다. 2월 경북 경산에서 자가격리 기간 중 투석 병원을 찾지 못한 60대는 체내 요독 등이 쌓여 결국 사망했다.
한국신장장애인협회에 따르면 국내 신장장애인은 2019년 말 기준 9만 2400여명이다. 이 중 75%가 투석환자고, 나머지는 이식환자다. 신장장애인이 자가격리중일 경우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격리투석실이 별도로 마련된 병원이 거의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실제 일반 병원에서는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병실이 폐쇄돼 다른 중증 환자들도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자가 격리자에 대한 치료를 꺼리는 상황이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의 코로나19 대응 지침은 65세 이상 고령, 만성 기저질환자, 임산부, 투석 환자 등 고위험군 확진자는 중증으로 간주해 의료기관 병상으로 배정하라고 명시했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만성 기저질환에는 당뇨, 만성 간질환·폐질환·심혈관질환, 혈액암, 항암 치료 암 환자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자가 격리 대상자의 경우 확진자와 달리 기저질환을 앓고 있더라도 따로 병상을 배정하는 등의 매뉴얼은 없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에만 '신장 장애인은 기존 병원의 진료가 일시 중단될 경우 투석 가능한 병상을 파악하거나 안전한 의료 지원을 연계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정도였다.
자가격리 중에 겨우 격리투석... "신장장애인 위한 전문투석병원 필요"
지난 9월 26일, 고씨는 남편과 함께 입국했다. 한국신장장애인협회의 지원을 받아 4~5단계의 입국 절차를 무사히 마쳤다. 한국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후 그는 집에서 자가격리하며 국립의료원에서 격리투석을 시작했다. 보건소는 그에게 119를 부르라 했고, 119는 격리환자를 이동시킬 수 없다고 했다.
고씨는 다시 보건소에 문의했다. 평택 보건소는 25만원 비용을 부담하고 자가격리 택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곤란해 하자 보건소는 자가격리 중인 남편이 운전하되 고씨가 투석하는 동안 차에서 나오지 않는 조건으로 이동을 허락했다. 그는 "그마저도 고마운 배려였다"라고 말했다.
고씨의 남편 이상호씨는 1시간 30분만에 고씨를 국립의료원에 바래다주고 4시간을 차 안에서 꼼짝없이 기다렸다. 미리 빈병을 챙겨 소변을 봤다. 그리고 다시 1시간 30분 운전해 자가격리 중인 집으로 이동했다.
자가격리를 마칠즈음, 정부는 코로나1단계 완화를 발표했다. 수지씨는 집 근처의 투석병원을 다닐 수 있게 됐다. '이제 살 수 있다'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한국의 코로나 대응이 훌륭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일본과 비교해보니 더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신장장애인은요, 투석이 없으면 죽어요. 하루라도 제때 투석을 받지 않으면 버틸수가 없는 몸이에요. 이런 상황을 고려한 정책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요?"
고씨가 되물었다. 투석전문병원이 있었다면, 그는 좀 더 빨리 치료받을 수 있었을까.
이영정 사무총장은 "고수지씨의 사례는 자가격리 투석지정병원이 필요한 이유"라면서 "코로나 시기 해외입국자 중에는 신장장애인들이 존재하고 협회에 이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 격리투석이 가능한 병원이 없어 응급실에 가거나 상황이 안 좋아져 입원한 사람들도 있다"면서 "코로나 시기와 그 이후를 대비한 투석전문병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