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지 개는 응당 마당에서 도둑을 지키며 엄연히 사람과 구분되어 사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름이가 왔다. 아주 작고 뽀얀 털을 가진 4개월 된 말썽꾸러기 말티푸 구름이...
한동안 우리 집엔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아이들과 절대 안 된다는 나의 끈질긴 신경전이 이어졌다. 심지어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내가 집을 나가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개 사랑은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말끝마다 개 얘기뿐이었다. 책을 사도 개에 관한 책, TV에서도 '개는 훌륭하다', '동물농장',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고, 동네 애견 센터를 심심할 때마다 오갔다.
종일 "개, 개, 개" 해대는 아이들 때문에 머리까지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남편은 아이들이 정말 원하면 데려오는 것도 방법이라고 거들기까지 했다.
아이들도 처음에만 예뻐라 하지 종국엔 모든 뒤치다꺼리는 내 일이 될 게 뻔한데... 어쩜 다들 저렇게 쉽게 말하지 싶어 섭섭했다. 개에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점점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임시 견주'가 되다
나와 아이들 사이에 팽팽한 접전이 계속되자 남편이 임시 보호를 알아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무턱대고 개를 사주는 것보다 경험해본 후 결정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며 말이다. 아이들도 찬성이었다. 나 역시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했고, 우리 가족은 임시 보호가 필요한 강아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강아지였는데 임시 보호가 필요한 개는 대부분 나이가 있는 개가 많았다. 조건이 맞는 강아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입양이 정해질 때까지 무기한 우리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임시 보호마저 무산되자 아이들의 집착은 더 심해졌다.
때마침 강아지를 키우는 지인이 여행을 간다고 했다. 제발 우리 집에 맡겨 달라고 사정사정해서 4개월 된 강아지 말티푸 구름이는 우리 집에 오게 됐다. 구름이가 온다는 소식에 아이들은 이틀 전부터 '개 집중 스터디'에 들어갔다. 개 상식은 강형욱 버금갔다. 시간, 분, 초까지 세어 가며 구름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마침내 구름이가 오자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그러니까 그게... 무섭다고 난리가 났다.
구름이는 우리 집에 도착하자 짖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이라 불안한 듯했다. 아이들은 개 짖는 소리에 놀라 선뜻 만지지도 못했다. 아들은 삼복더위에 귀마개까지 했다. 당황한 건 아이들이나 나나 구름이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구름이가 자신에게 달려들어 놀아달라고 할짝대는 걸 겁냈고,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설득과 회유와 협박까지 하며 친해지길 강요했다. 종국엔 내가 2박 3일간 아이들의 아바타가 되어 개 엄마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본 건 많아서 구름이의 행동에 이렇게 해줘라 저렇게 해줘라 가열차게 훈수를 두었다. (자식이 웬수)
역시 강아지를 돌보는 건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배변 훈련이 아직 안 돼 있어 여기저기 오줌과 똥을 싸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또 매일 한 번씩 꼭 산책을 시켜야 했으며, 놀아달라고 짖을 땐 공을 굴려주거나 안아주고 쓰다듬어 줘야 흡족해 하며 낮잠을 잤다.
개를 키우는 것은 아이 키우는 것과 신기하리만큼 똑같았다. 우리 아이들의 아기 시절이 생각나 그때 힘들다고 못 해줬던 놀이와 애정을 구름이에게 듬뿍 쏟았다.
개를 키우는 건 책임과 의무가 동반되는 일
그렇다고 아이들을 그냥 둘 순 없는 노릇.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접촉보다 밥 주기, 배변 처리, 구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 제공 등 역할 분담을 시켰다.
"○○야~! 구름이 똥 쌌네."
"엄마~ 또 내가 해야 해?"
"그럼 누가 해? 예쁜 짓 할 때만 우리 집 강아지 할 거야? 네 동생이야. 끝까지 책임져야지."
아이는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할 일을 해나갔다. 강아지만 데려오면 세계 1등 착한 어린이가 되겠다던 아이들은 어디 가고 점차 지쳐가는 표정이었다. 구름이만 두고 친구를 만나러 갈 수도 없고, 강아지가 삼킬까 봐 장난감으로 놀 수도 없고,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까지 챙겨줘야 하니 아이들도 힘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바뀐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 누차 말했듯이 나는 개를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다. 개는 응당 바깥에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 했지만 이렇게 작고 여린 구름이에게 바깥은 춥고 위험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구름이를 데리고 산책을 할 때마다 조여진 목줄이 답답하진 않을까 걱정됐고 사람을 좋아해서 따라가는 구름이를 보고 무섭다며 피하는 사람들을 보면 섭섭하기도 했다(개가 근처에만 와도 기겁하던 나였음).
아이는 아이대로 녹록지 않은 개 언니, 오빠의 현실을 깨닫고, 나 역시 임시 견주로서 개를 대하는 자세가 많이 바뀌었다. 뭐든 장담하면 안 되는 법이다. 구름이와 함께 지낸 3일 동안 나와 아이들은 책과 티브이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것들을 몸소 부딪치며 깨닫게 됐다.
구름이를 안았을 때의 그 따뜻함, 숨 쉬는 소리, 기분 좋을 때 세차게 흔들어대던 꼬리, 날아갈 듯 힘찬 뜀박질. 나에게 구름이는 동물이 아닌 사랑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겐 사랑보다 앞선 책임이었다.
구름이는 어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새 정이 들었던 딸은 통곡을 했고, 아들은 강아지 간식 한 움큼과 자신이 아끼는 야구공을 구름이에게 주는 것으로 이별의식을 치렀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구름아~"라고 부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구름이가 정말 구름처럼 사라져 버리자 집이 텅 빈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지금도 개 키우고 싶어?"
"... 지금은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닌 것 같아요."
아이는 이렇게 대답한 후 구름이가 삼킬까봐 그동안 꺼내 놀지 못했던 레고함을 꺼냈다. 그리고 나는 구름이 진짜 엄마에게 연신 구름이의 안부를 묻고 있다.
"언니, 구름이 뭐해요?"
"구름이 지금 잘 시간인가요?"
"구름이 산책할 때 목줄 좀 길게 해줘요."
구름아, 잘 지내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