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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약 한 달이 돼간다. 국가의 지원금을 받고, 아이들의 기초 교육을 담당하는 유치원에서 말도 안 되는 비리가 벌어졌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공분을 샀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라는 사립유치원 단체가 보인 적반하장식의 반응은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상식과 원칙이 무엇이었는지를 가감 없이 내비쳤다. 아이들에게 뭐라 설명하기도 참 애매한 상황이었으나 하루빨리 유치원 문제가 정상화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언론의 집중포화와 정치권의 발 빠른 쟁점화로 사립유치원은 곧 정상적으로 운영될 것처럼 보였다. 유아교육법상 누리과정 예산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수정하고, 국가관리 회계시스템 '에듀파인' 적용,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불법 유치원 설립자나 원장의 유치원 운영에 제한을 두는 방안 등이 금방 국회의 손을 거치길 기대했다.

그러나 요 며칠 사이 나오는 정치권 뉴스를 보면 실망과 한숨이 엄습한다. 사립유치원 문제가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서 살짝 비껴간 이 시점에 반갑지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국회의 법 개정에 소극적인 일부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 때문이다.

지난 14일 한유총은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과 비공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몇몇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한유총의 입장을 지지하는 듯한 이야기를 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홍문종 의원은 "법이 잘못된 것이지 여러분이 잘못한 게 뭐가 있느냐"며 "아이들 미래가 중요한 것이니 저라도 여러분들을 위로해드리려고 왔다"고 말했다. 또 "문 닫겠다는 사람, 문 닫게 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그건 사유재산"이라며 한유총의 주장을 되풀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같은 당 김순례 의원도 "현장에서 아이들 교육을 책임졌지만 정부가 지원금 썼다고 그걸 탄압한다. 우물 빠진 사람 구하니 동냥자루 내놓으라는 것과 뭐가 다르냐"며 한유총을 옹호했다.

물론 논란이 커지자 16일 김성태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은 어떤 경우든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이건 원내대표로서 분명하게 밝힌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립유치원 문제를 둘러싼 국민들의 답답함은 여전하다. 

학부모를 포함한 국민들은 더 화를 내기도 벅차다. 그동안 목격했던 정치권의 구태가 반복되는 듯한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해결 가능성이 분명해 보였던 이런 문제조차 이렇게 흘러가는 상황에 절망을 느끼지만, 잦은 절망으로 생긴 내성이 치고 올라오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린다. 우리 수준이 이 정도인가.

우리의 정치 현실이 그러려니 하지만, 사실 이 문제를 대하는 정치인들의 태도를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다. 사립유치원 설립자 4천 명, 사립유치원 원아 50만 명. 자신의 표가 어디서 나오는지, 어떤 '스탠스(stance)'가 자신의 정치 인생을 위해 중요한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정치인들이 4천 명과 50만 명의 경중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사립유치원 문제 해결을 늦추는 정치 현실

이러한 인식과 현실의 괴리는 현재 우리가 노출된 정치 환경에서 기인한다. 첫째, 집단 이익에 매몰된 정치 문화다. 대의보다는 사사로운 이익에 갇혀 정책 문제를 대하면 안 된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자신이 속한, 또는 자신에게 금전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집단의 논리를 그대로 대변하면 안 된다.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뭉친 조직의 논리는 한국 정치의 퇴행을 이끈다.

둘째, 우리 사회 기득권의 정치력이다. 이번 사태에서 한유총이 보여준 막강한 조직의 힘은 일반 대중의 상상력을 뛰어넘었다. 또, 이번 논란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사립유치원과 지역 정치인 간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탄탄한 기득권의 힘은 권력을 가진 자와 손 잡을 때 완성된다. 그렇게 정치는 파편화되고, 민심에서 멀어진다.

셋째, 공공성에 대한 이해의 박약함이다. 사립유치원과 같이 민간이 운영하지만, 공공성을 전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신뢰와 책임, 도덕성을 우선시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관에 국민들이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원칙은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에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조속한 해결을 바라는 사립유치원 사태는 정책문제와 정책대안이 너무나 분명하다. 정책문제에 대한 이해는 긴 설명 없이 가능하다. 그리고 정책대안 선택 기준의 중요 요소인 재정적, 행정적, 윤리적 실현 가능성도 높다. 단지 정치적 실현 가능성에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현재 이 '브레이크'는 우리의 정치 현실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우리는 달라질 수 있을까?

태그:#사립유치원, #정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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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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