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그래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기상한 건 심리적 부담감 때문이었다. 오늘도 근무인지라 평소 같았으면 오전 6시 30분까지 회사에 도착해야 된다. 하지만 그 시간에 맞추자면 선친의 차례를 지낼 수 없다.
하여 나와 교대하는 직원에게 그 시간을 오늘만 1시간 반 늦춰달라고 부탁했다. "대신 다음엔 제가 2시간 일찍 바꿔드릴게요!" 겨우 승낙을 얻은 덕분에 선친으로부터 불효자 소리는 덜 듣게 생겼다.
추석을 맞아 아이들이라도 집에 왔다손 친다면 오늘과 같은 법석은 안 떨어도 되었으련만. 어제는 앞집 할머니 댁에 모처럼 화기애애의 강물이 출렁거렸다. 평소엔 혼자 사시는 터여서 적막강산이었건만 역시나 가족들이 죄 모이니 잔칫집이 따로 없었다.
손자와 손녀들이 재롱까지 떨어대는 왁자지껄의 웃음소리가 창 밖을 넘어 우리 집 거실에까지 침입했다. "저 할머니는 좋으시겠다! 우린 언제 저런 행복의 화수분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차례 음식을 만드느라 눈 코 뜰 새가 없었다.
"잔소리 말고 밤이나 까." 시간은 저벅저벅 흘러 오전 5시가 되었다. 자고로 차례는 제사와 동격이다. 그래서 목욕재계의 차원에서 전신을 깨끗이 닦았다. 아내도 나와서 차례 상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분주하게 상을 다 차린 시간은 6시 30분. 방금 지은 이밥과 소고기두부탕에 이어 술까지 올리면서 정성껏 절을 했다. '아버지,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시고 가세요.' 벽시계는 7시를 향해 줄달음질치고 있었다.
약속시간에 맞추자면 최소한 7시 20분까지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야 했다. "여보, 얼른 국하고 밥 줘!"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아무튼 정신없이 배를 채웠다. 대충의 양치질에 이어 챙겨둔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서는 순간, 아차차~ 뭐가 빠졌다!
어제의 야근에 이어 오늘 아침까지도 내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직원에게 다만 뭐라도 갖다 줘야 그게 바로 사람의 도리이자 예의 아니던가. "배 하나랑 송편도 좀 같이 싸줘." 임꺽정 주먹 만한 배와 송편이 가방이 담기는 순간 정류장으로 뛰었다.
한데 그만 간발의 차로 105번 버스가 떠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수 없지 뭐, 605번 버스로 정부 대전청사역까지 간 뒤 지하철로 바꿔 타는 수밖에. 그렇게 허겁지겁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7시 50분.
"고생하셨습니다! 저 때문에 늦게 퇴근하셔서 미안합니다." "음복주(飮福酒)라도 한 잔 하고 오시지 그랬어요?" "그럴 시간이 있간유? 차례마저 마치 전투를 치르듯 하고 온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