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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로 쓰인 원형극장
▲ 에페소 국회 국회로 쓰인 원형극장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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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보는 로마 유적? 로마유적이 있어 보았자 얼마나 있겠어. 건물터 몇 개 남아있는 거겠지.'

터키 여행 전에 가졌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에페소 유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섰을 때 당시의 거리와 건물이 내 발아래 쫙 펼쳐졌다. 그 순간 에페소만 보고 가도 나의 터키여행은 충분히 감동적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내가 로마 황제가 걸었던 길을 걷고 귀족들이 공부하던 도서관에 들어가는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것도 이탈리아가 아닌 터키 땅에서. 터키여행의 첫 날은 에페소로 꽉 차고 넘쳤다.

터키인의 노래 "아줌마 뽕 뽕 따러 가~ 세"

지난 4일. 터키여행 첫 날은 쉬린제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쉬린제는 그리스인들이 살던 마을로 과일주를 시음할 수 있는 곳이다. 오디 술을 따라주는 터키인이 노래를 불렀다.

"아줌마, 뽕 뽕 따러 가~세. 뽕 따러 가~세."

웃음이 나왔다. 어설픈 발음으로 뽕 따러 가세를 노래처럼 부르는 터키인이라니.

그리고 우린 점심을 먹으러 한국식당에 갔다. 기내에서 두 끼를 빵 두 개 먹고 버틴 둘째가 한식이라고 하니 잔뜩 기대하는 눈치다.

"한식이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가이드가 덧붙였다.

"엄마, 맛있어."

다행이다. 기대치를 낮추고 왔더니 맛있단다. 둘째가 오이무침을 열심히 먹는다. 오이무침 하나로도 저리 행복해 할 수 있다니.

요즘 좌변기와 닮은 공중화장실

점심을 먹고 간 곳은 에페소로 로마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에페소는 23만 명이 살았던 도시로 로마 시대 때 대표적으로 잘 살았던 도시란다. 에페소 인구를 23만이라 감히 지금 사람들이 예측하는 이유는 이렇다.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은 도시 총인구의 10분의 1이 들어 올 수 있게 지어졌다고 한다. 에페소의 원형극장 수용인원이 2만 3천 명. 그러니 에페소를 23만 명이 살던 도시로 예상하는 것이다. 남겨진 유적만 보아도 도시 규모가 대단했다.

처음으로 본 유적은 아고라. 국산품만 파는 도매시장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을 다 팔았단다. 이 시장에 오면 모든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단다. 한쪽엔 벤치가 놓여 있었다. 돈이 없으면 이곳에서 빌렸다. 그리고 며칠 뒤 벤치에서 돈을 갚았다. 벤치가 헬라어로 방크라고 한다. 여기서 뱅크(은행)가 나오게 된단다.

화장실
▲ 에페소 공중 화장실 화장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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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로 원형극장이 있었다.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는 원형극장이다. 공명이 잘 되는 게 중요했다. 원로원들 서기관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던 곳이다. 그리고 바실리카 거리와 공중 화장실이 있었다. 구멍이 쏙쏙 뚫린 게 딱 요즘의 좌변기다. 다른 점이라면 여럿이 같이 볼일을 보는 구조라는 것. 옛날에는 칸막이가 있었을까? 일을 보고 발아래 흐르는 물에 손을 닦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이 깨끗한 윗쪽 자리는 비싸고 아랫 부분의 자리는 싼 자리였단다. 또한, 하인들이 미리 앉아 있어서 변기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단다. 웃긴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데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관광객들에게 영어로 말을 걸고 답을 받아 적었다. 과제를 하나보다. 그런데 우리 큰아들이랑 그 학생들이랑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아들이 활짝 웃는다. 터키 학생들도 웃는다. 무슨 말을 나눈 걸까?

"왜? 무슨 이야기 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뭐 나한테 질문해도 괜찮겠네. 그래서 내가 오케이 하면 그다음 질문에 답을 못할 거 같아서 그냥 웃었어. 그랬더니 걔들도 웃더라고."
"그래서 그게 다야."
"응."

하긴 나한테 물었어도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몇 개 없긴 하다. 적극적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질문하는 아이들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보기가 좋았다.

창녀촌과 통하는 도서관 지하통로

도서관 전면이다. 네 명의 여신상이 있다.
▲ 에페소 셀수스 도서관 도서관 전면이다. 네 명의 여신상이 있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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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아래로 내려가니 약국이 있고 병원이 있었던 곳도 나왔다. 왼쪽에는 부자들의 집이 있었다. 이곳은 따로 입장권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데 우린 못 들어갔다. 아쉬웠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에페소의 대표적인 건물 셀수스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 전면이 복원되어 있었다. 네 명의 여신상이 있다. 정교한 조각들은 도서관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한껏 뽐냈다. 셀수스 도서관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총독인 그의 아들이 지었다고 했다.

그런데 도서관에는 지하통로가 있다. 어디로 통하는 지하통로였느냐 하면 바로 창녀촌으로 통하는 통로였단다. 이런 도서관에서 과연 공부가 잘 되었을까? 모를 일이다. 그런데 당시 창녀촌에선 남자가 여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골랐다고 한다. 창녀들은 시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고 한다.

설명하며 가던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불러 세웠다.

"여기 이 표시가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가이드가 가리킨 곳은 대리석 바닥으로 사람 발 모양으로 음각으로 파여 있다. 뭘까?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창녀촌에 들어가려면 여기 이 발보다 커야 들어갈 수 있었어요.여기에 발을 대보고 입장 여부를 판단한거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내 발을 대보았다. 내 발이 조금 작다. 아, 나는 입장불가다.

한 참을 걸어 내려왔다. 너른 터가 나온다. 셀수스 도서관 아래 터인데 뭐하는 곳이었을까? 바로 이곳도 아고라다. 이곳은 해외에서 수입된 물건들을 파는 상점이 있었던 곳이란다.

"바로 이곳이 실크로드의 종착지에요. 여기까지 클레오파트라가 와서 요새 말로 하면 해외명품들을 사갔다는 거예요."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간이다. 얼마나 에페소가 발전된 도시였는지 알 거 같다.

건너편에 원형극장이 있다. 가이드를 따라 들어가 자리를 잡아 앉았다. 가이드가 멀리 무대 쪽으로 걸어간다. 여태 마이크를 사용하던 가이드가 마이크를 치우고 말을 이었다.

"당시에는 마이크 같은 게 없었잖아요. 그런데도 저 끝에 있는 사람까지 소리가 들려야 하니까 공명을 이용하게 극장을 설계를 한 거죠. 자 제가 노래를 불러 볼 테니 한번 들어보세요."

마이크를 쓰고 말했던 것보다 더 잘 들린다. 소리도 맑다. 기가 막히다. 거짓말같이 소리가 잘 들린다.

저 길 아래까지 배가 들어왔다고 한다. 지금은 퇴적작용으로 물이 안 들어오지만.
▲ 에페소 저 길 아래까지 배가 들어왔다고 한다. 지금은 퇴적작용으로 물이 안 들어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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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유적 원형극장을 빠져나가면서 가이드 안내대로 한 참을 걸어간 곳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원형극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어울어진 원형극장의 모습이 무지하게 멋지다.
이렇게 번영했던 항구도시 에페소가 왜 사라졌을까? 퇴적작용으로 물이 빠지면서 항구는 없어졌단다. 지진이나 전염병으로 도시가 폐허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면서 소아시아의 아름다운 도시 에페소에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런 도시가 최근에서야 발굴 복원이 되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이 아름다운 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그리스 로마 시대로 시간여행을 시켜 준 에페소가 고마웠다.


태그:#에페소, #터키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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