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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점심 시간 교실을 둘러봅니다. 아이들은 쉴새없이 떠들고 쉴새없이 움직이지요. 그렇게 분주한 풍경 속에서 가끔은 외딴섬을 발견합니다. 아이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혼자 외딴섬이 돼 앉아 있습니다.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움추리고 있습니다. 눈빛이 슬프고 불안합니다.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궁금하고 걱정됩니다. 아이들을 집에 보내려고 할 때쯤 한 아이가 제 눈에 들어옵니다. 고맙게도 그 녀석이 나에게 먼저 손을 내미내요.

"선생님. 오늘은 좀 외로운 날이에요. 있다 청소 끝나고 남아서 선생님이랑 얘기하고 가도 되요?"

청소를 마치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자 아이들이 외딴섬이 될 때는 보통 이렇습니다. "안녕!" 하고 반갑게 인사했는데 웃어 주지 않거나 대꾸하지 않아요. 화장실을 가거나 전담실을 갈때 빼고 다른 친구랑 가지요. 내가 신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들어주는 태도가 건성 건성 시큰둥하고요. 그리고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걸 보기도 해요. 이런 일 가운데 단 한 가지 일만 겪어도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얼어붙어버리죠. 그러면서 한없이 심각해지고 슬퍼지고 위축됩니다. 그래서 나에게 "나랑 같이 놀래?"라는 말을 하며 웃으며 다가올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런 날일수록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아이도 나에게 오늘 겪은 일을 얘기하면서 친구들 앞에서 꾹꾹 눌러온 울음을 결국 터뜨려버립니다. "그 친구가 너가 인사했을 때 활짝 웃으면서 반가워해줬다면 좋았을텐데" "너가 지금 많이 슬프고 불안한다는 걸 그 친구가 좀 알고 이해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살펴줍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합니다. "뭘 하면 기분이 나아질까?"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네요. 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이는 조용히 음악을 듣습니다. 나는 "내가 힘들때 위로 받는 노래 한곡 들려줄께" 하며 옥상달빛이 부른 <수고했어 오늘도>란 노래를 들려줍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음악을 몇곡 듣습니다. 다행입니다. 아이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있잖아. 가끔은 좀 모든게 엉망이고 뒤죽박죽인 날이 있더라. 그런데 그냥 오늘이 그런걸지도 몰라. 내일이면 모든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있을지도 몰라. 쉽지는 않겠지만 오늘 저녁에는 친구들 생각 그만 하고 기분 좋게 보내. 그리고 내일 만약에 오늘 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그건 그때 가서 어떻게 할지 다시 생각해보자."

아이가 말합니다. "네. 선생님. 기분이 많이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다." 아이는 가방을 메고 교실문을 뚜벅 뚜벅 나섭니다.

다음날 수업을 마치고 나니 그 아이와 몇몇 아이들이 교실에 남았습니다. 나는 모른 척 그냥 할 일을 합니다. 아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어제 그 녀석은 눈물을 흘리고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를 둘러싸고 어깨를 감싸 토닥여줍니다. 뭐 다른 일좀 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들은 그전 모습 그대로 눈감고 술래잡기를 하고 있네요. 술래는 눈을 감고 팔을 허우적거리며 돌아다니고 다른 아이들은 웃음을 쿡쿡 눌러가며 술래 손을 피해 도망갑니다. 누군가 술래에게 잡히면 술래에게 들킬까봐 참았던 웃음이 와그르르 터져나옵니다. 나도 함께 웃습니다.

이번 일은 여러가지로 운이 좋았습니다. 그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내 눈에 띄었고 그 아이가 나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고 내가 그 손을 잡아 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흘려보낸 일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을까요? 오히려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아이를 혼내거나 꾸중해서 보낸 일도 얼마나 많았을까요?

여러 순간들이 생각납니다. 팝업으로 잡무 지시가 쏟아지고 업무 폭탄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내 눈과 손과 마음은 온통 컴퓨터를 향해있지요. 아이들이 하는 말에 귀기울이고 집중할수가 없지요. 아이들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가 없지요. 발등에 불을 꺼야하니까요. 아이들은 어쩌면 선생님은 하루종일 컴퓨터만 쳐다보다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학교가 시범학교·연구학교였을때 그리고 학교 감사가 있을 때 '나 이만큼 했어요' '나 좀 인정해줘요' 하며 있는 실적 없는 실적 다 끌어 모아 만들어야 하지요. 누군가는 학교가 시범학교·연구학교가 되는 걸 싫어하는 교사 보고 게으른 교사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쩌나요. 학교가 그런 일을 맡게 되면 아이들이 뒷전이 되는 일이 많은걸요. 그렇게 이런 저런 일로 바쁠때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데 절실한 순간인데도 "지금 선생님이 좀 바쁘거든, 시간이 10분 밖에 없어, 우리 빨리 얘기하자."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죠. 아이들은 바로 알죠. 선생님이 지금 내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다른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걸요. 그럼 마음을 열다가도 닫아버리죠.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 속이 공허해집니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은 모두 사라져버린 것 처럼 말이지요. 그런 일에 시달리다보면 나는 어느새 중요한 일조차 귀찮게 느껴지고 내가 편안한 것 그리고 내가 남에게 책 잡히지 않는게 제일 중요해져버리지요. 그리고 나를 귀찮게 하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에게 마음을 열수가 없어지지요. 그러면서 다른 존재가 들어올 마음 속 공간이 아주 좁아져버리지요.

정말…. 언제나 내 마음속에 공간이 넓직해서 내가 아이들 눈빛과 아이들이 보내는 여러 가지 신호를 예민하게 읽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가 스스로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격려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이 아이들이 따뜻한 봄날 들꽃처럼 자기 색깔과 향기를 내며 아름답게 자라는데 뭔가를 보태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참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아이들이 내 안에 들어올 자리를 남겨두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을. 괜찮은 교사인지 아닌지 평가한다는 교원평가를 앞두고 내가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기여하는 교사인지 생각하며 생각에 잠깁니다. 가슴은 자꾸 답답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먼저 올린 글입니다.



태그:#교원평가, #가르치는 이야기,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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