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경기도 내 일부 학교는 요즘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의 특별감사로 시끌시끌하다. 특별감사 대상이 되었거나, 특별감사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학교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교과부의 학교폭력 가해학생 학생부 기재 방침에 따르지 않은 학교는 특별한 감사를 받을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학교폭력관련 학교생활기록부 기재가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다며 제도의 개선을 권고하였고,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하여 여러 교육청은 교과부에 제도의 보완 및 기재보류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교과부는 시정명령 및 직권취소로 학생부 기재방침을 강제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대법원에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전북교육감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준비하는 등 법적인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관련 학부모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사회갈등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교과부와 교육청 사이에 법적인 공방이 오갈 만큼 학교폭력 가해사실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방침은 학교현장에서도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렇듯 논란이 많은 상황에서 교과부는 논란을 합리적으로 풀기 위한 노력을 하는 대신에 특별감사라는 채찍을 들고 학교현장의 굴복을 강요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이와 관련하여 교과부의 불법 및 부당성을 제기하며, 관련 사안에 대하여 교육청 방침에 따라 기재보류를 할 것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한 모든 책임은 교육감이 지겠다는 단호한 뜻까지 밝히면서 교과부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이럴 때, 학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에게 상반된 행동을 강요하는 모습이 딱 지금의 모습인 듯하다.

교장부터 담임까지... 관련교사 전원에 '출석조사' 요구

경기도 연천의 한 A고등학교는 5일 교과부로부터 한 장의 팩스공문을 받았다. "학교폭력 가해학생 학교생활기록부 미기재 관련 출석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이었다.

이미 특별감사를 받은 학교가 있는지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내용은 사뭇 다른 형태였다. 학교장뿐만 아니라 교감, 교무부장, 해당학급 담임교사 등 모든 관련교사들을 다음 날인 6일 경기도교육청으로 출석하라는 공문이었다. 모든 관련자들에게 도교육청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관리자급 교사들은 오전 10시까지, 담임들의 경우는 친절하게 해당교사별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 사이에 출석하라는 문구도 찍혀 있었다. 입시를 앞둔 고3 담임을 비롯하여, 관련한 담임들 모두 경기도 연천에서 수원까지 출석하라는 것이었다.

연천에서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수원에 다녀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해당 교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자가용으로 가도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인데,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하고 출석을 하라니?

조사할 것이 있으면 서면이나 전화통화로 하든가, 아니면 수업이 없는 관리자(교장, 교감)만을 출석시켜 조사하면 될 일이다. 학교에 큰 비리사건이 터져도 일선 교사들에게 출석 조사를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A고등학교의 해당 교사들은 큰 죄를 지어 검찰에라도 불려가듯 수업은 뒤로 미룬 채 교육청으로 출석을 해야 한다.

소년원에 가도 학생부엔 안 쓰는데... '특별감사' 협박 중단하라 

학교폭력 사실 학생부 기재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교사들에게 출석을 요구한 교과부의 공문
 학교폭력 사실 학생부 기재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교사들에게 출석을 요구한 교과부의 공문
ⓒ 교과부

관련사진보기


이주호 교과부장관에게 묻고 싶다.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방침을 따르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친절하게 "수업에 결손이 없는 범위"라고 기재하고 내일까지 출석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교사들은 수업은 뒤로 한 채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달려가야 하나? 이미 기자회견과 성명 발표로 이유를 여러 번 밝혀왔는데, 교과부가 정말 이유를 몰라서 해당 교사들을 부르는 걸까?

국민은 상식적으로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학교 내 징계'를 받고 기재되는 학생들보다 소년원에 가는 학생들의 죄질이 상대적으로 더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처벌을 받은 학생은 학생부에 기재되는데, 더 큰 죄를 지어 소년원에 다녀온 것은 학생부에 기재가 될까?

소년법에서는 소년원에 다녀온 학생들조차도 사회의 낙인을 방지하기 위해 법으로 학생부기재를 금지하고 있다. 그만큼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낙인효과'는 부정적인 요소가 있기에 법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폭력과 관련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낙인을 찍는 행위를 하겠다는 것은 무슨 논리일까? 이는 형평성 차원에서도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교과부는 특별감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학교폭력의 대책을 둘러싼 많은 해법을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하는 마당에, 교과부는 자신들의 정책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를 가장 비교육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학교폭력사실 학생부 기재 방침과 관련된 사항은 앞으로 다양한 토론회와 법정 공방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합리적으로 의견을 모아갈 수 있다. 합리적인 의견이 모아져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실시를 보류하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진정 이 나라 교육을 위한다면 기재보류 학교에 대한 특별감사 등의 보복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이성을 되찾아 합리적인 해결책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태그:#학교생활기록부, #학교폭력, #전곡고, #교과부, #교육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기도 외곽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등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