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품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야지 부동산 정책이 바뀔 것이다."이정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명예교수의 지적은 섬뜩했다. 그 누구의 '부동산 거품' 경고보다 심각하게 다가왔다. 이어 그는 "규제 완화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이 안 바뀌면,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부동산 거품으로 인해 경제 위기가 다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이 교수의 경고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장 세계 경제 위기를 추스르는 게 더 급하기 때문일까? 사람들이 이번 위기를 '금융 위기'라고 부르듯, 위기의 해소를 위해 우선 신자유주의로 엉망이 된 금융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금융 위기가 경제 위기의 원인이기 전에 부동산 거품의 결과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이 교수의 말은 쉽게 흘려들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이미 이명박 정부는 집값 폭등을 제어하던 부동산 규제를 마구잡이로 해제했다. 몇몇 지역의 집값이 들썩거리며 부동산 광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성향 부동산 경제학자들의 글을 엮은 <위기의 부동산>이란 책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책은 금융시장 붕괴에만 쏠린 시선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의 발간을 주도한 이정전 교수는 4일 오후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경제 위기의 본질은 부동산 투기"라고 강조했다.
"부동산 투기 해결 못하면, 경제 위기는 반복"
그는 특히 '부동산 신자유주의'를 경계했다. 이 교수는 "부동산 신자유주의 학자들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고, 부동산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조정된다고 주장하면서 투기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이런 생각은 무척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동산 시장은 공급이 쉽게 이뤄지지 않아 수요에 불이 붙으면 거품이 생길 확률이 높다"면서 "특히 우리나라는 20~30년 동안 빠른 경제성장으로 큰 부를 얻은 소수가 부동산 투기에 나섰기 때문에 부동산에 거품이 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는 부동산 과열 탓이 크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은행이 외채를 빌려 부동산 투기 세력에게 빌려줬다, 그러니 기업이 어렵고 경기가 침체될 수밖에 없다"며 "부동산 투기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기 위기는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 이 교수는 "규제 완화를 되돌리지 않으면, 경제가 회복될 때 거품이 끼게 돼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 교수는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서는 조세저항이 큰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보다는 토지 이용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교수는 다양한 경제학을 연구한 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토지경제학을 연구하며 부동산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왔으며,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 교수 모임' 공동대표를 맡을 정도로 환경경제학에도 관심이 크다. 또한 마르크스경제학과 행복경제학 관련 책도 펴낸 바 있다.
다음은 이정전 교수 일문일답이다.
"부동산 투기는 비합리적... 부동산 투기 용인하는 신자유주의 매우 위험"
- 최근의 세계 경제 위기의 근원을 '금융'이 아닌 '부동산'이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에서도 금융은 부동산으로 인한 거품과 그 붕괴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 부동산 투기를 잡지 않으면, 앞으로 미국경제가 살아날 때 또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미국 정부가 금융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이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얘기하는 경제 위기는 금융이 아니라 부동산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일본은 금융에 대한 규제가 강했다. 결국 부동산 거품이 생기면 나라 전체가 망하게 된다는 걸 보여준 거다. 우리나라도 부동산 문제를 방치하면 경제위기는 다시 온다. 이번 기회에 부동산 투기를 잡아야 한다."
- <위기의 부동산>에서는 부동산 신자유주의(시장 만능주의)를 경고하고 있다."부동산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는 대부분 거품을 인정하지 않는다. 시간이 가면 수요·공급에 따라 해결될 것으로 인식한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부동산 투자(투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투기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관찰한 결과, 그렇지 않다.
부동산 시장에서 사람들은 부동산이 오르면 언제까지나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누가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고 하면 영웅담이 돌고, 그걸 보고 '묻지마' 투자한다. 부동산 투기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부동산 투기를 용인하는 부동산 신자유주의는 무척 위험하다."
- <위기의 부동산>의 많은 학자들은 지금까지의 경제 위기가 부동산 때문이라고 본다.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역사적으로 경기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살펴보면 부동산 파동과 겹친다는 시각이 있다. 경기 변동의 요인이 부동산 파동이기 때문에, 부동산 파동을 잡지 않고는 경기 파동을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 부동산 가격은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 조절되지 않고 왜 거품과 파동이 생기는가?"우선 부동산은 다른 상품과 달리 공급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수요에 불이 붙으면 거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빠른 경제성장으로 얻은 부가 소수에게 집중된 것도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졌다. 많은 돈을 가진 소수가 투자할 곳은 부동산밖에 없다. 부동산 거품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미국발 경제 위기 오기 전, 이미 부동산 투기로 우리 경제가 어려웠다"- 미국과 일본은 부동산 거품 생겼다가 꺼진 후, 경제 위기가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부동산 거품으로 인한 위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역대 정부가 건설 경기를 부양하면서 부동산 과열이 왔다. 1990년대 중후반 거품이 계속 쌓이고 있어서 곧 일본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뻔 했지만, 'IMF 사태'로 거품이 더 쌓이지 않고 진정됐다. 이번에도 세계 경제 위기가 닥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몇 년 후 거품 붕괴로 일본과 같은 사태를 맞이했을 것이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 미국·일본 외에는 '부동산 발' 경제위기를 겪은 나라가 많지 않아 보인다."60~70년 전, 유럽에서 개발 붐이 일어나 경제가 성장하고 땅값이 많이 올라갔다. 당시 부동산 때문에 경제가 흔들리자 바로 조치를 취하고 대응했다. 독일은 국토의 많은 곳을 그린벨트로 묶었다. 영국도 개발할 때 규제가 심했다. 원천적으로 부동산으로 재미 못 보게 했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토지 이용을 규제하는 제도들이 정착돼 부동산 투기 문제가 상당히 해소됐다. 유럽에 비해 토지이용이 굉장히 자유로운 우리나라나 미국·일본은 부동산 거품으로 큰 피해를 봤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토지 이용이 더 자유롭다는 거다."
- 현재 우리나라 경제 위기를 '미국 발'이 아닌 '부동산 발'이라고 볼 수 있나?"우리 자신의 책임(부동산 투기)도 크다. 'IMF 사태' 이후, 경제가 회복하면서 부동산 투기가 일어났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외채를 빌려 기업이 아닌,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들한테 빌려줬다. 이게 말이 되나? 이 돈이 기업 활동에 쓰이지 않으니 기업이 어려워지고, 경제가 침체됐다. 미국 발 경제 위기가 오기 전, 우리경제는 이미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 위기는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경제 위기 본질은 부동산에 있다. 지금 부동산 규제를 강화해서, 나중에 경기가 살아날 때 돈이 부동산 투기가 아닌 기업 활동에 돈이 들어가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돈이 부동산으로 가면 경제가 살아나도 살아나기는커녕, 또 위기를 겪을 수 있다."
"규제완화는 많은 이들의 죽음과 절망을 예고"
-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해법은 반대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 자체가 규제완화다."역주행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밀고 있는데, 녹색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생산할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해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녹색산업이 성장한다. 앞뒤 모순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걸 모르는 것 같다."
- 이명박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완화 등 부동산 시장에서 규제완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나?"돈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지만, 당장 정부가 예상하는 부동산 활성화로 이어질 수 없다. 가수요는 경기 전망에 따르는데, 경기가 회복되기 위해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문제는 지금의 규제완화는 앞으로 경제가 살아날 때, 부동산 거품을 일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때 가서 규제 강화를 하면 된다고 하는데, 나라 정책이 장난인가?
더 큰 문제는 거품이 일어날 때 규제를 다시 강화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거다. 그때는 여럿 죽어야 한다. 노태우 정부 중반, 집값이 크게 오르고, 전세가격도 뛰면서 많은 사람들이 쫓겨나고, 자살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서야 토지공개념 법이 통과됐다. 지금의 규제완화는 결국 많은 이들의 죽음과 절망을 예고하고 있다."
- 부동산 거품도 문제지만, 거품이 꺼지는 것도 문제다. "거품이 언제 꺼질지 알 수 없다. 미국의 경우에도 거품이 팍 꺼지면서 우르르 무너졌는데, 아무도 예측 못했다고 하지 않나. 소득 수준 대비 집값 등은 지역마다 다르니 거품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없다. 단, 거품은 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거품은 언제 꺼질지 모르기 때문에 더 무섭다."
- 부동산 거품을 경계한 노무현 정부도 결국 집값 폭등을 야기했다. 부동산 투기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있나?"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등 조세제도로 부동산을 잡는 방법은 조세 저항 때문에 한계가 있다. 노태우 정부 때 개발이익을 50% 환수하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1년 뒤 사라졌다. 역사적으로 조세제도를 통해 성공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잡은 경우는 거의 없다.
독일처럼 토지이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 때 많은 지역을 그린벨트로 지정하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국가가 도시를 개발할 때, 매입한 토지를 민간에 팔거나 분양하지 않고, 임대한다면 개발이익을 차단할 수 있다. 독일은 가능한데,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