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볼 때마다 바느질을 하고 있다"는 남편의 말에 박은정(45)씨는 "나중에 내가 바느질로 돈 벌어올지 어떻게 알아?"라고 답했다고 했다. 그 말은 실제로 이뤄졌다. "전문적으로 바느질을 가르쳐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그래볼까?' 생각했던 게 계기였다고 했다. 문화센터 바느질 강사를 하게 된 박씨는 2016년부터 경기도 수원시 매탄동에 위치한 '더데이지카페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카페와 바느질공방을 함께 하고 있는 곳이다. 공방에서는 직접 만든 제품을 판매하고 수업을 진행한다.
그는 가게를 운영하며 "사람들과 정을 나눌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한다. "(상대와) 대화할 시간이 많다"는 것을 바느질의 매력으로 꼽는 그는 "(본인 얘기를) 어디 터놓을 데 없는 분들이 여기 와서 얘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단지 얘기를 들어드릴 뿐"이었는데 "너무 감사하다고, 덕분에 우울증이 많이 치료됐다고 말해주시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공방 수강생 분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 좋아서 코로나 전에는 '맥주 한 잔 사드릴까요?' 여쭤보고 저녁에 맥주 한 잔씩 먹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남는 건 사람"이라고 계속 강조했다. 그가 "인색하지 않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손님이 오랜만에 찾아와 "여기에서 계속 공부했는데 이제 취직됐다"고 말한 후부터는 "오래 자리 차지하고 공부한다고 뭐라고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공부하는 분들이 있으면 과자라도 하나 드린다"며 웃었다.
역으로 그가 힘든 상황에서 그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한 공방 수강생은 그가 경제적으로 상황이 안 좋았을 때 2000만 원을 이자도 없이 빌려주었다고 했다. "항상 내가 해주는 음식을 먹어야" 했던 남편도 동네 사람들로 인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더데이지 사장님 장사 너무 잘하고, 봉사도 많이 하더라"는 얘기를 들은 것을 계기로 남편이 그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이제는 밥 차려주려고 하면 '얼른 가게 가'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했다.
취미로 시작한 바느질이었지만 나만의 공방을 열고 난 뒤 그 안에서 사람을 위로 하고 위로 받고 있다는 박은정씨. 자신의 가게가 "누구든지, 언제든지 와서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사랑방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를 지난 8월 16일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 어떻게 가게를 열게 되셨나요?
"26살부터 문화센터에서 바느질 강사로 일하다가 인수 제의를 받아서 공방을 직접 운영하게 됐죠. 문화센터 하면서 재밌었어요. 문화센터 선생님들끼리 굉장히 끈끈했거든요. 홍보도 전단지 일일이 돌리면서 같이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등산도 가고요. 그러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문화센터를 그만뒀어요. 2~3년 정도 쉬고 2016년에 바느질 공방을 시작했는데 문화센터 선생님들이 공방에서 강사로 함께 해주고 계세요.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죠. 거의 가족이에요.
그렇게 공방만 쭉 해오다가 지금은 카페를 겸하고 있어요. 공방과 카페를 같이 운영해 보고 싶다는 로망이 항상 있었거든요. 뭔가 아늑한 느낌이랄까요. 나이가 들어 머리가 뽀얘져서도 카페에서 바느질하는 제 모습이 그려졌던 것 같아요. 카페 일은 친언니가 도와주고 있어요. 여긴 차 마시면서 취미 삼아 바느질 하시려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직접 바느질한 제품도 판매하고 있고요."
- 오랫동안 바느질 관련된 일을 해오셨는데, 원래 이 일이 꿈이셨나요?
"아뇨. 어렸을 때는 현모양처가 꿈이었어요. 다만 어렸을 때부터 양말로 인형 옷 만들고 그런 걸 좋아했어요. 엄한 양말 잘라서 엄마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고요(웃음). 취미로 계속 바느질을 했는데 주위 분들이 전문적으로 바느질을 가르쳐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볼까?' 싶어 시작한 게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왔네요. 전에 남편이 '너는 볼 때마다 바느질을 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내가 이걸로 돈 벌어올지 어떻게 알아?'라고 대꾸했는데 그 말이 진짜가 됐어요(웃음)."
- 바느질의 매력이 궁금해요.
"힘들 때 바느질을 하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안 나요. 마음이 안정된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바느질을 하다 보면 (상대와) 대화할 시간이 많아요. 그래서 (본인 얘기를) 어디 터놓을 데 없는 분들이 여기 와서 얘기를 많이 하세요. 집안일 얘기도 하고 자기의 심리 상태 얘기도 하고요. 제가 우울증이 있다든지 심리적으로 안 좋은 분들과 희한하게 잘 맞아요. (상대 말에) '그건 아닌 것 같아요'라고 하기보다 '아 그래요?'라고 맞장구치죠. 대화를 나누는 게 저한테도 도움이 돼요. 수강생 분이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서 얘기를 털어놓으면 저도 비슷한 일들이 생각나잖아요. '저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라고 말하면서 (제 앙금이) 같이 풀리더라고요.
수강생 분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 좋아서 코로나 전에는 '맥주 한 잔 사드릴까요?' 여쭤보고 저녁에 맥주 한 잔씩 먹었어요. 가끔은 같이 산에도 가고요. 그 중에 몇 분은 너무 감사하다고, 덕분에 우울증이 많이 치료됐다고 말하시더라고요. 저는 단지 얘기를 들어드릴 뿐이었는데요. 오히려 제가 힘들 때 아무 조건 없이 도움을 받았죠. 제가 (경제적으로)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았을 때 한 수강생 분이 '선생님 제가 돈 빌려줄게요' 하면서 2000만원을 이자도 없이 그냥 빌려주셨거든요. 누가 그렇게 해주겠어요. 너무 감사했어요."
-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남편과의 소통 문제가 제일 힘들었어요. 남편은 항상 제가 해주는 음식을 먹어야 되거든요.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는 다섯 시 땡 하면 집에 갔어요. 남편 밥 챙겨줘야 하니까요. 그러고 다시 가게 나왔죠.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하고 가게일은 가게일대로 한 거예요. 그런데 남편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바뀌더라고요. 사람들한테 제 얘기를 들으면서부터였어요. 남편이 동네 식당 같은 데를 가서 '아 데이지 사장님 알지. 그 사장님 장사 너무 잘하고, 봉사도 많이 하더라' 이런 식의 얘기를 여러 번 들었나 봐요. 그걸 계기로 저를 인정해주게 된 거예요. 이제는 혼자 밥 차려 먹을 수 있을 정도까지는 됐어요. 제가 밥 차려주려고 하면 '얼른 가게 가'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주위 분들이 저한테 도움을 주신 거죠."
- 가게 운영을 하는 데 있어 사장님만의 목표가 있을까요?
"인색하지 않고 싶어요. 제가 가게에서 '바느질 수다노리'라는 모임을 하고 있는데요. 마을 분들과 바느질 하면서 소통하는 모임이에요. 일종의 재능기부죠. 주민센터 동장님이 해 보라고 권유하셔서 시작한 건데 하다 보니까 또 재밌더라고요. 솔직히 가끔은 '이걸 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지금 뭐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잠깐이고 돌아서서는 또 '이번 모임에서 뭐할까' 그런 생각을 해요.
하다못해 카페에서 손님들이 음료를 주문할 때도 최대한 많이 주고 싶어요. 최근에 아로니아 청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팔지 않고 그냥 나눠줄 생각이에요. 언니가 저보고 '야, 돈 좀 벌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사람들도 저한테 맨날 이렇게 퍼줘서 남는 게 있냐고 하고요. 그래도 사람은 남잖아요? 그거면 됐어요. 나누면서 오가는 정, 저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 특별히 인상 깊었던 손님이 있나요?
"작년에 꾸준히 카페에 오셨던 손님이 있었는데요. 매번 오셔서 오전부터 오후까지 꼬박 공부하고 가셨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어느 순간 그 분이 안 보이더라고요. 그러다가 몇 달 전에 그 분이 오셨어요. '사장님 저 혹시 기억나세요?'라고 물으면서 자기가 여기에서 계속 공부했는데 이제 취직됐다고 말하더라고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때 이후로 여기에서 공부한다고 뭐라고 하지 말아야겠다, 다들 좋은 기운만 받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이제는 공부하는 분들이 있으면 과자라도 하나 드리고 그래요(웃음).
감사한 손님들이 정말 많아요. '밥 못 먹었지?' 하면서 김밥 사 오시는 분도 있고요. '나 혼자 먹을 때는 아무 데나 가는데 손님 모시고 올 때는 항상 여기로 오게 돼. 좋은 사람들은 여기로 데려와'라고 말해주시는 분도 있어요."
- 손님들에게 이 곳이 어떤 공간이었으면 좋겠나요?
"저는 항상 남는 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기는 사랑방이라고 말하고 다녀요. 누구든지, 언제든지 와서 편하게 있으라고요. 힘들 때 와서 대화하고, '지나가다가 생각이 났어'라며 쉽게 들를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