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들어오지 않는,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에게는 애초 지급되는 세비·수당 전액을 빼앗는다. 짝수달 임시국회 개최를 강제화해 국회가 상시로 열리게 한다. 그럼에도 만약 특정 정당(교섭단체) 국회의원이 소속 정당에 따라 의사일정 협의를 거부·기피하거나 교섭단체 간 합의한 의사일정에 불출석하는 경우, 관련 법상 규정된 국회의원 수당·입법활동비·정책개발비 등은 지급하지 않는다. 이미 지급한 경우엔 해당 금액을 국회가 돌려받는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중랑구을·재선)이 대표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기초해 그려본 미래다. 산불·지진 등 재해·재난 관련 추가경정예산, 민생법안 처리 등을 미뤄둔 채 국회는 80일 넘게 파행 중이다. 자유한국당이 4월 말 여야 4당이 진행한 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철회를 요구하며 의사일정 참여를 거부하는 탓이다. 민주당에 따르면 한국당의 보이콧은 20대 국회에서 벌써 17번째지만, 현행법상 이를 막을 법적 제재나 규정은 없다.
국회 복귀는 거부하면서도 일부 상임위·윤석열 검찰총장 내정자 청문회 등에 선별 참여하겠다는 한국당을 향한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다. 한국당이 24일 여야3당 원내대표 합의를 2시간여 만에 백지화하자 비난 여론은 더 커지는 모양새다.
박 의원처럼 '국회 불참' 의원은 세비를 주지 말자거나('툭하면 보이콧, 반쪽국회 방지법'), 관련 정당의 국가보조금을 빼앗자는 법안이 발의되는가 하면(정성호 민주당 의원, '국회 파행 방지법'), 민주평화당은 "한국당의 끝없는 파업에는 국민소환제가 답"이라며 '국민소환제' 법안을 발의하고 이를 당론으로도 채택했다(황주홍 의원 대표발의, '국회의원의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 제정안').
핵심 내용은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을 그냥 두지 말자는 것이다. 박 의원은 2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벌써 80일 넘게 국회가 놀고 있는데, 이를 초래한 정당·의원에 대한 페널티(penalty:벌칙)는 현행법상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쟁·대립으로 인해 장기간 국회가 쉬게 되면, 민생법안 심사·의결과 예산심의 등이 멈춰 결국 국민만 피해를 본다. 제대로 일하지 않는 교섭단체와 국회의원에겐 벌칙을 줘서 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의원은 현행 법으로는 한국당 '독주'를 막을 수 없고, 한국당 탓에 국민뿐 아니라 다른 정당들이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당이 의사일정 합의를 거부하거나 회의에 불출석하면서 다른 당 의원들까지 일을 못 하게 만들고 있는 게 문제"라며 "상임위를 열면 한국당뿐 아니라 국회사무처·부처 공무원·다른 당 의원들도 모든 일정을 접고 대기한다. 그런데 한국당은 '당 차원의 지침'이라며 회의하다 말고 나가버리는 게 다반사였다"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관훈토론회에서 "반드시 국회를 열게 만드는, 지긋지긋한 국회 파행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것도 박 의원의 문제의식과 같은 맥락이다.
박 의원은 "한국당 의원들은 말로만 '민생, 민생' 외칠 게 아니라, 국회에 들어와 의원들에 맡겨진 일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회 문을 걸어 잠가 민생을 마비시키는 상식 밖의 행동을 멈춰야 국민들이 그 말을 믿을 수 있다"며 "싸울 때 싸우더라도 국회 안에서 하자는 거다.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강조했다.(관련 기사:
영국이라면 국회의원 50명은 '소환' 당했을 텐데)
다음은 박 의원과 한 전화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한국당, 벌써 17번째 보이콧... 다른 정당 의원까지 일 못 하게 만들어"
-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에게 벌칙을 주는 '반쪽 국회 방지법'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에는 일 하지 않는 국회의원에게 벌을 줄 근거가 없다. 정당별로 공천 과정에서 회의 참석 등 여부를 심사하거나, 시민단체가 이를 평가해 상 주는 경우는 있어도 벌칙은 없다. 벌써 80일 넘게 국회가 공전 중인데, 한국당 의원들과 지도부를 만나보면 말로는 '국회 열자, 민생 챙기자' 해도 자기들 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의사일정 참여를 거부한다. 한국당이 보이콧을 계속하면서 국민들의 국회 불신을 더 가중시키는 것도 문제다.
한국당 보이콧이 20대 국회에서만 벌써 17번째다. 해도 너무한다. 민주당도 과거 국정원 댓글사건 때 서울시청 광장에 천막치고 농성을 했지만, 국회에 한 달 반 만에 복귀했다. 한국당이 (패스트트랙을 저지하며) 물리적 방해를 통해 자기들이 통과시킨 국회선진화법을 어겨놓고,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으로 오히려 이를 '철회하라'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주장이다. '의회 불이 꺼지지 않아 국민들이 안심하고 잔다'는 영국처럼, 한국도 상시로 국회를 열자는 게 법안의 골자다."
- 이인영 원내대표도 관훈토론회에서 '국회 열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비슷한 문제의식인가?
"골자는 비슷하지만, 이 원내대표와 따로 상의한 건 아니었다. 당내 을지로위원회(박홍근 위원장)가 로텐더홀에서 국회정상화를 촉구하며 지난주 월요일부터 농성을 했었다. 그때 한국당·민주당 의원들을 두루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걸 법적 제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당 관훈토론회가 열린 날, 마침 지역구(중랑구)에서도 행사가 있었는데 거기서 한 시민이 제게 '국회의원도 무노동 무임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 게 결정적이었다.
국회에 안 들어오면 수당·세비를 주지 않겠다는 법이 생기면, 일부 돈많은 의원들이야 개의치 않을지 몰라도 대부분 의원들은 자세가 달라질 거다. 어쨌든 '들어와서 싸우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당은 자신들이 위원장·소위원장을 맡은 상임위에서 의사일정 자체를 합의해 주지 않거나, 회의에 불출석하면서 나머지 다른 정당 국회의원들도 일을 못 하게 만들고 있다. 그건 일종의 횡포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을 장치를 만들자는 거다."
- 세비를 안 주는 데 대한 국민적 공감은 있겠지만, 국회의원들 반발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국회의원이 스스로 자신을 옥죄는 내용의 법안에 불편할 수는 있다. 이 법안에 대해 24일(어제) 30분 만에 14명 의원들로부터 서명을 받았는데, 어떤 의원은 '저는 이런 부류의 법안엔 회의적이지만 이번만큼은 참여하겠다'고 하더라. 이 법안은 우리(국회의원)를 위한 게 아니고 국민을 위한 법이다. 일반 국민들은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국회의원이 예외인 건 특권이라는 거다.
그런 특권은 과감하게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 보이콧(의사일정거부)과 같은 강도 높은 투쟁 방식이 당장 단기간에는 정치적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국회 전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더 가중시키게 된다. 그런 불신을 없애고, 국회의원으로서 최소한 기본은 하자는 것이다.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본다."
- 시행을 위해선 법안이 상임위와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상징적 의미는 크지만, 통과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나.
"국회가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것처럼,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그 이상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번 (임시)국회 때 처리는 어려울지 몰라도, 이 법안 통과를 위해 저는 계속 적극적으로 노력할 거다. 선진화법이 그랬듯 이 법안 또한 특정 정당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문제가 아니라, 국회 전체를 일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의 책임을 규정하는 법이다.
결국은 국민 여론이 중요하고, 국민적 지지가 있어야 법안이 통과될 수 있다. 음주 운전을 방지하는 '윤창호법'도 그렇고, 결국 문제가 불거지고 국민적 여론이 조성돼야 국회가 움직인다. 국회 운영이 그렇게 다소 소모적인 데가 있다. 국회 안에서 이런 법을 만들고 다른 의원·정당을 압박하는 건 의원들 몫이고 이를 알리는 건 언론의 일이지만, 국민들도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