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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만든 '수능 상황별 대처 시나리오' 내용 가운데 지진 행동요령.
 교육부가 만든 '수능 상황별 대처 시나리오' 내용 가운데 지진 행동요령.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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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시험장에서 '상당한 진동의 지진이 발생한 경우' 감독관이 수험생들에게 책상 아래 대피 지시를 내리기 전, 해야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답안지 뒷면이 위로 오도록 답안지를 뒤집으라"는 것이다.

수능 시험장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감독관은 수험생들에게 안전지대 대피 지시를 내리기 전, 해야 하는 말이 있다. "응시생 간 대화 등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 부정행위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학생 안전'보다 '답안지 안전' 먼저 생각한 매뉴얼"

교육부가 지난해 새로 추가한 지진 등 대비 '수능 상황별 대처 시나리오'대로라면 이렇게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학생들의 '피해 방지'보다는 '커닝 방지'를 앞세운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부 교사들은 "학생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황당한 매뉴얼"이라면서 비판하기도 했다.

김상곤 교육부장관의 수능 연기 발표 전인 지난 15일 오후 서울지역 한 사립고교 교무실. 이 학교 교무부장이 위 내용이 담긴 수능 대처 시나리오를 읽어 내려갔다. 시험 감독관을 겸해야 하는 이 학교 교사들 상당수는 갑자기 "와~" 소리를 내며 야유를 보냈다고 한다.

이 학교 한 교사는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리고 화재가 났는데 답안지를 뒤집으라든가, 대피하면서 옆 사람과 대화하지 말라고 먼저 지시하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면서 "게다가 대피의 경우 서로 의사소통을 통해 안전한 장소를 찾는 것이 중요한데 커닝 방지를 위해 이조차 차단하다니 교육부의 안전 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16일, 기자가 경북교육청이 지난 10월 일선 고교 등에 보낸 '2018학년도 수능 상황별 대처 시나리오'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위와 같은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 교육청은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포항지역 학교를 관할하고 있다. A4 용지 18쪽 분량의 이 시나리오는 교육부가 지난 해 '지진 대비' 항목을 추가해 만든 내용을 올해에도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교육부와 경북도교육청이 만든 시나리오에는 "(지진 진동이 멈춘 뒤에도) 감독관 지시에 불응하고 외부로 이탈하는 수험생은 불가피하게 시험 포기로 조치"라고 적어놓았다. 자칫하다간 골든타임을 놓쳐 대형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내용이다.

'지진 대피'하면 '시험 포기'?..."교육부 수능 시나리오 다시 만들어야"

15일 교육부가 공식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삭제한 내용.
 15일 교육부가 공식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삭제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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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교육부는 지난 15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수능당일 지진 발생 시 행동요령'이라는 글에서 "시험 속개가 가능한데도 외부로 이탈하는 수험생은 불가피하게 시험 포기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적어놓기도 했다. 이후 항의 댓글이 달리자 이 내용을 삭제하기도 했다.

임정훈 경기도인권교육연구회 간사는 "교육부가 어떻게 '지진 대피 학생'이 곧 '시험포기 학생'이라는 내용을 지진 안전조치랍시고 홍보할 수 있는 것이냐"면서 "커닝 등 시험부정 방지만 앞세우고 학생 안전은 뒷전인 교육부의 수능 대처 시나리오는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태그:#지진 수능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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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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