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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내는 바쁘다.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의 작가 겸 대표로서, 지역 중학교의 마을 교사로서, 그리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파견예술인 등으로서 지역 곳곳을 누비고 있는 중이다.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아내는 출퇴근 시간이 고정적인 나보다 늦게 귀가하는 일도 잦아졌다.

오늘도 회의 때문에 늦어지는 아내.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뉴스를 보고 있는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며느리가 바빠졌다는데, 당신 아들이 제대로 아이들을 건사하고 있는지 궁금한 탓이었다.

아내가 바쁠 수 있는 이유

"까꿍이 엄마는 아직 오지 않았니?"
"요즘은 저보다 바쁘잖아요. 제가 먼저 퇴근해서 아이들 챙기고 있어요."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힘들지 않아? 내가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그래도 좀 도와줄 텐데."
"에이. 괜찮아요. 이제 다 컸는 걸. 우리가 아이를 보나. 첫째는 학교가 보고, 둘째, 셋째는 어린이집이 봐주지."
"그래? 그럼 다행이고. 어린이집이 늦게까지 아이들을 봐주나 보네?"
"어린이집은 국공립이라 아이들을 7시 반까지 봐줘요. 저하고 아내하고 스케줄에 맞춰서 번갈아 픽업해오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모두 국공립 유치원, 어린이집 출신
▲ 열심히 자라고 있는 아이들 모두 국공립 유치원, 어린이집 출신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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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지금까지 아이 셋을 집에서 돌보던 아내가 자신의 역량을 살려 마을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국공립 어린이집을 다니기 때문이다. 아이를 셋이나 낳아 기르며, 박봉이지만 부모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국공립 어린이집 정도의 시스템이 필요로 하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국공립 어린이집이 아니라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그 적지 않은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나는 현재 몸담고 있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대신 영리기업을 다녀야 했을 것이며, 아내도 빠른 하원 시간 등 때문에 현재 하고 있는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은 우리가 원치 않은 사교육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우리 부부는 연말이 되면 다시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수많은 학부모들과 함께 모여 앉아 추첨용 번호공을 뽑아가며 탄식의 한숨을 내쉬고 있겠지.

사립유치원들의 엄포

사립 유치원, 집회
 사립 유치원, 집회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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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모자라 많은 부모들이 부득불 사립유치원을 이용하고 있는 현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아래 한유총)가 오는 18일과 25일~29일까지 총 6일 집단 휴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공립유치원의 원아 비율을 지금의 24%에서 2022년까지 40%로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2차 유아교육발전 5개년 기본계획'을 준비하자, 사립유치원들의 위기감이 극에 달한 것이다.

그들이 내건 조건은 간단하다. 사립유치원에 대한 정부지원금 확대와 국공립유치원 증설 반대. 한유총은 국공립 원아들에게는 98만 원이 지원되지만 사립 원아들에게는 22만 원만 지원되고 있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사립유치원들의 휴업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일견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 유아들이 계속해서 줄고 있는 가운데 국공립유치원들이 늘어난다면 그들의 존립 자체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몇몇 유치원들은 아무리 비싸더라도 자체적인 경쟁력으로 원생들을 모집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립유치원들은 국공립유치원을 가지 못한 부모들이 차선으로 선택하는 곳 아니던가.

사립유치원들의 착각

그러나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육과 육아가 사립유치원들이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자신의 이야기만 주장할 만큼 녹록한 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이 모든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것인데, 보육과 육아의 문제는 부모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 중에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가는 아이를 낳으면 여러 혜택을 준다고 홍보하지만 오히려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다. 보육과 육아 등에 필요한 비용이 사회가 지원하는 비용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에 아이를 안 낳는다고도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이야기일 뿐,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결국 돈 때문이다.

따라서 보육과 육아와 관련하여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구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보육과 육아에 대한 지원이 필수적이라면 그것은 곧 국가의 책임이며,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국공립유치원의 확충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결과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사립보다 비용이 적은 국공립유치원을 원한다면 국가는 이에 대해 답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사립유치원들은 국공립유치원 확충 대신 자신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듯 주장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사립이 국공립만큼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운영 목표를 영리추구가 아니라 공공성에 맞추어야 하며, 그동안 자신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자율성과 독립성을 포기해야 한다. 정부로부터 지원은 지원대로 받되, 유치원 운영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한다면 과연 어떤 부모들이 사립유치원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당장 유치원 교사만 해도 월급의 경우 대부분의 사립이 국공립보다 낮은 편인데, 사립은 결국 그 인건비 차로 수익을 늘리고 있지 않은가.

덕분에 아빠랑 더욱 친해지는 아이들
▲ 엄마가 바쁘다 덕분에 아빠랑 더욱 친해지는 아이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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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현재 한유총은 아직까지 휴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엄중한 처리를 선포하고 임시 돌봄 서비스 제공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완벽하게 실효를 거둘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휴업이 강행될 경우 애꿎은 아이를 가진 부모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부디 한유총은 아이들을 볼모로 한 휴업을 중단하길 바란다. 아무리 자신들의 권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교육자로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책임을 방기하면서까지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태그:#육아일기, #국공립유치원, #사립유치원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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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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