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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요. 천연 가죽인데 이걸 저희한테 확인도 안 하고 저급 인조가죽이라고 리뷰를 해요. 문제 삼으니까 나중에 슬쩍 고치고...1년 동안 개발비용만 1억 가까이 들었는데 이런 식이라면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제품 개발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난 20일 인천 남동구 만수동의 한 사무실. 거칠은 얼굴의 중년 남성은 갈색 이어폰 케이스를 직접 문지르고 뒤집어보이며 반문했다. 국내 이어폰 제조업체인 유코텍의 신준균 대표다.

그가 최근 출시한 15만 원 상당의 하이엔드 이어폰 'IL300'은 최근 국내 이어폰 애호가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미니기기 음향 전문 사이트인 '씨디피코리아(CDPKOREA, 아래 시코)'에서 이례적으로 강도높은 혹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지금까지 새 제품이 나왔을 때 으레 해 왔던 건당 150만 원 상당의 유료 리뷰를 맡기지 않자 시코측이 의도적으로 제품 성능을 폄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시코측은 객관적인 음향 측정을 통해 나온 결과이며 유료 리뷰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맞서고 있다.

시코가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한 IL300 리뷰 배너. 시코 측은 배너에 "유코텍의 탐욕이 부른 거품"이라는 비하적인 표현이 들어간 이유를 묻자 '리뷰 제목이 그렇다'고 답변했으나 현재는 배너에서 해당 문구를 지운 상태다.
 시코가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한 IL300 리뷰 배너. 시코 측은 배너에 "유코텍의 탐욕이 부른 거품"이라는 비하적인 표현이 들어간 이유를 묻자 '리뷰 제목이 그렇다'고 답변했으나 현재는 배너에서 해당 문구를 지운 상태다.
ⓒ 씨디피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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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코텍 "돈 줄 때는 이런 비하적인 리뷰 쓴 적 없었다"

시코는 매달 이어폰, 스마트폰, 미니 음향기기 등의 분야 제품들을 대상으로 4~6개 정도의 사용기를 발표한다. 논란은 지난 13일 시코가 자사 사이트에 아이엘300(IL300)에 대한 리뷰를 올리면서부터 시작됐다.

문제의 리뷰는 기존 사용기들과 비슷한 형식이었지만 세부적으로는 평소보다 다소 강경한 문구들이 사용됐다. 유코텍의 이어폰 IL300이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근거는 IL300의 주파수 측정 그래프였다. 시코는 유코텍의 새 하이엔드 이어폰이 이전에 출시됐던 1만 4900원 짜리 저가형 모델보다 음향적으로 발전이 없으면서도 가격만 10배 늘었다고 비판했다. "탐욕이 부른 거품"이라는 표현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IL300 특유의 치찰음이 도마위에 올랐다. 시코는 "전반적으로 경질적인 사운드로 치찰음이 크게 발생하는 등 음악감상시 참기 어려울 만큼의 자극성으로 원음 재현의 해상력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평했다. 치찰음이란 '치', '쉬' 등 닿소리를 발음할 때 공기가 마찰되며 발생하는 소리다.

고가의 하이엔드 제품임에도 이어팁 등 기타 구성품들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했다. 특히 가죽 케이스에 대해서는 "저급 인조가죽 특유의 불쾌한 냄새와 재질은 고급스러움과 거리가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유코텍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치찰음이 있긴 하지만 못 들을 정도는 아니며 72시간 정도 에이징을 거칠 경우 줄어든다는 내용이었다. 에이징이란 음악을 연속적으로 재생하면서 이어폰의 진동판을 사용하는 작업을 말한다. IL300처럼 다이나믹 드라이버를 사용된 이어폰 중 일부는 에이징을 거치면 음색이 소폭 변화하기도 한다.

유코텍은 가죽케이스는 인조 가죽이 아니며 시코 측이 리뷰를 작성하면서 인조가죽인지 아닌지 확인을 요청해 온 적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리뷰라는 얘기다.

양측의 공방은 금방 '유료 리뷰' 논란으로 번졌다. 신준균 대표는 "이번에는 제품을 출시하면서 시코 측에 150만 원 상당의 유료 리뷰를 맡기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런 감정적인 리뷰가 나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금까지 출시한 8종의 이어폰 중 상당수가 시코에서 리뷰됐지만 사용기 작성에 들어가는 비용과 제품을 제공했을 때는 한 번도 이런 비하적인 표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전에 유료 리뷰를 할 때는 항상 사이트에 올리기 전에 우리쪽으로 작성한 리뷰를 보여주곤 했으며 그중 부분적인 수정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1년 여 동안 수차례 사용자 청음회까지 열어가며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제품이고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1억 원 대출 받은걸로도 모자라서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었는데 초도 생산물량 3000개 중 도매상에 100개만 팔린 상태"라고 토로했다.

IL300의 출시일은 지난 4일. 판매에 한참 중요한 시기에 악의적인 리뷰가 나와서 큰 피해를 입었다는 얘기다. 그는 "시코의 리뷰는 이어폰 구매에 적극적인 마니아들이 찾아보는데 이미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읽었다"면서 "리뷰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덧붙였다.

씨디피코리아 "근거있는 측정치로 리뷰할 뿐...문제있는 제품 맞다"

유코텍의 이어폰 IL300과 가죽케이스. 유코텍은 시코가 리뷰에서 가죽케이스에 쓰인 가죽이 인조가죽이라고 지적하자 천연가죽이 맞다는 인증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리뷰 내용과는 달리 이어폰도 가죽케이스 안에 문제없이 잘 수납된다.
 유코텍의 이어폰 IL300과 가죽케이스. 유코텍은 시코가 리뷰에서 가죽케이스에 쓰인 가죽이 인조가죽이라고 지적하자 천연가죽이 맞다는 인증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리뷰 내용과는 달리 이어폰도 가죽케이스 안에 문제없이 잘 수납된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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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시코의 리뷰와 유코텍의 해명 중 누구 주장이 사실인지 판단하기 위해 신 대표에게 청음용 제품을 대여했다. 시코가 측정한 결과치가 있지만 주파수 응답특성 등 기계적인 측정 결과만 가지고는 대략적인 짐작만 가능할 뿐, 정확한 음색은 직접 들어봐야 알 수 있기 때문. 물건은 유코텍이 도매상에 납품하는 출하용 포장박스 2개를 무작위로 뜯고 20여 개 중 하나를 골랐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과 동일한 조건이다.

직접 들어본 IL300은 가격대 성능비가 매우 우수한 '대박 제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는 느낌도 아니었다. 그동안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제품들을 다수 내놨던 유코텍의 제품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개성있는 음색에 평범한 가격' 정도로 평했을 수준이었다. 가죽케이스도 이상한 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몇 개의 노래를 재생시켜보니 치찰음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씨코'의 리뷰 내용처럼 참기 어렵다거나 지나치게 거슬리는 자극적인 음향은 아니었다. 다만 유코텍 측의 설명처럼 에이징 효과는 체감할 수 없었다. 100시간 가량 재생을 한 뒤에도 초기의 치찰음이 완화되는 경향은 느끼지 못했다.

시코 측은 자사의 리뷰 내용에 대해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이 업체는'특정 의도를 가지고 리뷰가 작성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일부 리뷰는 돈을 받고 진행하지만 리뷰용 제품도 협찬받지 않고 직접 사서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시코 측은 "스마트폰은 전부 사서 리뷰를 쓰고 있고 이어폰과 헤드폰 중에도 직접 사는 경우가 있다"면서 "우리는 근거를 가지고 리뷰를 하는데 이상한 소문이 나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말하는 '근거'란 IL300의 주파수 측정치를 말하는 것이다. 주파수 응답에서 치찰음이 발생하는 7000Hz 부근의 응답이 강하게 나왔고 시코에서는 나온대로 듣고 썼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비교를 위해 저가형 모델과 프리미엄 모델의 측정치를 함께 게재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무조건 그런 식으로 비교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도 그런 식의 비교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리뷰를 직접 작성한 시코 관계자는 "같은 회사의 음색 변화를 쉽게 표현해주기 위한 것이며 그렇게 비교해서 보고 싶어하는 사용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문제가 됐던 이어폰 케이스 가죽 문제에 대해서는 "주관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시인했다. 시코 측은 "제품을 봤는데 천연가죽의 느낌은 아니었기 때문에 체감한 부분에서 리뷰를 한 것"이라면서 "하루만에 인조가죽이라고 적시했던 부분을 삭제했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제조사에 죄송하다는 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가죽 재질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기정사실처럼 리뷰에 쓴 이유를 묻자 "제조사에서 헛갈리지 않게 (제품설명서 등에) 써 놓을 수 있는 부분인데 왜 천연가죽이라고 기재를 안 했는지가 의문"이라면서 다소 엉뚱한 답을 내놓기도 했다.

이어폰 제조업계 관계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들은 유코텍의 입장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법적인 대응을 해 봐야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결국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제품 판매량에 영향을 미치는 사용기를 올리는 시코 쪽이라는 것이다.

한 이어폰 수입업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이어폰 주파수 측정치에 약한데 이걸 시코 같은 전문 리뷰업체만 측정할 수 있다"면서 "시코가 명백한 '갑'"이라고 설명했다. 주파수 측정장비가 수천만 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이기 때문에 영세한 중소 이어폰 제조사나 수입 대행사들은 사실상 갖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시코의 리뷰가 이어폰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도 주파수 측정 그래프라는 음질과 관련된 근거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시코가 측정치를 내놓으면서 측정치와는 별 관계가 없는 주관적인 표현들을 쓰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도 이전에 리뷰 문제로 마찰을 빚어서 지금은 아예 그쪽(시코)와는 거래를 안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태그:#유코텍, #씨디피코리아, #시코, #IL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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