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이 사건은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이 국가보안법을 악용해 정당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불법수단을 악용해 반국가단체로 둔갑시킨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와 사법부가 범한 과오에 용서를 구한다." (2012년 6월 15일, 대법원 1부가 전두환 정권시절의 이른바 '학림사건' 관련자 24명에 대한 재심사건 상고심에서 무죄판결을 확정하며.) "장준하 선생은 민족의 어른이자 스승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고 재판부도 이견이 없다.… 사법부의 지난 과오를 빨리 바로잡지 못한 데 대해 고인과 유가족께 사과한다." (2013년 1월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 유상재 부장판사, 유신헌법 개헌을 주장하다 징역 15년이 선고됐던 고 장준하 선생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며.)"그동안 심적·정치적·사회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을 재심 청구인과 가족들에게 사법부를 대신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2013년 9월 23일, 서울고법 형사8부 이규진 부장판사, 박정희 정권시절 '민주회복국민선언'을 주도했다 구속된 김철 전 통일사회당 당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이밖에도 인터넷으로 '재판부(법원)-사과', '재판부-유감표명'으로 검색해보면 군사독재시절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을 사과한 사례들이 적지않게 나온다.
각 법원이 이처럼 사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법부 차원에서 자신들의 '흑역사'에 대한 정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26일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은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며 "이 자리를 빌려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해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이에 앞서 이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26일 자신의 취임식에 '사과'를 예고하고, 바로 다음날 전국 주요 법원에 '권위주의 시절인 1972~1987년 사이 시국·공안사건 판결자료'의 수집을 지시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런 준비를 거쳐 3년 뒤 '공식사과'를 한 것이다.
물론 조작사건에 대한 재심 요건 완화나 관련 법관들의 인적 청산에는 반대하는 한계를 보이기는 했지만, 사법부 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오욕의 역사'에 대해 매듭을 지었다.
국가정보원이나 국방부, 경찰도 외부인이 참여하는 과거사위원회를 만드는 방식으로,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과오를 '인정'했다. 물론 이들은 여전히 '흑역사'를 반복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반성문을 써보기는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들을 기소하고 유죄를 구형한 검찰은, 숱한 사건이 고문을 통해 조작됐음이 확인되고,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쏟아져도 먼 산만 쳐다보고 있다.
검찰의 '흑역사'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 <변호인>
#1. "알리하고 포먼하고 권투시합을 하는데, 김일성이 알리편을 들었을 때 피고인도 알리 편을 들었다면 그것도 이적행위입니까?"(송우석 변호사)"북괴를 찬양하는 발언을 자제해주십시오."(강 검사)#2. "(피고인들이 빨갱이라는 증거의 하나인)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E. H. 카아가 소련에 장기체류한 공산주의자라는 것이죠?"(송우석 변호사)"그렇습니다."(검찰이 이적표현물 감정을 맡겨, 재판 증인으로 나온 치안연구소 연구원)"E. H. 카아는 영국 외교관으로 소련에 체류했던 것입니다. 영국 외교부는 E. H. 카아를 영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자 영국이 자랑스러워하는 학자로 생각하며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도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송우석 변호사)영화 <변호인>은 우리 검찰의 '흑역사'를 날것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허구와 사실이 섞여 있지만, 이 두 장면은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꿨을 뿐' 1981년 부림사건 재판 상황 그대로다. 당시 부림사건 수사검사는 부산지검 공안부 소속 최병국(수석검사), 고영주, 장창호 3명이었다.
'알리-포먼' 시합 비유에 '북괴찬양을 자제하라'고 엉뚱한 소리를 했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출신인 최병국 전 한나라당 의원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어떤 사과도 할 생각이 없다. 그들은 고문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자기들 행동을 미화하려고 그러는 것이다. 이 수사 당시 부산 대공분실로 찾아가서 고문당하고 있는지 물어본 적도 있다. 피의자들이 '고문당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 <한겨레> 2013년 12월 28일자 기사 중)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라는 거창한 조직의 위원장인 고영주씨는 한술 더 떴다. <뉴데일리>보도에 따르면 고영주씨는 피의자 이아무개씨가 심문중에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그땐 저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겁니다'라고 자신을 협박했다는 것이었다.
부림사건 담당 검사 최병국 "어떤 사과도 할 생각이 없다" 고씨는 "모진 고문을 당했던 사람이 면전에서 검사를 협박하는 게 쉬운 일일까요"라고 고문을 부인하면서도 "물론 (경찰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피의자 측의 주장을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아는 부분을 말씀 드리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뱀의 혓바닥에 비할 만하다. 고씨는 "일단 정치사범이 오면 저희(검찰)는 칙사대접을 합니다. 불행한 환경에서 조사를 한 적은 단언컨대 단 한차례도 없었습니다"고도 했다.
그는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한 변론을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부산 지역 거물 변호사들이 나섰는데 옆에 있는 신참 변호사들에게 발언 기회나 있었겠느냐"며 노 변호사의 변론 자체를 부인하는 그에게 정확한 팩트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병국씨와 고영주씨의 태도는 과거사 문제에 입닫고 있는 검찰 조직 전체의 모습 그대로 보여준다. '구공안', '검찰원로'로 대접받고 있는 이들이 검찰의 과거사 정리를 가로막는 주체중 하나일 것이다.
검찰도 과거사 정리 움직임이 있기는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였다. 그러나 "당시 법무부에서 과거사위원회 만드는 안이 (청와대로) 왔는데, 내용이 미비해서 미뤄졌고, 그대로 보류돼 버린"(전해철 전 민정수석, 현 민주당 국회의원) 상태로 끝났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10월 31일 임채진 검찰총장이 '검찰 창설 60주년 기념식'에서 "국법 질서의 확립이나 사회 정의의 실현에 치우친 나머지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 지켜내야 한다는 소임에 보다 더 충실하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없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 수장 최초의 과거사 관련 언급이었지만, '질서', '사회정의 확립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빚어진 일'이라는 인식이었다. 한 달 앞서 이용훈 대법원장의 '공식사과'가 나오자, '울며 겨자먹기'로 한 쇼였다.
그로부터 약 5년 뒤인, 지난해 4월 채동욱 전 총장은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이 국가기관 중 유일하게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은 당연히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총장 취임 이후 어떤 방식으로 할지 신중히 검토해보겠다"며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결국 그는 '찍어내기'를 당하고 말았다.
부친 무죄 판결 받은 김한길 대표 "재판부의 진심어린 사과에 울컥"과거사 정리는 그 기관에는 새출발의 의미이고, 사회전체적으로는 '통합'의 첫 걸음이다.
학림사건 관련자로 무죄판결을 받은 유동우씨는 재판부에 대해 "그동안 우리의 고통을 외면해 왔던 사법부가 지금이라도 사죄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고,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호권씨도 "국민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서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쁨을 나타냈다. 김철 당수의 아들인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재판부의 진심어린 사과에 울컥했다"고 말했다.
국가기관 전반의 신뢰도가 바닥인 가운데, 그나마 사법부가 낫다는 평가를 받는 데는 이런 일들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해 12월 취임식에서 '바른 검찰', '당당한 검찰', '겸허한 검찰'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런 목표를 제대로 이루려면 오욕의 역사 정리는 거쳐야만 할 필수코스다. 정리는커녕 흑역사를 계속 쌓아가고 있는 검찰을 보면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위안거리는 있다. 검찰의 민낯을 생생하게 본 국민이 8백만명을 넘어서 1천만명을 향해 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