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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머물던 청도 운문사 소나무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머물던 청도 운문사 소나무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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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는 아득한 삼국시대 면모를 전해주는 매우 소중한 우리의 역사 고전이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은 이들 두 고전에 기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전하는 서적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최고(最古)가 바로 <삼국사기>이고, 우리 고대사를 가장 흥미롭게 담고 있는 최고(最高)가 바로 <삼국유사>다. 이들 두 고전으로 말미암아 한반도 역사의 서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고대 국가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더듬어 볼 수 있는 것이다. -<김부식과 일연은 왜> 5쪽-

쌍둥이는 아니지만 비슷비슷한 두 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한 명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키가 165cm쯤 되고 또 다른 한 명은 30대 중반의 나이에 키가 167cm쯤 되며 옷도 비슷하게 입고 있습니다.

자세하게 보면 나이도 다르고 키도 다르고 생김새에도 차이가 있는 다른 사람이지만 이들 두 사람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지 못하면 비슷한 생김새와 비슷한 키, 비슷한 연령대에 이 사람이 저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아 많이 헛갈릴 것입니다.

이럴 때 이 두 남자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확실하게 기억하는 방법은 두 명의 남자를 한자리에서 한꺼번에 만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우리나라의 역사를 담고 있는 역사서 중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비슷하게 생긴 두 남자처럼 얼핏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책의 제목이 비슷하고, 역사적 배경 또한 동떨어지지 않다 보니 담고 있는 내용 또한 닮은꼴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두 권의 역사서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출헌 지음 한겨레출판에서 출판한 <김부식과 일연은 왜>는 비슷하게 생긴 두 명의 남자를 한 자리에서 만나듯 두 권의 역사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엮어서 구분하고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부식과 일연은 왜> 표지
 <김부식과 일연은 왜> 표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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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역사 고전은 유학자와 승려라는 김부식과 일연의 신분 차이뿐만 아니라 편찬된 시대적 상황 또한 달랐던 것이다. 이처럼 편찬자의 시각에 따라, 또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삼국의 역사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김부식과 일연은 왜> 6쪽-
김부식의 <삼국사기>편찬 작업은 자신의 오랜 정치적 경륜을 총동원하여 지난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분투였다. 지금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관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것처럼, 이자겸으로 대표되는 외척 세력의 발호와 묘청으로 대표되는 서경 세력의 반란을 진압하고 권력의 정점에 선 김부식에게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김부식과 일연은 왜> 27쪽-

<삼국유사>는 삼국시대를 다룬 역사서이자 설화집인 동시에 고승전이라고 평가된다. <삼국사기>가 빠트린 역사적 사건을 수습하고 있고, 역사 이면에 감춰져 있던 전래의 신화·전설을 거두고 있으며, 잊을 뻔했던 승려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럴 법하다. -<김부식과 일연은 왜> 56쪽-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과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신분부터가 달랐습니다. 신분이 다르면 사건을 보는 관점이 다르고, 가치에 대한 배경은 물론 글을 쓰는 목적 또한 다를 것입니다. 

김부식과 일연, 같은 내용 다른 평가로 기록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무사인 장군과 출가수행자인 스님이 기록하고 있다면 이들은 기록은 다를 것입니다. 장군은 전술과 전력, 패인과 전공(戰功) 위주로 분석하고 평가해서 기록하겠지만 출가수행자인 스님은 살생과 자비 등으로 종교인의 입장과 가치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근엄한 유학자였고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출가수행자인 스님으로 역사를 보는 관점, 같은 사안을 보거나 받아들이는 가치가 다르니 이들이 쓴 각각의 기록이 다르거나 내용에 차이가 있다는 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임금도 없고 아비도 없다고 비판받던 불자(佛子), 곧 일연은 남성들의 충절을 어떻게 읽고 있었을까? 다행스럽게도 박제상의 사연은 <삼국유사>에도 실려 있어 비교해볼 수 있다. -<김부식과 일연은 왜> 246쪽-

우리 고전에서 죽음에 굴복하지 않은 충절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린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위의 사연을 <삼국사기>와 비교해 보라. 거기에는 "제상을 왜 왕에게 데리고 가서 목도로 귀양을 보냈다가 얼마 후에 사람을 시켜 나무에 불을 질러 온몸을 태운 후에 목을 베었다"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일연은 김제상(삼국유사에는 박제상이 아니라 김제상으로 기록됨)의 충절과 죽음을 참으로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연은 무슨 까닭으로 김제상의 충절을 이처럼 처절하게 묘사했던 것일까? 그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라면 김제상의 일화가 <삼국유사>가 <기이>에 실렸다는 점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 -<김부식과 일연은 왜> 248쪽-

근엄한 유학자 김부식의 생각으로는 남편에 대한 복수도 중요하지만 여자에게 더욱 소중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잃지 말아야 할 절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김부식과 일연은 왜> 256쪽-

양파껍질을 벗기듯 읽는 고전의 맛

비슷하게 생긴 두 남자를 나란히 앉혀놓아 두 사람의 차이점을 보여주듯이, 같은 소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두 사람의 글을 접시저울에 올려놓고 돋보기로 보며 살피듯이 엮어서 구분하고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으니 김부식과 일연, 이들이 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또렷하게 구분해 알게 됩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머물던 청도 운문사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머물던 청도 운문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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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고전이 마치 양파 껍질처럼, 무언가 값진 것을 속에 감추고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고전에 대한 신랄한 야유다. 하지만 양파란 본디 껍질 하나하나가 모두 값진 자신의 일부이자 전부다. 고전을 읽고 감상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부식과 일연은 왜> 12쪽-

저자의 말처럼  <김부식과 일연은 왜>은 양파껍질처럼 대단한 무언가를 감추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그런 기대감으로 양파껍질을 벗기듯 한 쪽 한 페이지씩 읽어가다 보면 사대적이고 귀족적이고 유교적인<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눈높이에서 <삼국사기>가 보일 것입니다. 또한 일연이 자주적이고 서민적이고 불교적인 시각으로<삼국유사>에 담아 낸 삼국, 신라, 고구려, 백제를 알게 될 것입니다.

쓰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역사바로잡기'라는 미명 등으로 오늘날의 정치사를 재단하려는 정치권의 술수를 더듬을 수 있는 시대적 촉수도 움트게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김부식과 일연은 왜>┃지음이 정출헌 ┃펴낸곳 한겨레출판┃2012. 7. 23┃값 13,000원┃



김부식과 일연은 왜 - 삼국사기.삼국유사 엮어 읽기

정출헌 지음, 한겨레출판(2012)


태그:#<김부식과 일연은 왜>, #정출헌, #한겨레출판, #일연, #김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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