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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써보기는 했지만, 이 주제를 가지고는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였다. 군의 잘못이 명백하고 천안함 사건처럼 이데올로기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군사 분야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곳이라 함부로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측면도 기사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난 17일, 인천 교동도에 주둔한 해병대가 민간인이 탄 민항기에 총격을 가한 중차대한 문제를 두고 별일 아닌 해프닝으로 넘어가려는 군의 태도와 이를 어물쩍 받아서 은근슬쩍 넘어가주려는 보수 언론의 태도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자칭 '1등 신문' <조선일보>가 자랑하는 군사전문기자인 유용원 기자가 쓴 다음의 기사는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마친 대한민국 남아의 신경을 유난히 건드렸다.

군 일각에선 초병들의 착각을 초래한 미확인 비행체가 아시아나 항공기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건발생 후 군 당국에서 초병들이 어떤 비행체를 잘못 보고 사격을 했을까에 대해 역추적을 하다 보니 여러 정황상 아시아나 항공기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지 직접 확인된 것은 아니어서 문제의 비행체 불빛이 계속 미스터리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6월 20일

차라리 UFO를 보고 총격을 가했다고 대놓고 이야기하지 왜 그러시나! 아마도 유용원 기자가 말하는 '군 일각'은 군에서 기자를 담당하는 정훈 장교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조선일보>의 군사전문기자를 상대할 정도면 상당히 고급 장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군사전문기자라는 양반이 그러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오인 사격 비웃는 중국 언론...한국 보수는 뭐하나

원유철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010년 10월 18일 오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에 정박한 독도함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해군본부와 해병대사령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앞서 천안함을 찾아 함수와 함미의 절단면을 살펴보고 있다.
 원유철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010년 10월 18일 오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에 정박한 독도함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해군본부와 해병대사령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앞서 천안함을 찾아 함수와 함미의 절단면을 살펴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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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갔다 온 사람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라 되풀이하기 민망하지만 유용원 기자만 모르는 것 같아 일러주자면, 한반도 상공의 모든 비행체는 방공 관제 부대에서 이중 삼중으로 감시하고 있다. 여기에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서해 5도 부근에는 조그만 비행체라도 감시할 수 있는 소규모 레이더가 곳곳에 있을 것이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미 대한민국 군은 천안함 사건으로 '망신'을 당한 바 있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쪽에 나의 소중한 한 표를 던지는 사람이다. 다만 언제 와서 언제 갔는지도 모르는 북한의 잠수함에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창피한 줄도 모르는 대한민국의 안보망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UFO를 보고 총격을 가했다고 이야기하는 '군 일각'이 있고 이를 받아쓰는 군사전문기자가 있으니 한심의 수준이 거의 '도 긴 개 긴'이다. 만약 '계속 미스터리로 남을 비행체 불빛'을 주장하는 '군 일각'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대한민국의 국방을 이런 한심한 군에 맡기고 발을 뻗고 잘 수 없음을 선언하는 바이다.

아니 나의 선언이 있기 전에 당장 중국 언론부터 우리 군의 망신을 기사화하였다.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지난 20일 "대한민국의 군은 민항기와 전투기도 구별 못하고 보병이 소총으로 비행기 쏘는 연습을 한다"고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광밍(光明)망>은 "이번 사건이 슬픈 이유는 한국이 자국 민간 항공기를 향해 총을 발사했기 때문이며, 만약 항공기에 명중했다면 천안함 사건처럼 진상은 귀신만이 아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보도를 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 외교부가 "한국 영공을 지나는 민항기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주적 북한의 우방인 중국에 이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의 보수우익은 왜 아무런 말도 없는 것일까?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이 이렇게 조롱을 받고 있다면 울분에 차서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건의 본질은 '대한민국 군이 민항기에 총격을 가했다'는 사실이다.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좌든 우든 어떤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어도 민항기에 군이 총격을 가한 충격적 사실 앞에서 모두 이성의 눈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긴장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는 단순한 교훈

김관진 국방부장관
 김관진 국방부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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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군사력의 강화와 긴장 고조만으로 한반도의 안전을 책임질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다. 전투력 강화를 위하여 강조한 '선조치'가 민항기 총격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긴장의 고조가 바로 우리에게도 향하는 칼끝이 됨을 알려주고 있다.

서해 5도 해상은 엄청난 긴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곳은 대한민국 군인들도 대부분은 경험해보지 못한 실전 상황이나 이에 준하는 상황을 경험해본 곳이다.

긴장 강도는 극에 달해 있을 것이고 군 상층부는 군기를 잡고 이른바 '철저한 대비태세'를 위하여 이를 조장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정부 들어서서 강조하고 있는 '선조치, 후보고'의 강조도 한몫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본인도 군 복무 시절 실전에 준하는 경험을 한 바 있어 이런 긴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1998년 잠수함 침투 사건이 벌어지자 북으로 연결되는 태백산맥 준령에 있는 부대들은 모두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었다. 초병들은 반딧불을 보고 놀랐고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몇 km 떨어진 민가의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들짐승이 바스락거리며 지나가는 소리는 보이지 않는 순간에 날아오는 적의 총탄을 연상시켰다.

서해5도의 긴장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강인한 군을 강조하는 김관진 국방장관의 명을 받았으니 적이 나타나면 당장이라도 총격을 가할 수 있도록 만반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대공경계태세의 최전선에 있는 부대원이 민항기와 전투기를 구별 못하고, 유효사거리가 짧아 효과적으로 대응을 못한 것이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 되어버린 상황을 두고 우리는 안보 상황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혹시 전투태세의 긴장과 민간의 대북 경계심만 최고도로 높여놓고서 실제적인 안보 능력은 취약한 최악의 조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현 정부가 조롱해마지 않는 '햇볕정책'의 제1원칙은 '일체의 무력 도발 불용'이었다. 과연 이명박 정부의 대한민국 군은 이러한 원칙에 비춰서 부끄럼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천안함 사건 이후 군의 긴장과 경계 태세를 높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르지만, 빈틈을 보인 우리의 안보 능력이 그걸로 인하여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물론 '전투에서 진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적의 침투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는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경계를 넘어 민항기에까지 총격을 가할 정도로 과도한 긴장을 유발하는 것은 국가 안보를 위하여도 좋은 일이 아니다. 아무리 양보를 한다 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해도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는 법이다.


태그:#민항기 총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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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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