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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정당연설회에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반값등록금과 청년실업 해결 등을 촉구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정당연설회에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반값등록금과 청년실업 해결 등을 촉구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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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예쁜 딸. 처음으로 네 등록금을 내던 날이 떠오르는구나. 몇 년을 모으며 귀하게 귀하게 간직한 등록금 통장. 대학공부를 잘 시키겠다는 꿈과 희망을 담은 통장이었지. "엄마, 아빠가 이렇게 등록금을 마련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공부하라"며 일년 내내 잔소리를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이었기도 하고. 예쁜 딸만큼이나 자랑스러웠던 통장이었어. 큰일을 해냈다는 유치한 뿌듯함도 물론 있었고.

그 돈을 모으며 '이렇게 모으면 그래도 3학기는 되겠고, 그동안 조금 더 노력하면 한 학기 정도는 더 가능할 거야'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고지된 등록금을 보니 450여 만 원. 3학기분 몫은 커녕 신입생 등록하고 나니 당장 2학기 등록금도 모자라는 꼴이 되고 말더구나. 당혹스러움과 예측하지 못한 미련함에 대한 자책이 며칠을 떠나지 않았어. "그나마 문과계열이라 그 정도"라는 주위의 말에 '다행이다'를 몇 번을 되풀이한 것이 낙이라면 낙일까? 바쁘게 다니다 집에 와서 너의 얼굴을 보면 '2학기는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입으로는 큰소리 치며 걱정하지 말라했지만 현실에선 그저 '대출'이라는 단 한 생각밖에 할 수 없더구나.

입학한 지 한 달이 지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고 기뻐하던 네 모습을 보며 대견함도 있었지만 사실 짠한 마음이 더 컸단다. 시급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제시받았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그 자리라도 해야겠다며 출근하는 모습을 걱정하는 나에게 너는 사장님이 근로계약서를 써주기로 했으니 최저 임금은 될 거라며, 혹시 안 되도 계약서가 있으면 나중에 받아낼 수 있다고 우리를 위로하며 나갔지.

주말 이틀 동안 8시간씩 근무하는 일. 집에서 내가 빈둥거릴 땐 참 짧은 시간이더니, 네가 일 나가고 부터는 그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그러나 5일째 너는 울면서 들어왔지. 사장이 근로계약서를 써줄 수 없다며 해고통보를 하고 납득할 수 없는 계산으로  며칠 일한 것마저도 다 못받게 됐다면서 말이야. 주체하지 못하는 네 눈물을 보며 엄마도 아빠도 같이 눈물 흘리고 상한 마음을 어쩔 줄 몰라했었지. 8시간 일해서 받은 돈이 2만6000원이었나? 

근로계약서 써달라는 너에게 얼마나 사장이 막해댔을까? 우리 예쁜 딸에게… 그러나 넌 힘을 내서 다음날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고 근로감독관과 대화하고 결국 20여 일만에 최저임금으로 계산한 너의 임금을 다 받아냈지. 한편으론 자랑스러움이 들면서도 생애 첫 직장을 이렇게 경험하는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함께 생기던 미묘한 한 달이었단다.

지금도 학교에서 근로 일을 하고 있는 너. 그 일을 구하고 나서 참 좋아했던 네 모습이 떠오른다. 140시간 일하면 60여 만 원이나 된다고 하면서 말이야. 계산해보면 이 또한 최저임금으로 한 근로의 대가지만 이런 자리 구한 게 어디냐며 신나했었는데 시험을 앞둔 지금도 그 일을 하러 학교에 가는 네 모습을 보며 편의점 다닐 때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아 아빠 마음이 짠하구나. 힘들게 두 아르바이트로 75만 원을 번 내 딸, 수고 했다. 그리고 고맙다.

아르바이트에 눈물 흘리는 신입생 내 딸, 함께하자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 서울파이낸셜센터 앞 계단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북카페'에서 대학생들이 책을 읽고 있다. '반값등록금 북카페'는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보내온 책을 함께 읽고 공부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 서울파이낸셜센터 앞 계단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북카페'에서 대학생들이 책을 읽고 있다. '반값등록금 북카페'는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보내온 책을 함께 읽고 공부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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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가면 좋은 선생님, 선배들과 밤을 잊고 토론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사랑하고 분노하며 멋진 모습을 가질 줄 알았는데… 그런 꿈을 갖고 20여 년 전 아빠가 뜨거운 6월을 보냈던 것이기도 한데 네가 대학 첫 학기 75만 원이라는 짐때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프구나. 그런데 네가 그렇게 번 돈 전부를 2학기 등록금으로 해도 300만 원이 부족한 현실에 할 말이 없다.

'대학 가면 다 네가 알아서 하는 거야'라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현실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르바이트 자격을 얻기 위해 대학생이 된 건 아닐 텐데. 모두가 부자로 살 수 없는 현실이지만 하필이면 왜 네가 등록금 걱정해야 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드는구나. 그리 가난한 삶도 아니었고 이렇게 사는 것이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었기에 하루가 하루가 기뻤던 20년이었지만 등록금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내 지난 시절이 부끄러워지는 구나. 나라 독립 운동하며 산 것도 아니었는데 딸이 등록금 걱정없이 대학 공부 열심히 하게 해줄 형편이 되지 않으니 말이야. 

같은 걱정을 하지만 서로에게 미안해 할까 봐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괜찮아 대출이 있잖아" 하며 나는 위로하지만 네 앞으로 쌓여갈 그 빚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취직해서 갚으라는 말이 감사하기 보다는 야속하게 들리는 지금의 현실. 취직하기도 힘들고 취직한다 해도 많은 월급이 아닐 텐데 말이다.

미안하다. 아빠와 엄마가 그간 너무 욕망을 따라 살아온 모양이다. 직선제가 되면 민주화가 되고 그러면 모든 것이 잘 되는 줄 알았던 단순한 생각으로 말이야. IMF 때 회사를 떠나는 이들을 보며 같이 살기 보다는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우리를 지배했고 그 전에 외쳤던 멋진 구호들은 슬그머니 속삭임으로만 남겨 놓았지. 그리고 남은 것은 경쟁이고, 신자유주의가 어쩌구 하며 순응하는 패배 의식이 모르는 사이 우리 세대를 지배했던 것 같아.

'감히 등록금에 어찌 시비를 걸 수 있냐'는 이 사회의 불문율을 가장 든든하게 지키는 이들로 변해간 우리가 되어 미안하다. 총칼로 지배했던 그 세력과도 싸웠는데 왜 이런 생각을 하며 당연히 받아들였을까? 그런데 이렇게 거리에 촛불이 밝혀지는구나. 우리 세대는 정치가의 말을 그저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너희들은 그 말을 지키라고 이야기 하는구나. 우리는 세상살이 다 그런 거야라고 하지만 너희들은 세상은 공정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구나. 너희 세대에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일을 모두 짐지운 것 같아 미안하다.

그래 당당하게 외치자. 우리의 미래가 이렇게 주저 앉게 둘 순 없잖아. 내 딸아 그리고 우리의 딸 아들들아. 아빠와 엄마 그리고 이모와 삼촌이 함께한다. '날라리'라 부를 만큼의 인물들은 못 되지만 너희들과 함께 아스팔트에 몇시간 앉아 있지 못 하겠니? 촛불 하나 들지 못하겠니? 아름다운 촛불의 물결을 만들어 우리 힘으로 한번 바꿔 보자. '반값등록금', 그래서 너희들은 부모님께 효도하고, 우리는 자식들 앞에 머리 당당하게 한번 들자구나. 자, 발을 내딛자! 그리고 촛불을 켜자, 그리고 높이 들자.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말야, 그리고 함께 웃자 얘들아.

덧붙이는 글 | 조정현씨는 '등록금과 교육비를 걱정하는 학부모 모임' 회원입니다.



태그:#반값 등록금, #등록금,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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