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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일 오전 9시 30분]

 

6월 1일 오전 4시 58분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 장장 17시간에 걸쳐 진행된 회의 종료를 알리는 박수소리가 터졌다. 마침내 통합 진보정당의 초석이 놓였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민주노총·전농 등 12개 진보정당·사회단체가 참여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연석회의)'가 통합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최종 합의문 도출에 성공했다. 무릎을 맞댄 지 4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다. 이로써 2007년 대선 이후 갈라졌던 진보 양당은 3년 만에 다시 뭉쳤다. 다만, 사회당은 민노당·진보신당 양당이 마련한 절충안에 반대해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논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각 대표자가 지난 26, 27일 15시간 동안 회의를 진행했지만 북한 문제 등 주요 쟁점에 대한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연석회의는 이날도 1박 2일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다.

 

진보 양당의 사전협의가 쟁점을 풀 실마리를 마련했다. 이정희·조승수·강기갑·노회찬 등 양당 대표와 통합추진기구위원장은 이날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대고 주요 쟁점인 북한 문제·2012년 대선 연대방침·당 운영방안에 대한 조정안을 마련했다.

 

노동·사회단체의 압박도 한몫했다. 민주노총 산별노조위원장 10여 명은 이날 오전 2시 35분경 양당 지도부를 방문해, "오늘(1일) 중으로 합의하지 못할 경우 최단 시간 내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해 중대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양당에 최후통첩을 한 셈이다.

 

치열하게 맞붙었던 북한 문제... 진보양당 입장 모두 반영해 절충

 

주요 쟁점들은 길고 긴 협의를 거치며 조정됐다.

 

대선 야권연대 방침과 관련, '전제조건' 확정 여부를 놓고 대립했던 양당은 이날 비정규직 문제·부자증세·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등의 정책을 야권연대의 조건으로 삼기로 했다. 당 운영방안과 관련해선 "당 공동대표 등 당 조직의 공동운영을 원칙으로 한다"로 조정됐다. 다만, 내년 총선에서의 비례대표 배분, 지역위원장 선정 방식 등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최후의 쟁점은 북한 문제였다. 양당은 "북한 3대 세습 비판" 입장 반영 여부를 두고 난항에 난항을 거듭했다. 노동·시민단체가 제출한 중재안을 놓고 장시간 논의가 이어졌다. 6·15 공동선언 정신에 입각한 남북 상호 체제 존중을 강조한 민노당 안과 북한의 권력승계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강조한 진보신당 안을 함께 명시하기로 하면서 양당은 극적인 타협을 맞았다

 

연석회의는 "새로운 진보정당은 6·15 정신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의 권력 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로 양당의 입장을 모두 반영했다.

 

어려운 합의를 이끌어낸 것에 대한 기쁨은 상당했다. 연석회의 대표자들은 서로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자축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난산(難産)이긴 하지만 옥동자, 옥동녀를 낳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단을 내린 각 당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분당 3년 만에 (통합에 대해) 물러설 수 없는 확고한 기준을 세운 것"이라며 "새로운 진보정당이 건설되면 매우 풍성하고 빠른 속도로 진보정치가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양당이 기존 입장에서 대단히 많이 양보했다"며 "당내 의결절차가 남아 있지만 그때 겪을 어려움보다 새 진보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참여가 더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키워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도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이후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드는데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통합 진보정당 완성, 이제 시작이다

 

그러나 통합 진보정당 완성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이정희·조승수 대표의 정치력이 최대한 발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각 쟁점들이 깨끗하게 해소되지 않고 절충된 상황이라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진보신당의 '강경독자파'의 경우, 지난 3·27 당대회에서 결정한 "북핵 및 3대 세습 반대"·"민주당·국민참여당과의 연립정부 구성 반대" 등을 들며 최종 합의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진·김은주·박용진 부대표는 이날 합의문을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곧장 밝혔다. 이와 관련,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는 "통합파나 독자파나 누구든 지금의 합의안으로는 의결정족수 2/3 이상의 동의를 받기 힘들다"며 "당 대표가 당대회 전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노당에서도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한발 물러선 것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연석회의에 앞서 진행한 양당의 사전협의 과정에서도 이 문제로 최종 합의가 불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5월 말 합의→6월 초 각 정당·단체 의결 완료→9월 통합 완료'라는 통합 일정은 지연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각 정당은 6월 안에 당대회를 열어 최종 합의문에 대한 내부 의결을 완료 지을 예정이다.

 

진보신당은 당 전국위원회를 즉시 소집해 최종 합의문에 대한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다. 논의 결과에 따라 오는 29일 예정된 당대회도 앞당겨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 민노당도 같은 달 4일 중앙위원회를 연 후 19일 예정된 정책당대회에서 최종 결론을 낼 예정이다.

 

야권 지각변동 불가피... 진보진영 합류 공들이는 국민참여당은?

 

통합 진보정당 출현에 따른 야권의 지각변동도 예상된다. 진보정당의 '덩치'가 커지면서 기존의 '캐스팅보트' 역할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특히 내년 총·대선을 앞두고 제기된 각종 야권연대 방안 중 '단일정당론'이 힘을 잃고 '비(非)민주연합론'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단일정당론을 야권연대 방안으로 결정한 민주당도 다시 고민을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무엇보다 4·27 재보선 김해을 패배 이후 당 진로를 놓고 고심하던 국민참여당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앞서 참여당은 연석회의 참여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는 등 진보정당과의 통합에 공을 들여왔다. 최근 유시민 참여당 대표와 이정희 민노당 대표와의 비공개 회동 사실이 밝혀지면서 민노당과의 '선(先)통합' 가능성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유 대표는 지난 30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민노당과 참여당이 선통합하기로 했고, 양당 대표가 만나 이 문제에 대해 조율을 끝냈다는 일부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 바 있다. 이 대표도 같은 날 "참여당 연석회의 합류 문제는 4차 합의문을 낸 이후 다함께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시민회의)' 등은 참여당까지 포괄한 진보정당을 건설해야 제1야당 민주당과 대등한 선거연대를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 중이다. 민노당 내 일부도 이 같은 주장에 소극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진보신당·민주노총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노총의 한 중앙간부는 "참여당은 말이 아닌 정책, 행동으로 진보정당과 함께 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며 "지금 상황으로는 나조차 참여당의 합류를 반대하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진보대통합,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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