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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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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7일 63회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다. 이 드라마는 제주도 송악산 자락의 멋진 풍광 아래 펜션을 운영하는 대가족의 인생 풍경을 담았다.

여느 가족이 그렇듯 이 가족에게도 복잡한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다. 한평생 남편의 고질적인 바람에 시달린 시어머니의 상처, 이혼의 아픔 이후 재혼한 사람들과 그들의 자식들,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열심히 살아가는 독신의 삼촌들….

요즘처럼 자극적이고 강한 설정으로 제작되는 여타의 가족드라마에 비하면 너무 '싱거워' 보일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상처 하나 하나를 보여주는 대사들은 다른 드라마와 비할 데가 없었다.

깊이 있는 대사 외에 <인생은 아름다워>가 좀 더 '특별'했던 것은 동성애자가 등장한 점에 있다. 드라마 중 '태섭'과 '경수' 커플의 등장은 자연스레 동성애자의 커밍아웃 이야기, 이를 가족 안에서 복잡하지만 깊이 있는 소통을 통해 소화하는 과정, 그리고 동성애자 커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고민들로 이어졌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이렇게 이전 드라마와 다른 시선으로 동성애자를 묘사한 데에 있었다.

커밍아웃을 다시 고민하게 한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다워>의 태섭-경수 커플
 인생은 아름다워>의 태섭-경수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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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현실에선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하다. 커밍아웃 이후 부모나 형제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걱정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부모님과 같이 보고, 이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던 주위 사람들도 있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로 인해 많은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길 원치 않는 일부 동성애자들이 드라마로 인해 동성애자가 부각되는 것을 꺼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동성애자에 대해 잘못된 편견이나 차별적인 시선이 강한 한국사회에 살면서 그동안 자신을 감추고 억눌러온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자신을 감추려고만 했던 경향들은 드라마 속에서 태섭의 가족들이 태섭과 경수 커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많이 바뀌어 필자의 주위 친구들은 커밍아웃을 해봐야겠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이런 긍정적 영향을 끼친 드라마지만 <인생은 아름다워> 방영 이후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 연합 등의 단체들이 주요 일간지에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는 내용의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광고를 싣기도 했으며 법무부에서 '<인생은 아름다워>에 동성애 비중이 높아져 교화 방송 의도와 맞지 않다'며 교도소 내 방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태섭과 경수의 성당 내 언약식 장면이 '통편집'되는 사고도 있었다.

"자식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눈물 보일 필요 없이 잘 살면 된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태섭-경수 커플
 <인생은 아름다워>의 태섭-경수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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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극 중에서 태섭의 할머니는 태섭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결국 알게 된다. 하지만 가족들이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할머니의 반응은 의연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과거 자신이 근무했던 학교 교사들 이야기를 꺼내며 옛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필자의 친한 선배 한 분은 10년 전 어머님께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 때 어머니가 태섭의 할머니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셨다고 한다. "(예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며 "자식이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거지, 굳이 눈물 보일 필요 없이 열심히 노력해 잘 살면 되지 않느냐"고 의연하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필자는 아직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게이인 것을 아는 형은 부모님께 커밍아웃 하지 말라고 했지만, 부모가 자식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안 될 일 같아서 나는 커밍아웃 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추석 때 아버지께서 내가 게이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질문을 했을 때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많다고만 답했다.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내게 물어오는 것보다 내가 직접 이야기하는 상황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만큼 내 스스로 더 당당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내 활동에 대해 알릴 예정이다. 아무래도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게 된 데에는 그동안 단체 활동가로서 활동한 영향뿐만 아니라 <인생은 아름다워> 드라마가 보여준 가족들의 모습도 한몫 했을 것이다. 태섭의 할머니가 손자가 동성애자인 것을 담담히 받아들였듯이 사람의 인생은 저마다 다르고 그들이 삶이 있을진대 누가 누구를 혐오하고 차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옛날부터 한국에도 '그런 사람'은 있었고 앞으로도 우리 주위에 동성애자는 존재할 것이다. 동성애자를 함부로 혐오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 법무부는 2007년에 이어 올해 다시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 노력중이다. 차별금지법은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원칙 아래 그 어떤 이유로라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기조를 담아야 하는 법이다. 출신국가, 성별, 정치적 의견은 물론이거니와 당연히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을 해서도,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소중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가족 구성원 모두 서로 아프고 상처난 자리를 만져주고 따뜻하게 감싸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 현실에서도 잘못된 신념과 어리석은 욕망으로 타인을 상처주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모두에게 따뜻했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종걸씨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인권팀장입니다.



태그:#인생은 아름다워,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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