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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타이어 사측의 고강도 구조조정에 반발해 8일부터 노조가 이틀간 벌인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됐다. 사진은 10일 눈이 내리는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정문이다.
 금호타이어 사측의 고강도 구조조정에 반발해 8일부터 노조가 이틀간 벌인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됐다. 사진은 10일 눈이 내리는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정문이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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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를 하고 있던 새벽 5시에 해고통보 문자메시지를 받았어요. 조합원의 1/3이나 받았죠. 그때 공장에는 말이 사라졌고 침묵만 흘렀어요. 예상은 했지만, 머리가 하얘지더군요.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어요."

금호타이어 해고대상자 박아무개(35)씨는 지난 3일 새벽의 일을 담담하게 말했다. 박씨는 월급이 끊긴 지난해 12월부터 아내에게 돈 한 푼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가 3개월만에 집으로 가져간 것은 4월 2일자 해고 통보 소식이었다.

박씨는 "금호그룹이 무리하게 대우건설을 인수하다가 회사가 어려워진 것으로, 우리의 생산성이나 경쟁력이 낮아서 회사가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며 "해고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주위에서 제2의 쌍용차 사태라고 하지만, 그 결과는 다를 것"이라고 전했다.

박씨의 생각과는 달리, 언론은 쌍용차 사태를 거론하며 "노조가 대량해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회사는 망한다", "어차피 '산 자'와 '죽은 자'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기사를 내놓고 있다. 10일 금호타이어 광주 공장을 찾았다.

"21년 묵묵히 일했는데, 문자 한통으로 해고... 너무 억울하다"

금호타이어노조 한 조합원이 기자에게 보여준 해고통보 문자메시지. 회사는 십수년 근속한 1199명의 노동자에게 문자 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했다.
 금호타이어노조 한 조합원이 기자에게 보여준 해고통보 문자메시지. 회사는 십수년 근속한 1199명의 노동자에게 문자 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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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통보를 받은 김아무개(50)씨는 "우울증이 왔고, 성격이 이상해졌다"고 밝혔다. 가정적이던 그는 해고통보 이후 아내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고, 툭하면 눈물을 흘린다. 그와 만난 건 오후 2시께. 새벽 근무를 마치고 오전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그는 "21년간 일하면서 징계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고 회사에 누를 끼친 적도 없다"며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해고를 당한다는 생각을 하니, 큰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간관리자에게 해고 사유를 물어도 "죄송하다"는 말만 돌아온다.

김씨는 기자에게 "1년이 며칠이냐?"고 물었다. "365일"이라고 답하자, 그는 "내겐 1년이 450일 같았다"며 쉬는 날을 찾기 힘든 근무표를 꺼내 들었다.

"기본급이 적다 보니 쉬는 날에도 회사에 나갔다. 하루에 16시간 근무한 적도 많다. 한 달에 한 번 쉰 적도 있다. 엄청난 노동강도로 몸은 아프고, 머리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온전하게 살아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귀족노동자라 할 수 있나?"

해고 통보는 해고대상자뿐 아니라 그들의 아내에게도 큰 충격이다. 이날 만난 해고자의 아내들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서아무개(39)씨는 "남편이 10년간 4조 3교대를 하면서 '뼈가 녹는 고통'이라고 했다, 한 번도 건강보조제를 끊어본 적이 없다"며 "해고 통보가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엄아무개(42)씨 역시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살고 있다. 그는 "아직 남편의 해고 사실을 모르는 어머님이 금호타이어 얘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 하다"며 "회사에서 오는 우편물을 볼 때마다 손이 떨린다"고 말했다. 그의 입술을 파르르 떨렸고, 눈가에 물기가 퍼졌다.

파업 찬성률 72.34%... "산 자와 죽은 자, 함께할 것"

금호타이어 노조의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된 10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타이어 성형작업(고무 등 타이어 원재료를 합쳐 원통형의 타이어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금호타이어 노조의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된 10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타이어 성형작업(고무 등 타이어 원재료를 합쳐 원통형의 타이어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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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타이어 사태는 8일부터 이틀간 벌어진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이하 노조)의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됨에 따라,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조합원 3568명 중 97.7%인 3486명이 참여해 258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찬성률은 72.34%. 노조의 예상보다 높다.

고광석 지회장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갈등보다는 '대량해고에 함께 맞서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해고 통보를 받은 조합원을 살리기 위해 대화든 투쟁이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합원 사이에 "함께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2006년 10월부터 2년간 노조 곡성지부장을 지낸 박영수(43)씨는 "조합원들이 회사를 불신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199명을 대량해고 하겠다는 회사의 입장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지난 2008년과 2009년에도 회사는 대량해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당시 노조는 회사가 요구하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임금동결과 더 높은 노동강도를 받아들이는 대신, 단체협약을 통해 고용안정 보장을 약속받았다"며 "하지만 회사의 약속을 휴짓조각이 됐다"고 말했다.

또한 박씨는 "이번 위기는 금호그룹 총수의 탐욕 탓이니, 경영진이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6년 금호아사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 금호타이어은 5천억 원을 투입했다. 이후 금호타이어는 차입금과 이자 상환에 대한 부담과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판매 부진으로 경영상황이 악화됐고, 지난해 12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해고되지 않더라도 임금이 크게 삭감되는 탓에 '산 자'들도 회사에 대한 불만이 크다. 현장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회사가 제시한 것처럼 임금 20%, 상여금 200%를 삭감하고 휴·잔업을 축소하면, 16년차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114만 원으로 떨어진다. 3개월째 밀린 월급도 언제 지급될지 알 수 없다.

10일 오후 노사는 교섭테이블에 앉았지만 입장차는 그대로였다.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기존의 안을 고수하지 않겠지만 대량해고는 철회할 수 없다"며 "파업을 하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고 지회장은 "회사는 노조를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쪽 "노조가 양보하지 않으면, 회사 어려운 길 간다"

한편, 회사는 노조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금호타이어 홍보실 관계자는 "워크아웃과 같은 비상상황에는 회사를 먼저 살려야 조합원들도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노조가 정리해고·도급화 등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회사의 입장은 달라지긴 힘들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노조의 파업을 비판했다. "채권단의 워크아웃 실시가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에서 파업을 해서 경영정상화를 지연시키면 회사의 생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외부에서는 노조의 파업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해고실시 시점인 4월 2일까지 노사가 합의안을 만들지 못한다면, 해고는 불가피하고 회사는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갈 수 있다"며 "노사가 머리를 맞대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쌍용차와 같은 극한의 상황도 생각하고 있다"
[인터뷰] 고광석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장


고광석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 대표지회장은 10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광석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 대표지회장은 10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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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석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장은 10일 오후 지회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1199명의 조합원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대화든 투쟁이든 무엇이든 할 것"이라며 "(쌍용차 노조가 선택한) 극한의 상황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쟁의행위 찬반투표 찬성률이 72.34%다. 어떤 의미가 있나?
"당초는 찬성률은 65% 정도 나올 것이라고 봤는데, 기대 이상으로 높게 나왔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함께 살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다. 또한 '산 자'들은 금년에 해고 해고통보 대상이 되지 않았다 해도 이후에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2008년과 2009년 회사는 대량해고를 철회한 적이 있다. 이번에 그럴 가능성은 없나?
"작년, 재작년과 비교해 상황이 나쁘다. 그때는 워크아웃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섭에서 노조의 제안을 사측이 스스로 판단해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워크아웃 상황에서는 채권단의 영향이 크다.

또한 정부가 노동 유연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부분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금호타이어 임·단협 교섭은 2010년 노사 관계의 시발점이자, 분수령이다. 정부에서도 노사 교섭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지 않겠나."

- 노조는 1199명 해고하겠다는 회사의 안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
"원칙은 대량해고는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에서 회사에 제시할 새로운 안을 만들더라도 조합원 입장에서 생각할 것이다. 쟁의행위 찬반 투표결과는 이런 노조 집행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다만, 투쟁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있다."

- 10일 교섭 결과는 어떠했나?
"노조는 대량해고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회사는 노조에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안을 고수하지는 않겠지만, 정리해고는 철회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파업을 철회하라고 한다. 말장난이라고 본다."

- 노조 내부에 의견차이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노조는 지난달 26일 회사에 임금 10%, 상여금 100% 삭감하겠다고 제시했다. 복리후생을 중단하고 도급 전환의 경우, 자연발생적인 부분은 인정하겠다고 했다. 2010년부터 3년간 명예퇴직이나 정년예정자 311명에 대해서 도급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의 안을 거부했으니, 원점으로 돌아왔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 새로운 안을 잘 만들어보겠다."

- 현장에서는 노조 집행부가 더욱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 지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공감한다. 부실 경영의 책임은 경영진에 있다. 고통분담이 아니라, 고통전담이 되는 것에 대해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인식을 해야 할 것은 과거와 현재 상황은 다르다는 것이다.

노사뿐만 아니라 채권단의 입장도 있다. 노조 집행부가 강경하지 못하다는 평가는 아직 이르다. 교섭할 시간이 남아있다. 노조 집행부는 1199명의 조합원을 살리기 위해서 투쟁도 할 수 있고 교섭도 할 수 있다.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은 해고대상자의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다."

- '백기투항'을 의미하는 노사 동의서는 절대 제출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산업은행은 긴급 운영자금을 출연하기 위해서 예전부터 쟁의행위를 하지 않고 채권단의 요구를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는 내용의 노사 동의서를 받아왔다. 회사도 살고 조합원도 사는 자구안이 마련된다면, 노사 동의서 제출을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노사 간의 교섭이 타결되어야 한다."

- 금호타이어와 쌍용차 사태가 비슷하다는 얘기가 많다.
"우선 금호타이어는 경쟁력이 없는 회사가 아니다. 이미 수출물량이 많이 확보 돼있다. 작년에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물량을 국내로 이관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제조원가를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에 타이어업계에서 금호타이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낮지 않다.

다만, 대우건설 차입금에 대한 부담이나 최근 금융위기에 따른 판매 부진으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앞으로 충분히 재도약 할 수 있다. 금호타이어를 인수하겠다는 곳도 적지 않다. 일시적인 문제를 두고 대량해고해서는 안 된다."

- 향후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장의 조합원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상황은 더 어렵다. 현재의 국면을 교섭으로도 투쟁으로도 돌파하기 어렵다. 솔직히 쌍용차 예를 들고 싶지만, 그런 극한의 상황 또한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지방노동위원회 노사 대표가 모여 계속해서 협의를 할 것이다. 3월 16일 이후부터 쟁의행위에 돌입할 수 있다. 전날인 15일 쟁의대책위원회를 소집해서 향후 계획을 수립할 것이다. 그 전까지 선전전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태그:#금호타이어 대량해고, #금호타이어, #쌍용차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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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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