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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아이들이 교육감에게 "화이팅!"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학부모들이 교육감을 만나면 사인 해달라는 모습이 말이다. 하지만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취임 9개월 만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비일비재한 현상으로 바꿔 놓았다.

 

지금까지 이 땅에는 수많은 교육감이 있었지만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인물은 없었다. 교육감이 바뀐다고 달라지는 게 없으니 사람들이 관심을 끊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 역시 김 교육감 등장 이후 달라졌다. 사람들은 이제야 "왜 우리가 그동안 교육감에게 관심이 없었지?"라고 반문하기 시작했다.

 

이런 김 교육감의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경기교육의 미래와 한국 교육의 해법은 무엇일까. 김 교육감은 지난 4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열린 '10만인 클럽' 13번째 특강자로 나서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비전을 밝혔다.

 

학부모들의 사인 요청 받는 김상곤, 그의 힘은?

 

역시 김 교육감은 '스타'가 분명했다. 강의실은 100여 명의 시민들로 가득 찼다. 많은 질문이 쏟아져 사회자가 추려내야만 했다. 어린 아이와 함께 온 부모가 있었고, 이들은 강의가 끝난 후 김 교육감에게 사인을 받고 기념촬영을 했다. 교육을 걱정하며 하소연 하는 학부모보다 "수고하세요"라며 김 교육감을 격려하는 시민들이 훨씬 많았다.

 

공교롭게도 이날, 걱정과 하소연은 다른 곳에서 터져나왔다. 바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다. 혹시 김 교육감의 <오마이뉴스> 특강을 너무 의식했나? 두 신문은 이날 똑같이 사설로 김 교육감의 핵심 정책인 무상급식을 비판했다. 언어의 날도 잔뜩 벼려져 있었다. 특히 <조선>은 무상급식을 '독버섯'에 비유했다. 두 신문의 사설 일부를 잠시 보자.

 

"무상급식 공약이 다른 시·도로 번져가는 게 눈에 불 보듯 하다. 무상급식 다음엔 공납금 공짜 공약, 외고·자사고 폐지 공약, 대학입시 추첨제 공약이 차례차례 또는 한꺼번에 등장할 것이다.(중략) 아첨꾼 정치인들은 불평등과 빈부격차라는 사회의 그늘을 비집고 독(毒)버섯 돋아나듯 돋아난다." - <조선> 4일자 사설 ''무상급식' 공약 경쟁, 선거 앞둔 毒버섯이다' 중

 

무상급식 논란을 촉발한 당사자는 작년 전교조의 지원으로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다. (중략) 국민을 속이고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공약을 남발하는 출마자들은 유권자들이 가려내야 한다. 현명한 유권자라야 선진 국가를 만들 수 있다.- <동아> 4일자 사설 '유권자는 '전면 무상급식' 공약의 허실 직시해야' 중.

 

김 교육감은 이들 신문의 보도에 대해 "문제점이 있으면 비판할 수 있지만, 과연 그런 식으로 표현하고 논리를 펴는 게 민주 사회에서 정당한 일인지 의문"이라며 "무상급식을 '독버섯'에 비유하는 건 복지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해 하는 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김 교육감은 "퇴행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방향이 아닌 과거 지향적인 냉전적인 공격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다"며 "그런 공격은 우리 교육이 앞으로 나아가는데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복지자본주의도 모르는 퇴행적 공격"

 

이날 김 교육감은 자신이 9개월 임기 동안 실천한 일 중 전국적인 눈길을 끈 정책들은 결코 대단한 게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김 교육감은 "나는 그저 우리 헌법이 담고 있는 민주주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김 교육감은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 시국선언 교사 징계 유보, 그리고 경기도청의 교육국 강행과 이에 따른 갈등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 교육감은 "무상급식은 헌법 제31조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취지를 따르고자 했을 뿐이다"며 "학생인권조례 역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 호보가 교문 밖에서 멈추지 않고 교문 안에서도 흐르게 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또 그는 "시국선언 교사 징계 유보도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부분을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고, 도청의 교육국 설치는 교육자치 부분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어서 반발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육감이 생각하는 우리 교육의 해법 역시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는 제도권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수장답게 공교육 혁신과 정상화를 통해 아이들의 학업 부담을 줄이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을 경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김 교육감이 주되게 강조한 게 바로 혁신학교였다. 혁신학교는 창조적인 교육 내용과 과정을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서로 협력해 자유롭게 만들어 내고 이를 도교육청이 지원하는 새로운 학교 모델을 말한다.

 

"인간의 존엄성 보호가 교문 안에서도 흐르게 합시다"

 

현재 경기도에는 13개의 혁신학교가 운영중이고, 올 1학기에 새로 19개 학교가 추가된다. 도교육청은 매년 50개씩 추가 설치해 오는 2013년까지 경기도에 총 200개의 혁신학교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는 경기도 전체 초중고의 약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김 교육감은 "어떤 조직이나 단체든 10%가 변화의 씨앗이 되면 전체적으로 확산될 수가 있다"며 "혁신학교가 내용과 모습을 잘 갖춰 지역 변화의 거점 역할을 한다면 전체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다. 그래서 김 교육감은 "성급하게 성과를 내려고 서두르지 않고, 교장 교사들이 열정을 낼 수 있도록 상호 협의를 잘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교육감은 "교장은 좀 더 민주주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교사들은 다시 한 번 열정을 선보이고, 그리고 학부모는 내 자식만이 아닌 학교를 생각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게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게 변합니다. 교육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꿔 봅시다. 지금까지 우리 초중등 교육은 대학입시의 종속 변수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제 주체적으로 독립 변수 돼 자기 교육방식과 철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학이 '학교가 저런 아이들을 길러내니, 우리도 새로운 인재를 선발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합시다."

 

"학력 신장하고 가치교육도 실현... 절대 환상 아니다"

 

혹시 김 교육감이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강연을 들은 시민들은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현실을 모르고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냐고. 이에 김 교육감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무슨 무슨 대학에 가야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현실, 저도 절절하게 느낍니다. 그리고 그쪽 방향으로 몰아치고 있는 교육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내가 제시하는 방식은 거기(입시 위주 교육)를 완전히 무시하자는 게 아닙니다. 학교를 혁신해 자기주도적으로 학력을 신장하도록 하고, 창의적이면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을 육성하자는 겁니다.

 

제가 말하는 건 이상이 아닌 현실적 대안입니다. 이대로 가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학부모에게 모든 교육의 부담을 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제시한 대안은 이미 선진사회에서 다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제 우리도 사회 수준에 맞게 조정해 가야합니다. 절대 환상이 아닙니다."

 

이어 김 교육감은 "우리 교육 목표를 '자아가치 교육'으로 바꿔, 아이들이 자아실현이라는 꿈을 갖게 하자"며 "그를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본인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지식과 생활을 통해 익히고 채득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김 교육감은 "흔한 말로 아이들이 개념도 없이, 몰가치하게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며 "삶의 의미를 자기 스스로 느끼고, 만들어 가는 삶의 되는 교육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교육의 실현을 위해 김 교육감이 강조한 건 바로 '국가의 책임' 그리고 상식과 헌법적인 가치였다.

 

아, 그리고 김 교육감은 "교육자로서 교육문제만 생각할 뿐 정치에 뛰어들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맞짱'을 기대하는 분들은 이쯤에서 기대를 접는 게 좋을 듯하다.


태그:#김상곤, #10만인 클럽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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