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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국무총리가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40대 국무총리 취임식에서 참석자들과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40대 국무총리 취임식에서 참석자들과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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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최근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회원 특강에서 지난 10년에 걸친 '민주파' 정권에서 일자리와 양극화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 결과, 퇴행적인 이명박 정부가 등장했다고 진단했다.

"사회양극화가 점점 벌어진 것은 모든 통계지표가 증명한다. 그때 누가 나타났나? 변신한 한나라당이 나타났다. 원래 한나라당에는 '독재의 후예'라는 지울 수 없는 문신이 있었다. 하지만 짙은 화장으로 이 문신을 지우고 '먹여 살릴 수 있는 보수'로 나타났다. '진보개혁세력이 망친 경제를 보수가 살리겠다'고."

첨언하면 '부패의 문신'도 지웠다. 더러 부패해도 좋으니 잘 먹고 잘살게만 해달라는 국민이 늘어나고, '일자리만 주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며 취직 걱정 안 하게 해달라는 젊은이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 변신한 한나라당이 짠~ 하고 나타난 것이다.

1992년 민주당 빌 클린턴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Stupid, it's economy!)라는 슬로건은 2007년 한국 대선에서도 유효했던 셈이다.

우파의 부패에는 관대하지만 좌파의 분열에는 추상같은 국민성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40대 국무총리 취임식에서 정운찬 총리와 국무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40대 국무총리 취임식에서 정운찬 총리와 국무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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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더 보탠다면, "보수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명제가 한국 사회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명제가 '참'이라면 지난 15대에 이어 16대 대선에서도 '차떼기 부패당'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한나라당은 진즉 없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17대 총선에서 121석을 얻어 단지 12석이 줄었을 뿐이다. 그것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몰아친 가운데서도.

해석이 분분했다. 일단, 보수우파의 부패에는 너그럽고 진보좌파의 부패에는 추상같은 국민의 이중기준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 다른 가설도 가능하다. 보수우파의 부패에는 관대하면서도 진보좌파의 무능과 분열에는 엄격한 국민성 덕분(?)이라고나 할까?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과반인 152석을 차지했다. 탄핵 역풍 덕분이었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분열로 그 이후 각종 선거에서 무려 30 대 0으로 진 뒤에야 18대 총선을 앞두고 소멸되었다. '보수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는 명제는 '거짓'이었지만, '진보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명제는 '참'이었다.

이런 비합리적인 국민성과 이중기준을 간파한 것일까?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족벌언론은 '진보좌파' 정부 10년 동안 끈질기게 부패라는 '진보좌파'의 약한 고리를 공격했다. 이들은 '00 게이트' 운운하면서 '진보좌파'의 부패 이미지를 덧씌웠다. 권력형 비리로 드러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게이트라고 공격함으로써 '진보좌파도 정권을 잡으니 부패한 보수우파와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국민들의 이와 같은 정치의식의 변화 속에서 가능했던 측면이 크다. 결과적으로, 실제로 무능했건 아니면 무능한 이미지 탓이건, 순진한 진보좌파는 교활한 보수우파의 적수가 안되었다. 위장전입 5번에 양도소득세 등 3억5천여만원의 세금을 탈루한 의혹이 있는 '만신창이 대통령'의 탄생은 이런 배경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맨주먹으로 300억대 재산을 일군 이명박 대통령을 청부(淸富)로 여기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비록 때는 많이 묻었더라도 잘 먹고 잘살게 해주면 눈감아 줄 수도 있다는 '비판적 지지'였다. 왜냐하면 그가 원래 부패한 '차떼기 정당'과 보수우파의 후보였으니까.

정운찬 총리후보 지명 3주 만에 깨진 '신선한 충격'

그러나 국민의 인내력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MB는 야당후보를 압도한 지지표에 취해 그걸 몰랐다. 보수우파의 부패에 관대한 국민성을 과신한 나머지 그는 자신과 출신 배경이 흡사한 '강부자'(강남 땅 부자)와 '고소영 S라인'(고려대-소망교회-영남+서울시청)으로 참모진과 내각을 채웠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망사(亡事)였다. MB 정부와 한나라당의 지지도 하락은 이때 시작되었다.

그리고 1년 6개월 동안의 시행착오 끝에 MB 정부는 지난 9.3 개각 인사에서 중도-실용주의자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후보자로 지명했다. 충청 민심을 겨냥한 심대평 카드의 무산이라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국민 반응은 일단 지난 10년간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코드인사'라고 비판했던 한나라당 정권이 강부자-고소영 S라인 인사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그러나 '신선한 충격'은 그로부터 3주 만에 인사청문회를 통해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그는 서울대 총장 시절 기업체 대표로부터 용돈 1천만원을 받아 썼고, 인세 수입과 기업 자문 및 강연료 등으로 발생한 세금을 탈루했으며,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고령으로 병역이 면제되었으며, 미국서 낳은 아들은 청문회 직전까지 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만신창이 대통령'에 이은 '만신창이 총리후보'였다.

아들 국적이 무슨 상관이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다. 문제는 정 후보자가 그런 사실을 숨기려 했다는 점이다.

정 후보 아들의 이중국적 의혹 제보를 받은 당시 인사청문위원인 김종률 의원이 국적 확인을 요청하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지난 13일 '후보자 및 배우자, 자녀의 국적 및 국적 변동 관련 신고내역, 관련서류 사본 1부' 제출을 의결했다. 그러나 이틀간의 청문회 가운데 첫날인 21일까지도 정 후보자는 그 '사본 1부'를 제출하지 않았다. 1시간이면 준비할 수 있는 서류를 1주일 동안 제출하지 않은 것은 고의적 은폐다.

그러자 김종률 의원이 청문회 첫날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물었다. 이중국적자인 아들이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그러자 정 후보자는 이렇게 반문했다. "한 가지 여쭤볼 게 있다, 제 아이가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다는 말이냐?" 그러곤 다음날 이렇게 실토했다.

"(이중국적자였던) 아들이 제대 후 2년 내 국적을 택일하게 된 국적법을 몰라 한국 국적을 자동으로 상실했고 최근 이 사실을 알고 국적 회복을 위해 16일 미 국적 포기를 신청, 절차가 진행 중이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도중 관계자로부터 쪽지를 전달받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도중 관계자로부터 쪽지를 전달받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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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모두 청문회를 앞두고 알게 된 허물들

공교롭게도 그가 깨달은 자신의 허물은 모두 최근에 와서야 알게 된 것들이다. 아들이 한국 국적을 상실한 것도 청문회 직전에 알고서 미국 국적 포기신청을 냈으며, 종합소득세를 탈루한 것도 청문회 직전에 알고서 청문회 당일 추가로 세금 1천만원을 냈다고 했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그는 청문회 직후 자신의 심경을 <중앙선데이> 기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청문회에서 나는 고생했지만 배운 게 많았다. 나와 가족에겐 청문회가 하나의 축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중략)…모든 게 내 부덕의 소치이고, 세금 문제 등 몇 가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처리한 점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야당 의원 입장이었다고 하더라도 일부 세금 문제에 대해서는 꼬집는 질문을 했을 것이다."

축복일 법도 하겠다. 그가 제출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의 수입보다 지출이 4200만원가량 더 많았는데도 금융자산은 오히려 3억2천만원이나 늘어난 것에 대해 끝내 속 시원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자신을 엄호해주는 과반수의 여당 의원들 덕분에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갈 수 있었으니까.

병역 기피 의혹도 마찬가지다. 그는 독자로 6개월 방위를 마치면 되었지만 작은 아버지에게 양자로 간 뒤 미국에 가서 오지 않았고, 1977년 귀국해서는 고령을 이유로 면제를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청문회에서 천연덕스럽게 "병역을 기피할 의도가 없었다"면서 "나는 어릴 때부터 군대 가고 싶었다"고 한다. 군대에 가고 싶었지만 못 갔단다. 왜냐고? 미국에 있는 동안 징집명령서를 한 번도 못 받아서란다. 그러고선 자기 말을 믿으란다.

해외에 나가는 유학생이나 운동선수에게 병역 의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다. 자신의 병역 의무 연장기한이 언제까지이고, 그걸 넘기면 고령으로 인한 면제사유가 되지만 그때까지 귀국하지 않으면 병역기피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유학생은 없다. 명백한 것은 그가 군대를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언제든지 갈 수 있었는데 안 갔다는 사실이다. 그는 심지어 홀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귀국하지 않았다. 비행기 삯이 너무 비싸서였단다. 혹시 귀국하면 곧바로 군에 끌려갈까봐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공교롭게도 그의 장인은 병무행정이 병무청으로 독립하기 전에 국방부 병무국장을 지낸 육군 소장 출신이다. 장기 외국 유학생이 징집명령서를 못받아 고령으로 병역을 면제받을 만큼 대한민국 병무행정은 허술하지 않다. 적어도 그의 장인은 자신의 딸과 결혼해 유학 중인 사위가 병역 의무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징집명령서를 받지 않도록 할 만한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병역 기피 의혹은 지극히 합리적 의심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투표를 진행해 총 투표수 177표 중 가 164표, 부 9표, 기권 3표, 무효 1표로서 임명동의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하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투표를 진행해 총 투표수 177표 중 가 164표, 부 9표, 기권 3표, 무효 1표로서 임명동의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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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과 납세 의무는 보수우파의 최상 가치

우리나라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4대 의무 중에서도 국방(병역)과 납세의 의무는 국가라는 제도를 지탱하는 근간이자 보수우파의 최상의 가치다. 국민의 국방 및 납세 의무로 지탱되는 국가에서 국무총리는 '일인지상 만인지상'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의 만기를 친람하는 자리다.

그러니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정운찬 후보자가 총리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한겨레>-리서치플러스 26일 여론조사결과, 국민의 58.3%가 소득세 탈루 등 도덕성 문제를 들어 정 후보자의 총리직 수행에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이런 여론을 무시한 채 수의 우위를 앞세워 '만신창이 총리후보자'의 인준동의안을 통과시켰다. 보수정론지임을 자처하는 조중동은 이런 보수정부 총리로서의 치명적인 흠결을 애써 모른 체했다. 경륜과 노련함으로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돋보인 강운태 의원(광주 남구, 민주)은 정 후보자를 이렇게 평가했다.

"고의로 (부정한 짓을)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너무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거짓말은 안 한다'는 정 후보자의 말을 믿는다면, 이 말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본인은 '로맨스'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제3자가 보기에는 '불륜'인 것이다. 물론 그때는 총리가 되려는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00보 양보해도 가장 근본적인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만신창이 불륜총리'가 보수정부에서 '만인지상'으로서 권위를 세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명박 정부가 중도실용주의 및 친서민정책 노선으로 선회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고, 정 후보자 또한 그에 동조하는 소신을 피력하고 있는 점이다. 이를테면 정부가 28일 발표한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국방예산 증가율이 국방부가 당초 요구한 7.9%보다 훨씬 더 낮은 3.8%선에서 편성된 것은 이 정부가 보수에서 중도실용주의로 바뀌고 있는 '신호'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정 후보자의 청문회 발언에서도 그런 동조 의지가 엿보인다.

충청권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연합 및 행정도시무산음모저지 충청권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행정도시·혁신도시 무산음모저지 범국민행동 출범식 및 궐기대회'에서 정운찬 후보자의 총리 지명 철회와 세종시 설치법 국회 통과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충청권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연합 및 행정도시무산음모저지 충청권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행정도시·혁신도시 무산음모저지 범국민행동 출범식 및 궐기대회'에서 정운찬 후보자의 총리 지명 철회와 세종시 설치법 국회 통과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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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후보자의 세종시 소신 발언과 용산 참사 해결 약속

그는 인사청문회 및 언론 인터뷰에서 "총리가 된다면 무슨 일을 하는 데 주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세종시 문제와 용산참사 문제 해결을 선결과제로 적시해 총리로서 국가적 난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세종시를 자족도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원안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소신을 밝혔으며, 이후 언론(중앙 선데이)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세종시를 모범 도시로 만드는 데 열중할 것이다. 행정부처 일부를 옮기는 걸로는 세종시가 훌륭한 도시가 되지 못한다. 행정의 비효율 문제를 해결하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모범 도시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 임기가 6개월이 되든, 1년이 되든 세종시의 기틀을 만드는 데 힘쓸 것이다. 공주 출신인 내가 공주에 대해 나쁜 일을 하겠느냐. 취임하면 많은 분을 만나 의견을 들을 것이고, 세종시 건설현장도 찾으려고 한다. 설마 고향분들이 나에게 돌을 던지겠느냐."

일찍이 알프레드 마셜은 경제학도에게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마셜은 캠브리지대(킹스 칼리지)의 수학도인 케인스에게 경제학 공부를 권유해 그를 세계적 경제학자로 이끈 스승이다. 케인즈언을 자처하는 정 후보자가 마셜을 존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 후보자 또한 2007년에 펴낸 <가슴으로 생각하라>는 제목의 자서전에서 "어려운 때일수록 가슴으로 생각하고, 힘든 일일수록 가슴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어쩌면 '차가운 머리'로 풀어가야 할 세종시 문제는 그의 중도실용주의 노선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고, '따뜻한 가슴'으로 접근해야 할 용산참사 문제는 그가 표방한 친서민 정책의 진정성을 재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국민은 그의 임기가 6개월이든 1년이든, 그가 약속한 '중도-실용주의' 노선과 '용산 참사' 해결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태그:#정운찬, #마셜, #케인스, #세종시,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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