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는 한 게 없질 않은가." 문재인 의원의 평가는 냉혹했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쏠리는 관심을 모를 그가 아니었기에 그는 신중했을 것이다. 그러나 27일 대선 패배 후 첫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 의원은 "박 정부 출범 1년은 낙제점"이라고 잘라 말했다. 출범 첫 1년에 이 정부는 한 일이 없다면서 강력히 비판했다. 이제, 늘 그래왔듯이 이정현 청와대 수석이 등장해 또 '대선불복'을 외칠 차례인가.
대선경쟁자, 보수언론, 헌신적 지지자... 쏟아지는 비판
문 의원의 평가만 이렇게 박한 것은 아니다. 23일 <조선일보>는 '청와대와 여당, 지지율 하락 이유 똑바로 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정부와 여당은 지금 국민의 믿음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바로 봐야 한다"며 "대통령에게는 과잉 충성하고 상대방에겐 과잉 대응하는 것을 봐 온 국민의 피로가 누적됐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 신문이 사용한 단어가 예사롭지 않다. '국민의 믿음'을 언급했고 그것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표현, 여론 흐름에 민감한 신문이 내놓은 박근혜 집권 첫해 진단이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역시 비판 대열에 일찌감치 합류했다. 이 교수는 19일 <평화방송>에 출연해 "제일 큰 문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의 한 해 동안 내걸었던 약속"이라며 "경제민주화, 정치쇄신 등 이런 것들이 지난 1년 동안 형해화되고 있지 않나 이런 걱정을 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껍데기는 있으나 속이 비어 있는 것이 형해화라며 박 대통령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손수조, 이준석의 발언은 또 어떠한가.
가장 화끈한 평가는 역시 가장 적극적인 지지세력으로부터 나오는 법. 보수논객 지만원 씨는 2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지긋지긋하게 옹호해 온 박근혜, 이젠 나도 버린다'에서 "박근혜는 참으로 한심한 대통령이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서 "박근혜로는 이 난국 헤쳐 나갈 수 없다"며 재선거를 주장했다. 지씨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위해 2000만원을 들여서 광고를 게재할 정도로 맨 앞에서 선거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최근 그 광고로 인해 10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참고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에서는 얼마 전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유시민씨가 박 대통령을 '박근혜씨, 박통'으로 호칭했다고 입에 거품을 물며 비판한 바 있는데, 같은 편이라고 대놓고 봐줘서는 곤란하다. 지씨는 아예 호칭조차 없다. 그냥 '박근혜'로 시작해서 '박근혜'로 끝났다. 역시 같은 태도로 거품 물고 지씨를 비판해야 나름 균형을 생각하는 언론으로 비춰질 것이다.
지만원씨의 주장이 너무나 강력해서인지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의 "박근혜 정권은 아마추어정부"라는 비판이나 원희룡 전 의원의 "공안의 과잉과 정치의 마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민과 권력의 대결구도를 가져온다는 역사의 경험을 늘 성찰해야 한다"는 비판, 이재오 의원의 "1년 동안 한 일이 없다" 등의 발언은 애교로 들린다.
이처럼 야권, 여권을 아우르며 비판을 받고 있는 대통령이 또 있었던가. 그것도 집권 첫 해! 자숙하고 있어야 할 대권 경쟁자부터, 우호적인 보수언론, 헌신적인 지지자에 이르기까지 돌아섰다. 종교계는 돌아서다 못해 '퇴진'하라고 미사와 기도를 드리고 있다. 노동계까지 '정권퇴진'을 걸고 총파업하기에 이르렀다. 이 정부는 장성택 사건을 부각시키며 북한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민심은 냉담하다.
'박근혜가 바꾸네'?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선거의 여왕'
'선거의 여왕'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국정원, 경찰 등으로부터 대대적인 선거지원을 받은 '부정 출발'이 문제였을까? 물론 국가기관 대선개입은 묵과할 수도, 묵과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것을 지금 위기의 본질로 분석하기에는 모자람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민주당에서 애초 '사과' 정도로 넘어가려 하지 않았던가. 이는 총체적 난국의 일정 부분을 설명하는 변수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전 정권을 무리하게 떠안았기 때문일까? 역대 대통령 중에서 비토 세력을 가장 많이 보유한 MB와 차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반대로 MB를 구속하는 식의 차별화를 한다면 인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순간적인 지지율 반등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지속될 것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문재인 의원,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비판은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대목으로 수렴한다. 이는 '무능'을 의미한다. 실제 대선 1주년을 맞이해 이정현 홍보수석이 브리핑 자리에서 업적이라고 읊은 것들은 이상돈 교수 표현 그대로 '형해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창조경제 성과는 좀 더 기다려야 하고, 검증할 수 없는 '외교는 전반적으로 잘 했다'는 정도.
'박근혜가 바꾸네'라고 큰소리치며 대선 기간 동안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개혁공약을 내놓았지만 'MB 6년 차'일 뿐 새 정부 개혁의 실체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전 정권과의 차별화도 없다. 지난 1년 동안 '공약 폐기다, 수정이다'라는 논란만 무성했을 뿐이다. MB는 집권 첫해인 2008년 대운하 논란을 일축하며 '4대강 사업'을 강행한 바 있다. 직접 나서서 기자회견조차 하지 않은 '불통'은 결국 '무능'을 감추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해석될 정도다.
일각에서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청구 등을 집권 첫해 업적으로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언론에서 '재판 진행될수록 허점을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3년 동안 내사해 왔다는 사건 치고 실체가 모호하다. 국정원 주장은 미덥지 못하다. 이러한 것을 사상 첫 여성대통령의 집권 첫해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전여옥의 예언, '박근혜는 반대 세력 설득 못 시켜'
야당 대표의 단호하되 짧은 표현에는 호응하는 지지세력이 등장한다. 단호하고 '원칙'을 가지고 발언하는 듯한, 안정감도 느끼게 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동생이 아니라면 아니다" 등이 그에 해당한다. 야당 대표일 때에는 아무도 발언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노무현 때도, 이명박 때도 가끔 등장해서 시원하게 짧은 말,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 등으로 존재감만 부각시키고 사라지면 됐다.
박 대통령의 불행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야당 대표와 동일하다는 데 있다. 야당 대표일 때 호응을 얻었던 방식이 지금은 오히려 비판 지점이 된 것이다. 박 대통령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최근의 표현은 "철도 민영화 아니라는데… 파업 명분 없다"이다. 그와 같은 표현은 조정과 화합을 지향해야 하는 대통령의 것이 아니다. 야당 대표였더라면 호응하는 국민들과 언론이 있었을 것이나, 대통령의 발언으로는 문 의원의 표현대로 '낙제점'이다. 왜 아닌지에 대한 설명도 없기에 지지세력조차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여의도 정치를 할 당시 박근혜 대표의 발언을 언론에 전달했던 전여옥 씨의 과거 예언이 흥미롭다. 전씨는 2012년 1월 출간한 책 <i전여옥-전여옥의 私, 생활을 말하다>에서 박 대통령의 짧게 말하는 표현 방식에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박근혜 의원의 언어는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들의 '베이비 토크'와 다름없다"며 "'대전은요?'와 같은 단언으로는 반대 방향에 서 있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여옥씨는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내면서 박근혜 의원을 2년간 수행하며 지근 거리에서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박근혜 대통령을 분석했다. 기자생활을 오래 한 그녀가 분석한 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반쪽 짜리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즉, 비판세력과 소통하며 그들을 설득해 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었고, 2년 후 그것은 '성지'가 됐다. "자랑스러운 불통" 운운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박 대통령은 갈등을 조정할 역량이 없음을 노출하고 있다.
철도민영화, 의료민영화, (국가 지급보장 없는) 국민연금법 개정안, 국가기관 대선개입, 채동욱 혼외자 사건 등은 해결되지 않은 폭발력이 커다란 사안들이다. 야당과 비판세력에서는 역량을 동원해서 논쟁을 키우려 할 것이고 지금과 같이 박 대통령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란 태도를 고수한다면 그 공격은 예상 외로 잘 먹혀들 것이다. 이 정부가 간절히 원하는 안정된 정국은 요원할 것이다. 그것은 야당의 비협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지위에서 갈등 조정을 하지 못하는 집권자의 무능 때문이다.
취임 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대통합과 '100% 대통령'을 내세웠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자랑스러운 불통'을 고집하겠다고 선언하는 기막힌 처지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 대통령 자질 없다"고 단언한 전여옥의 예언은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쓰이지 못한 과거 인물의 악담 정도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그 인물이 대통령이 된 지 1년이 지나는 시점, 예언은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