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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딸은 치킨이 간절하다. '길들여진 입맛'은 집요한 열망으로 이어지고 튀김조각이 식탁에 낭자해져야 비로소 끝이 난다. 그렇다.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은 이 세상 모든 '엄마의 몫'이다. 식재료의 원산지와 첨가물을 확인하고 한 번이라도 더 씻어내고자 노력한다.

외식이나 배달음식도 예외는 아니다.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한 각종 화학물질과 식품첨가물 등 보이지 않는 유해요소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식약청에서 인정한 식재료라 해도 모두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야채나 과일이 오래도록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은 부패방지를 위한 첨가물이 사용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도시농부와 요리사가 함께 한 도시장터를 찾은 사람들
 도시농부와 요리사가 함께 한 도시장터를 찾은 사람들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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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농부와 요리사가 만드는 도시장터 "마르쉐@"

꼼꼼한 주부가 되고자 노력해도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을 쉽게 해소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값비싼 유기농 음식만을 고집하기엔 서민의 지갑이 너무 얇다. 이러한 '답도 없는 고민'에 빠진 엄마들을 위한 솔깃한 대안의 장이 열렸다. 이름 하여 도시농부와 요리사가 함께 만드는 도시장터 <마르쉐@>가 그것이다.

지난 13일 혜화동에서 열린 이 행사는 여성환경연대, 마리끌레르, 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이 공동주최한 도시장터다. 성북동의 할머님들이 텃밭에서 일군 야채, 그리고 도심 곳곳의 빈 공간이나 건물의 옥상을 텃밭으로 활용해 재배한 먹을거리를 요리사가 음식으로 만들어 함께 나누는 장이다.

그뿐 아니다. 주먹밥과 핑거 푸드로 진화시킨 사찰음식 같은 먹거리 외에도 각종 잼과 드레싱, 다양한 종류의 쿠키와 각종 빵들, 수제양갱,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같은 디저트와 각종의 신선한 채소 과일 주스와 차들, 알록달록한 빛깔의 각종 장아찌와 피클, 드레싱, 말린 나물 같은 건강하고 계절이 담긴 느린 음식들이 있었다.

서울 근교의 텃밭에서 공수해 온 야채를 팔고 있는 모습
 서울 근교의 텃밭에서 공수해 온 야채를 팔고 있는 모습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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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환경연대는 수년간 도시텃밭 확대를 위한 전문 강사를 양성, 현재까지 30여 개 지역의 학교에서 텃밭교육을 해 왔다. 그들은 도심의 건물 옥상에 작은 텃밭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옥상가든'이라 불리는 도심의 텃밭은 홍대역 인근 다리텃밭과 문래 철공단지 옥상 등 서울지역 4곳에 자리를 잡았다.

문래 철공단지 옥상의 텃밭이라고? 이색적이고 신선한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여성환경연대의 이보은씨는 "부동산의 가치로 건물을 소유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지역 커뮤니티를 위해 공동으로 활용되는 것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문래동 철공단지 건물 옥상에 텃밭을 허락해주신 사장님은 굉장히 드문 경우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이뤄진 지역의 청년 예술가들의 텃밭모임으로 인해 지역 커뮤니티가 생겼고, 지역사회의 큰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여성환경연대 이보은(왼쪽)과 10년후연구소 대표 송선희(오른쪽)씨
 여성환경연대 이보은(왼쪽)과 10년후연구소 대표 송선희(오른쪽)씨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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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와 요리사, 아티스트들이 모여 만든 도시형 시장 <마르쉐@>는 지난 9월 문래동 옥상 텃밭에서 모인 사람들의 대화에서 출발한다.  김수향(카페 수카라의 대표)씨는 일본의 3·11 원전사고 이후 맑은 공기와 마실 물이 사라지고 흙의 오염으로 인해 채소를 구할 수 없었던 경험을 회고한다.

자신의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이후 얼굴을 맞댄 거래, 생산자를 알고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열망으로 <마르쉐@>를 제안한다.

'마르쉐키트'와 '쓰레기 제로의 시장' 등 환경을 위한 색다른 기획들

보증금을 받고 접시와 포크를 대여해 주고 사용 후에 다시 돌려주는 시스템
 보증금을 받고 접시와 포크를 대여해 주고 사용 후에 다시 돌려주는 시스템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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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 성북동, 암사동 등 서울근교 작은 텃밭을 지닌 40여 팀의 농부와 요리사, 아티스트팀이 함께 한 이번 행사에는 도시농부들의 특별한 감각으로 예쁘게 포장한 텃밭 채소들이 선 보였다. 그리고 지역 농민들의 유기농 먹을거리를 공수한 요리사들이 다양한 멋과 맛으로 만들어낸 요리들도 자태를 뽐냈다.

도시농부가 일군 야채로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고 아티스트들이 멋들어진 요리로 선을 보이는 것이다. 그밖에 일본 도레미팜의 농부 타카다씨의 '병조림 워크숍', 클래지콰이의 알렉스와 홍대텃밭의 도시농부가족 오가닉 사운드가 함께 만드는 '작은 콘서트'도 열렸다.

환경을 생각한 도시장터의 아이디어는 다양했다. 마르쉐에 재능기부로 참여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은 전통시장에서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한 판매대, 조리대, 불자리, 물자리 등을 만들어 어디서든 손쉽게 시장을 만들 수 있는 '마르쉐 키트'를 선보였다.

또한 사람들이 모이면 으레 생기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쓰레기 제로의 시장'에 도전한다. 보자기와 더불어 컵과 접시, 나무젓가락과 냅킨용 손수건으로 구성된 '마르쉐 렌탈 식기세트'가 그것이다. 음식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보증금을 내고 접시와 컵, 수저를 빌려 쓰고 다 사용한 것을 가져오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시스템이다.

그 자리에서 손질한 야채로 요리를 만드는 모습
 그 자리에서 손질한 야채로 요리를 만드는 모습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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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와 소비자 개인의 삶이 교류되며 서로를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시장'을 꿈꾸며 기획안 <마르쉐@>는 12월부터 6개월간 장소를 바꾸며 매월 둘째주 토요일 개최할 예정이며 내년 5월부터 장소를 고정하여 정례화, 향후 평일마르쉐, 지역 마르쉐등을 열 계획이다.

대안학교와 대안교육, 그리고 이제는 대안시장이다. <마르쉐@>는 믿을 수 있는 식재료와 정직한 요리를 만날 수 있는 도심의 장터다. 물론 싼 편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많은 양의 소비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은 대안을 찾아가는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지역단체의 텃밭강의를 찾아서 들어도 좋을 것이다. 강의를 통해 1년 농사를 경험하면 아파트 복도나 베란다에 소규모로 나만의 텃밭을 꾸릴 수 있다.

식탁에 떨어진 튀김조각을 치우며 난 오늘저녁 장바구니에 무엇이 담을지 생각해 봐야겠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밥상의 근원'에 대한 고민은 이제부터다.




태그:#도시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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