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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역에 오랫동안 싸워온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촛불, 시민들이 함께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김장담그기를 합니다. 다르게 살아온 삶, 다르게 걸어온 걸음이지만 김장을 담그며 서로에 대해 말문을 틔우고자 합니다. '사람꽃을 만나다' 인터뷰는 김장행사의 일환으로 지역에서 오랫동안 싸워온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그녀의 삶이 투쟁 사업장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더불어 살아가는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한국 3M에서 해고된 백승철씨.
 한국 3M에서 해고된 백승철씨.
ⓒ 박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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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이렇게 오랜만에 불러보네. 늘 아이가 자는 시간 느지막이 들어오는 당신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면서 살가운 말 한마디 못했지? 미안한 마음은 항상 갖고 있었는데, 표현하지 못했네. 굳은살 박힌 손 한 번 제대로 잡아주지 못 했던 내가 오늘은 참 원망스럽다.

오늘 한 노동자를 만났어. 한국3M이란 회사에서 해고당하고도, 그 회사 작업복을 벗지 못하는 그를 보면서, 평일이든 휴일이든 작업복을 벗지 못하고 사는 당신 생각이 나더라. 그에게서 당신의 모습을 봐서 그런가봐.

시대가 참 모질다. 하루 종일 일하면서 바둥거리고 사는 우리도 그렇고, 해고당하고도 회사 정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오늘 만난 그 노동자에게도 그렇고. 이 얼어붙은 세상을 사는 모든 이들이 그렇겠지만 말이야. 오늘 당신을 떠오르게 한 한국3M에서 해고된 서른네 살의 젊은 노동자 백승철이라는 사람 이야기를 해볼게.

그의 마음을 뒤흔든 한여름의 '겨울 작업복'

당신이 일하는 회사 근처 경기도 화성시 장안외국인투자전용단지에 한국3M이란 회사가 있어. 회사의 물류차량과 자재차량, 출퇴근 통근차 빼면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그곳에 그 사람과 그의 동료들이 살고 있어. 가만히 서 있어도 발 시린 이 계절에 그 사람은 그 텅 빈 거리를 지키고 있더라고. 컨테이너 박스에 스티로폼 장판을 깔고, 가스난로 온기에 의지하면서 말야.

원래 그 사람은 전남 나주 사람이었대. 고향이 시골이어서 한국3M에서 일한다는 건, 안정된 직장에 취직한 걸로 여겨졌다고 해. 사원증을 달고 은행에 가면 대출도 잘 되는 그런 회사말이야. 나주 3M에서 그는 설거지 할 때 쓰는 수세미를 만들었어. 한여름 오븐에서 수세미를 구워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바꿔 입어야 하는 그런 일이었나 봐.

회사가 괜찮았는지, 마스크와 LCD 만드는 부서 등 몇 개를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그래서 그도 경기도 화성으로 오게 되었나봐. 그 무렵 그는 결혼도 했대. 마음씨 좋고, 이해심 많은 분을 만나서 말이야. "밥 안 굶길 테니 결혼하자"라고 말했지만 해고된 지금은 그 말조차도 지킬 수 없을까봐 마음이 무겁나봐. 부인도 아무 말은 못 하지만 카카오톡 프로필에 '정신 좀 차리자 제발...'이라고 써 있더래. 사실 그의 말을 들으며 웃었어.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안타까움이 보였는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이겠지?

회사는 경제 위기를 틈타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며,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복지혜택을 축소했대. 사실 회사는 경제위기 시절에도 매출이 증가했으면서 말이야. 그 무렵 당신의 회사도 경제위기로 물량이 감소했다고 이야기하며 노동자들에게 엄포를 놓았지. 그의 이야기에 노동자들의 고된 삶이 떠오른 건, 아마 그 당시 당신의 축 처진 어깨가 생각나서였을 거야.

한국 3M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화성시 장안외국인투자전용단지에 있는 공장 앞에서 콘테이너 농성을 하고 있다.
 한국 3M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화성시 장안외국인투자전용단지에 있는 공장 앞에서 콘테이너 농성을 하고 있다.
ⓒ 박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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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서너 시간 일하고도 제대로 된 임금을 못 받고, 작업복이 지급되지 않아 한 여름에 겨울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동료들을 보고 그는 노동조합을 할 결심을 했대. 물론 그전까지 그는 노동조합이 뭐하는지도 몰랐나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니까 회사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 집에 전화해서 구조조정 당할 수 있으니 탈퇴하라고 회유했대. 심지어 회사는 나주 시골 부모님에게도 전화해 "아들이 지금 노동조합 하는데 그러면 큰일 난다"고 말했나봐.

또 노동조합 탈퇴를 거부한 사람은 일도 주지 않고, 여름에는 풀 뽑는 일을 시키고, 겨울에는 회사 외벽 페인트 벗기는 일 등을 시켰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해서 폭행도 하고. 법으로 보장된 당연한 노동조합인데, 무슨 불법단체 취급하는 회사 모습에 그는 참 화가 나더래.

결국 순진하던 그도 구속을 당했다고 하네. 노동조합 집기를 밖으로 내던진 용역업체 직원의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고, 그들에게 저항했던 그와 그의 동료들은 폭력 혐의로 해고·구속이 되었대. 학교 다닐 때도 집과 학교밖에 모르고, 직업훈련 학교에서 바로 3M으로 와서 일만했던 성실했던 그가 경찰서를 간다는 건 너무도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지. 어쨌든 그는 구속된 채 해고됐어.

구치소에서 나온 이후 회사에 부당한 해고라고 이야기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어. 사실 해고보다 더 그의 마음을 흔들었던 건 구치소 밖에서 애태우던 그의 부인과 부모님이었지.

그 당시 이야기를 하며 "부인과 부모님에게 미안했다"며 눈을 비비던 그의 모습이 무척 안타깝더라. 부모님들은 "어지간히 해라. 나서지 말고. 이제 다른 살길 찾아서 가자"라고 설득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대. 함께하는 동료들도 있으니까. 그리고 아무 죄 없는 사람을 범법자로 만드는 회사 모습을 보면서 너무 억울했던 거야. 그래서 그는 아무도 그들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지 그곳, 회사 정문에 남아있는 거래. 제발 우리를 좀 봐 달라고. 우리의 외침을 들어 달라고.

외딴섬을 벗어나기 위해 '트윗질'

그때부터 그는 트위터를 시작했대. 인터넷은 검색밖에 모르던 당신이 나에게 페이스북을 알려달라고 조르던 것처럼 말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당신도 세상과 소통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 매일 작업장 기계에 매달려 살아가는 그 시간들이 너무 힘겨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고, 하소연을 하고 싶었던 그 마음. 그때는 툴툴 거리며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줬지만, 이제야 당신 마음이 이해되더군.

"이정희 의원이 맞팔로어 해주고, RT 해줬을 때 너무 좋더라고요. 눈물나게..."라며 환하게 웃는 그를 보면서,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이해되더라고. 언젠가는 트위터에 바로 뒷공장에서 일하는 어떤 여성이 메시지를 남겼대.

"공장 담벼락 너머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를 항상 봅니다. 같이 하지는 못하지만 응원합니다. 힘내세요"라고. 넓고 넓은 세상은 그와 동료들의 목소리를 아무도 듣지 않았어. 그들이 왜 거기에 있는지, 왜 그렇게 처절히 싸우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어.

백승철씨는 트위터를 하면서 세상과 새롭게 소통하고 있다.
 백승철씨는 트위터를 하면서 세상과 새롭게 소통하고 있다.
ⓒ 박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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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금도 그들을 알아봐주는 이, 거의 없을 거야. 하지만 그와 동료들은 자신들을 봐 달라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어. 우리 여기 있다고. 한국3M에서 해고당한 노동자가 회사와 싸우고 있다고. 우리의 삶을, 우리의 싸움을 알아달라고. 외롭지 않게, 그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그렇게 시작한 그의 트위터가 이제 그의 삶을 조금은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작은 소통 창구가 되었대. 트위터에 올라온 응원의 글들이 그가 지금 남아서 싸워야 할 또 다른 이유가 된 셈이지.

밥벌이에 급급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눈·귀 닫고, 부자들과 연예인들의 호화로운 삶을 동경하는 이들이 세상에는 참 많지. 그래도 우리 기억하자. 허허벌판 화성 장안외국투자전용단지 그곳에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어 오늘도 작업복을 꺼내 입는 해고 노동자, 그들의 삶을 말이야. 아무도 그들을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그들의 간절함을 말이야.

그들의 삶이 따뜻해질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이 세상에 배반당하지 않게, 우리가 그들의 아픔과 눈물을 기억하자. 삐걱거리는 일상에 치이는 당신과 나의 삶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야.

한국3M "징계는 합법이다"
한국3M 홍보실은 "법과 원칙을 어기고 불법 및 폭력행위를 한 직원에 대해서는 개인의 책임을 묻고 있으며 상벌위원회를 통해 징계를 결정한다"며 "해고는 정당한 절차였다"고 28일 <오마이뉴스>에 밝혔다.

한국3M 홍보실은 "노조원에 대한 징계가 아니라 불법, 위법행위를 저지른 직원에 대한 징계였다"며 "징계 대상자들은 2009년~2010년 노조 설립 초기에 집중된 불법 행위에 대한 것으로 공장 운영을 방해하는 행위, 폭력이 징계의 사유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3M은 "동료, 상사에 대한 협박과 폭력행위, 본사 무단 점검 등 몇 가지가 징계사유에 해당한다"며 "이런 행위에 대해 회사의 조치가 없다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결국에는 회사의 운영에 큰 타격을 입는다. 회사는 직장위계질서 확립, 다른 직원의 안전과 안정을 위해서도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한국3M은 "노동위원회 판결 결과에서도 징계가 합법적이었음을 인정받았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한국 3M 노동자를 응원해 주세요. twitter @3M_Lonelylabor



태그:#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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