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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육아휴직이 필요한 경우
▲ 똥귀저기 빨기 남성의 육아휴직이 필요한 경우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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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고용노동부는 남성 육아휴직자에 대한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올해 들어 11월까지의 남성 육아휴직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74%라니. 나는 물론이고 내 주위에서 남성 육아휴직자는 본 적이 없건만 어찌 된 영문이지?

그러나 발표 결과를 유심히 살펴보니, 74%란 수치는 어디까지나 숫자 장난일 뿐이었다. 그것은 남성 육아휴직자가 워낙 적어서, 조금만 늘어도 급증하는 것일 뿐이었다. 실제로 남성 육아휴직자는 11월 기준으로 1287명, 전체 육아휴직자의 2.37%에 지나지 않았다.

주말 기저귀 갈기는 아빠의 몫
▲ 똥귀저기 갈기 주말 기저귀 갈기는 아빠의 몫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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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고작 2%밖에 되지 않으면서 남성 육아휴직자가 늘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다니. 잘은 몰라도 경험상 1000명이 넘는 남성 중 대부분은 아마도 공공기관 혹은 육아와 관련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는 것은 하늘에 별 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으로 육아휴직제도(당시엔 만1세 미만 영아를 가진 여성들만 육아휴직 가능)가 도입되고, 1995년부터는 남성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법률상 제시돼 있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실생활에서는 여성들이 쓰는 것조차도 눈치 보이는 것이 육아휴직이다. 하물며 남자의 육아휴직이라니...

육아휴직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아이가 태어나는 날을 예로 들어보자. 아마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기 아빠들은 거의 대부분 출산일과 관련해 상사들의 어처구니없는 경험담을 들었을 것이다.

아이 나오는 날이 오늘, 내일 하는데 그 전날 거래처 사람들과 술을 새벽까지 마시느라 술 냄새 풀풀 풍기며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서부터 회사의 업무가 너무 많아 아이 낳는 것을 보지 못해 지금까지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히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까지.

문제는 그 말도 안 되는 전설로부터 젊은 직장인들이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 감에 따라 그 정도는 약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직장 상사들은 그 가슴 시린 경험담을 무슨 자랑하듯 떠들고, 그 밑의 조직원들은 그 경험담을 거울 삼아 자기 검열과 함께 스스로의 행동범위를 일정부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 육아휴직이 2%인 이유

아내가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 가끔
▲ 가끔 젖도 먹이는 남편 아내가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 가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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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남성의 육아휴직이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역시 돈이다. 아직도 가계의 주된 생계비를 대부분 남성들이 책임지고 있는 이상, 남성의 육아휴직은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과연 어느 부인이 남편더러 돈을 벌지 않아도 되니 아이를 보라 하겠는가. 오히려 아기 분윳값과 기저귓값을 벌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 아니던가.

정부는 이와 관련하여 지난해까지 월 50만 원이던 육아휴직 급여를 올해부터 최대 100만원 이내에서 통상임금의 40%(최저 50만 원)로 바꿨다며 생색을 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를 낳은 부부가 일을 하지 않고 월 50만~100만 원의 수입만 올린다면,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모아두었던 저축을 깨거나, 대출을 받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말 장난감 나라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 아빠는 피곤해 주말 장난감 나라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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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적인 부분만 해결된다면 남성의 육아휴직이 늘게 될까? 이 역시도 부정적이다.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내지 못하는 데에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분위기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어느 남성이 육아휴직을 낸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그의 직장 상사 중 얼마나 그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는 동료 남직원들 사이에서 남자답지 못한, 남들 다 낳는 아이 가지고 유독 유난 떠는 못난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도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편견이 팽배해 있는 사회에서 그의 선택이 존중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마도 회사는 육아휴직을 신청한 남성에게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줄 것이다. 물론 육아휴직 때문에 해고할 수는 없겠지만, 진급 등에서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통념상 회사와 가정은 대립되는 존재로서, 가정에 충실하면 회사에 충실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아직도 많은 면접관들은 구직자들에게 회사 혹은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해보라고 묻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는 아빠와 놀 때 재미있습니다
▲ 같이 놀아주기 아이는 아빠와 놀 때 재미있습니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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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동료들의 눈길 역시 곱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겉으로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할 테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육아휴직으로 빠진 동료의 빈 자리를 쉽게 채울 수 있는 인적 시스템을 가진 회사는 많지 않다. 많은 회사가 가임 가능한 여성을 채용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도 남성의 육아휴직은 필요하다

몰래 숨어 하품하는 남편
▲ 피곤해 몰래 숨어 하품하는 남편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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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이 무거운 남편
▲ 그래도 내 새끼들 양팔이 무거운 남편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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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남성 육아휴직은 언제까지나 불가능한 일일까? 남성의 육아휴직은 가능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그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코 가볍지 않다
▲ 삶의 무게 결코 가볍지 않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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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재 시급한 일은 어차피 일반화될 남성의 육아휴직이기에 이에 방해되는 사회 제도와 문화를 변화시켜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장애물들, 즉 터무니없이 축정된 육아휴직 급여를 현실화해야 하며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가부장적 편견을 최소화시키는 등의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는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가 국가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일이라면 그만큼의 부담을 국가와 사회에서 떠안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주목할 만한 정책은 15일 기획재정부에서 밝힌 공공기관 내 육아휴직자 공백과 관련된 정규직 채용이다.

그동안 육아휴직자의 공백을 채웠던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바꾼다는 내용인데 이는 앞으로의 육아정책뿐만 아니라 고용정책에 있어서도 꽤 큰 의미를 지닐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육아휴직의 부담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일자리를 나누는 분위기로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정규직 자리가 보전된다면 돈을 조금 덜 받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업무를 나누어 근무시간을 줄이고 개인시간에 좀 더 투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

남성의 육아휴직은 이제 더이상 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곧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의 문제이다. 사회구성원들의 성숙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태그:#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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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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