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환갑을 넘긴 명진 스님(61)이 사춘기란다. 얼마 전까지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에 위치한 봉은사 법왕루에 올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한국 불교계를 향해 거침없이 죽비를 날렸던 그가 3평 남짓한 월악산의 한 암자(흙집)에 걸망을 지고 들어가기 직전에 세상에 내놓은 자서전 제목이 <스님은 사춘기-명진 스님의 수행 이야기>(이솔 출판)다. 이 시대의 편법과 반칙을 향해 매섭게 회초리를 들었던 그는 왜 자신의 시공간을 40여년 전으로 되돌려놓은 것일까? 

 

[풍경①] 월악산의 '개콘 법회'

 

"불교와 기독교의 역사적 만남인가? 하하하."

 

부처님오신날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오전 11시 충북 제천 신륵사 앞 주차장은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버스 두 대에서 내린 은혜공동체 교회 박민수 목사와 신도 80여 명은 신륵사의 말사인 보광암에 거처하고 있는 명진 스님과 만났다. 어린 꼬마들은 깔깔대면서 앞다퉈 조팝나무 흰꽃이 만발한 가파른 산길을 뛰어 오르고, 명진 스님과 박민수 목사는 나란히 걸으면서 또다른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런데 계시면 저절로 도가 통하실 것같습니다."(박 목사)

"뭐... 심심하죠.(웃음)"(명진 스님)

 

"봉은사를 떠난 것이 유감스럽지는 않으신지요."(박 목사)

"봉은사의 신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지만, 거길 떠났더니 또 이런 소중한 만남이 찾아오네요. 혹시 다음 대선에 '기불(기독교-불교)연합당'을 만들어 볼까요?(웃음)"

 

 

산길을 30여 분 올랐더니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새하얗게 흰꽃으로 뒤덮인 먹골배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그 옆에 한 그루 느티나무가 산 중턱에 거대한 그늘을 만들었다.

 

"해발 600~700m 고지. 저기가 제가 있는 곳입니다. 작년부터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명진 스님은 느티나무와 먹골배나무 그늘에 풀썩 주저앉아 박 목사 일행이 가져온 도시락을 먹었다. 그 뒤에 책 사인회를 한 뒤 즉석에서 '개콘 야외 법회'를 열었다.  

 

 

"4대강 거짓말, 등록금 반값 거짓말, 공정사회 거짓말, 서민 경제 거짓말... 자기 입으로 한 말을 저렇게 뒤집고 다니니 MB는 퇴임 후에 남대문 시장에서 빈대떡 장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웃음)

 

(한 목사의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십일조를 안 내면 지옥에 떨어집니다'("야- 너무 꼭 닮았다"며 신자들 박수). 가만히 그 사람의 인상을 보니 지옥에서 나온 사람 같더군요. 헌금 종류가 30가지가 되더라고요. 절도, 교회도 똑같습니다. 중생들이 보시한 돈을 개인의 복락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맞습니까? 무조건 믿으면 맹신이고, 그게 곧 미신입니다.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하고, 그곳이 불교와 기독교가 만날 수 있는 지점입니다."

 

밀통과 야합이 아니라 소통과 화합의 박장대소 야외법회는 1시간여동안 이어졌다. 박 목사는 "종교를 떠나서 스님의 생각이 멋있고, 배울 점이 많기에 여러모로 스승으로 삼고 싶은 분"이라면서 "주일 예배 드리는 시간에 이 곳에 오기로 한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신자들이 흔쾌히 수락해줬다"고 말했다.   

    

[풍경②] 그럼 스님의 머리를 삶을까요?

 

이날 박 목사 일행이 들은 명진 스님의 법문은 '스님은 사춘기' 축소판을 보는 했다. 지난 4년간 봉은사 일요법회에서 설한 법문집이기도 한 이 책은 불교를 잘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웃으면서 불교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자전적 에세이집이다. 우선 이 책에는 직설과 촌철살인, 해학과 풍자가 곳곳에서 번득인다.   

 

"무명번뇌를 자를 보검을 구하러 왔습니다."(명진)

"야 임마, 너 그리 말하는 거 어서 배웠노? 어린 노무 자슥이 벌써부터. 니 몇 살이고?"(성철 스님)

 

해인사로 출가해 행자 시절 처음으로 만난 성철 스님과의 일화다. 명진 스님은 성철 스님으로부터 계(戒)를 받기로 되어 있고 법명까지 지은 상태였으나 새벽에 백련암에서 도주한 뒤 좌충우돌하면서 또다른 스승을 찾아 헤맨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소머리 하나에 얼마요? 그거 안 보이게 잘 좀 싸 주시오."

 

안동 봉정사의 한 도반이 간염에 영양실조에 걸리자 이를 치료하려고 피가 철철 흐르는 소머리를 들고서 시장판을 휘젓고 다녔더니 안동 시내가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포교당의 주지스님 등이 "그래도 어떻게 절에서 소머리를 삶는단 말이요?"라고 거세게 항의하자 명진 스님은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그럼 스님의 머리를 삶을까요?"

 

한용운 스님의 제자였던 춘성 스님 다비식에서 천여 명의 스님들이 지옥의 중생을 구제하지 못하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을 불렀다. 그 자리에서 명진 스님은 "거 춘성 스님께서 극락 지옥 그거 못찾아갈까 봐 지장보살을 염불합니까? 지금부터 전국 본사 수좌대항 노래자랑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나그네 설움'을 불러 다비식장을 순식간에 잔치판으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 책 속의 명진 스님이 마냥 유쾌, 통쾌, 상쾌하게 좌충우돌만 한 것도 아니다. 그 기저에는 구도의 길을 걷고자 하는 수행자의 고뇌가 곳곳에 배어있고, 한국 선불교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도 들어있다.     

 

"선방에 점잖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도 마음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 그건 정진하는 게 아니라 망상을 피우고 있는 것일 뿐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찰의 운영도 당연히 수행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천도재나 제사가 기본이 되는 '제사종', 관람료를 받아서 운영하는 '관람료종', 입시기도 위주의 '입시종'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거듭나야 된다."

 

그는 자신이 세상 일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치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처님은 삿됨을 깨뜨리고 바름을 드러내라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말씀하셨다. 잘못된 것에 대한 꾸짖음이 사회 정의를 세우는 길이다. 유마거사도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했다. (중략) 세상을 등지고 홀로 산중에서 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흙탕 속에서 연꽃을 피워 올리듯 혼탁한 현실 속에서 참되고 옳은 것을 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불교를 통해 복이 아니라 지혜를 구하라고 충고한다.

 

"병을 낫게 해달라, 좋은 학교에 붙게 해달라, 취직을 하고 사업이 잘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부처님께 빈다. (중략) 복을 구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복은 누군가에게 빌고 구해서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다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풍경③] 나는 항상 사춘기다

 

 

박 목사 일행을 떠나보낸 뒤에 명진 스님은 월악산의 가파른 산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보광암에서 기자와 마주 앉았다.

 

- 스님이 아직도 사춘기라니, 믿기지 않는다.(웃음)

"허공의 끝은 어디인가, 시간의 출발은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을 진지하게 떠올리는 시기가 사춘기이다. 절에 들어와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데 사춘기 때의 물음만큼 순수하지 못하다. 깨닫고자하는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래서 구하는 마음조차도 놓으라고 말하는 데 '놓아라'라는 것조차 붙들고 늘어진다. 나를 향한 순수한 물음에 몰입하는 것이 도를 구하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사춘기다."

 

- 사춘기의 화두를 40여 년간 잡고있었다. 그 화두는 푸셨는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계속 묻다가 깊이 들어가면 나 자체가 모름이 된다. 모르니까 비어지는 것이다. 마음이 비어지면 거기서 지혜가 나온다. 지혜를 실천하면 자비가 된다. 그런데 선악 시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절대선으로 갈 수 있다."

 

- 분별을 하지 말라 하시고, 선악 시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데, 이명박 정부에 대해 그간 죽비소리를 낸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허공이 텅 비어있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온다. 때로는 그 허공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눈도 온다. 허공에는 흰구름도 있지만 먹구름도 있다. 대통령에게 모진소리를 할 때 나는 먹구름이다. 선악시비로부터 자유로우니까 욕하는 것이다. 내 속에서 뭔가 이루거나 지키려는 욕망이 있다면 감히 욕을 할 수 없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자비의 매질이다."

 

- 책에서 하고 싶었던 말인데 독자들이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사람들은 선을 어렵게 생각한다. 화두를 타고 항상 화두를 챙겨야 한다는 게 기존의 선원이 지켜온 올바른 공부법이다. 그런데 화두가 무슨 쌀 배급인가. 타게? 또 보따리도 아닌데 뭘 챙기나? 이 책 속에는 기존의 공부 방법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다. 형식보다도 '나는 뭘까'라는 간절한 물음이 중요하다. 어미 닭이 알을 품듯이,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몰입해야 한다."

 

 

- 봉은사에서 나온 것이 아직도 불편하신가?

"강남의 가장 큰 부자절 주지하다가 툭 던져놓고 나왔다. 요즘 매일 아침에 '홀딱벗고새'가 운다. '후허우어'라고 울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조금 있으면 뻐꾹새가 날아오고 소쩍새가 밤새 기가 막히게 울 것이다. 또 여기는 마지막 남은 비경 같은 곳이다. 맘이 편해진다. 봉은사를 나올 때 상처 받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한국 불교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분들과 함께 도모하면서 살고 싶다."

 

- 이번에 출간하신 책이 벌써 6쇄를 인쇄했다고 들었다. 종교 부분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독자 반응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면?

"과격하고 좌편향적이라고 나를 판단했던 사람들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의를 보고 못참는 불같은 성격 때문이라는 것. 또 어떤 사람은 너무 속도감있게 스토리가 전개돼 무협지를 읽는 느낌이었다고 한다."(웃음)

 

- 부처님 오신날이 이틀 남았다. 만약 봉은사의 법왕루에서 법문을 한다면?

"서민들은 행복한가? 전셋값 올라서 도둑질이라도 해야할 판국이다. 대학 등록금은 어떤가? 졸업하자마자 달러빚 갚으려고 바동대야 하는 현실이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인가? 부처님은 이 땅의 평등과 존귀함을 외치면서 오셨는데 누구는 스톡옵션으로 수천억 원씩 가족들끼리 갈라먹고, 땅투기한 것도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그걸 감독해야 할 사람들조차도 자기 돈 챙기려고 아우성이다. 이게 MB가 말하는 공정한 사회인가?

 

가진 자들이 베풀어야 한다. 시혜적 베풂이 아니라 시대적 아픔을 함께 나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자기 식구, 자기 동창, 자기 고향만 챙기는 것 그만 두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대로 각성해야 한다. 그게 부처님 오신 날의 가르침이다. 이게 이뤄지면 그게 바로 천국이다."


태그:#명진 스님, #스님은 사춘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