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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낮 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일요법회를 마친 뒤 법왕루를 나오고 있다.
 11일 낮 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일요법회를 마친 뒤 법왕루를 나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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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 못 지키는 조계종단 

명진 스님은 조계종단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스님으로 널리 알려졌다. 스님은 조계종 개혁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독재정권에 대항해 민주화 운동을 했고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해 북한 불교계와의 교류에도 힘써왔다.

명진 스님의 남북평화운동,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운동, 수경 스님의 환경운동, 효림·진관 스님의 인권운동이 조계종의 사회참여를 대표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정부의 비정과 실정에 대해 매서운 비판을 해 온 것으로는 명진 스님이 가장 두드러진다.

1994년 종단 개혁 이후 들어선 개혁 종단으로서 조계종의 대사회적 위상을 높여온 다섯 스님을 존경하고 보호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런데 최근 사정이 달라졌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좌파 주지가 강남 부자 절의 주지로 있는 것을 그대로 놔둘 것이냐?"라는 발언으로 대표되는 현 정권의 외압에 따라 봉은사의 직영화를 통해 명진 스님이 혹은 다른 스님이라도 강남 부자 절에서 함부로 현 정권을 비판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직영화를 하면 언제든지 주지직을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무원장 추대가 의미하는 것은?

자승 스님은 행정능력과 친화력이 뛰어나 총무원장으로서 종단의 화합과 발전을 이끌 적임자라고 하여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자승 스님이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MB를 도왔고 지난 대선 때 적극적으로 MB를 도왔다는 사실을 조계종 스님들은 모르고 있었을까?

MB는 서울시장 재직시에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라는 발언으로 불교계에서 비판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는 불교를 우상숭배를 하는 없어져야 할 미신으로 취급하는 복음주의 개신교, 다시 말해 기독교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교단의 장로이다.

MB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동안 종교편향 논란 때문에 역대 대통령이 하지 않았던, 청와대에서의 종교 활동을 서슴지 않았고 그의 참모나 각료, 고위 공직자들의 노골적인 기독교 편향 정책이나 활동이 이어졌으며 심지어 정부가 제작하는 지도에서 사찰이 빠지거나 묘지로 표시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종교편향정책을 바로잡고자 불교도 20만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규탄 법회를 열기조차 했다. 그럼에도, 자승 스님을 소위 여러 계파의 스님들이 총무원장으로 합의 추대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종단의 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놓았는가

짧은 생각이지만, 그 이유는 돈에 있는 것 같다. 종단의 사정을 잘 아는 지인으로부터 명진 스님에 대한 총무원의 분위기를 물어보니 "총무원에 있는 사람들은 현 정부와 협상이 잘돼서 큰돈이 들어오면 건물도 짓고 여러 가지 사업을 할 수 있는데, 조용히 절을 떠날 일이지 왜 문제를 일으키는 가라고 생각하고 있다"라는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계종은 80년 10·27 법난과 83년 여름 신흥사 살인 사건을 겪으면서 청년 스님들의 자각을 통해 민주화와 종단 개혁 운동을 추진했고 1985년 5월 민중불교운동연합 창립과 1986년 9.7 해인사 승려대회를 통해 개혁세력을 결집하게 되었다. 명진 스님은 1986년 봉은사에서 열린 10·27법난 규탄대회에 참여하여 대중연설을 하고 시위의 전면에 서다 옥고를 치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결실로 1994년 종단개혁을 성취할 수 있었다. 이후 1998년 일시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조계종단은 제도 개혁과 종단 안정을 바탕으로 교육·문화·사회· 복지 등 많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내었다.

그런데 여기에 역설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종단에서 여러 사업을 벌이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고 -물론 종단이 보유한 전통문화재를 보존 관리하는 데에만도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을 시주에만 의존하기에는 불교의 관습상 어려움이 있다. 기독교처럼 십일조를 걷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문화재 60%를 보유한 불교의 특수성을 계기로 하여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것이 중요해졌고 그 금액은 점점 더 커졌다. 원래 이런 일은 재가 종무원의 일이었다. 그런데 더 많은 지원과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스님들이 직접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과 회합하게 되었고, 스님들이 그들을 만나서 예산을 많이 받아오는 것이 그 스님의 능력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현 대통령과 잘 아는 사람이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용인된 것이 아닌가 싶다. 종단 성장을 위한 사업 자금을 위해 정권과 타협하는 것이 용인되면서 94년 개혁과 자주의 초심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고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이런 정서의 밑바탕에는 한나라당 보수정권이 10년 20년 갈 것이란 생각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혁의 초심을 메워버린 종단정치

물론 이렇게 스님들이 관리들과 만나 이익을 구하는 것은 상식에도 닿지 않는 일이지만, 남방 불교에서는 스님들이 돈을 직접 만지는 것을 계율로 금하고 있다. 출가 사문은 세속의 모든 욕망을 떠나 계율을 지키며 선정을 닦고 열반을 추구한다. 그리고 세속의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 재가의 불자는 사문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계로써 욕망을 절제하고 도덕적인 생활을 한다. 이 두 가지가 불교의 기본적인 구조다.

출가자가 재가자가 해야 할 사찰 재정의 일까지 직접 하는 것을 개혁하자는 것이 94년 종단개혁의 주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출가 사문은 수행과 교화에 힘을 쓰고 사찰 재정은 재가자가 해야 한다는 지극히 불교적인 상식을 실현하자는 것인데, 명진 스님, 수경 스님은 현재 그렇게 사찰 운영을 신도회에 맡겨놓고 있지만, 조계종단의 큰 사찰에서 몇 군데나 그렇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뿐만 아니라, 스님이 정치인과 만나 돈을 두고 협의를 한다는 일은 대승 보살의 계율을 밝힌 <범망경梵網經>의 48경계(輕戒) 11번째인 "불자는 이익을 구하는 나쁜 마음으로 나라의 관리들과 밀통하여 정쟁의 자리에 나아가서는 안 된다"라는 계목(戒目)을 어기는 일이다. 적어도 나라의 돈 문제만큼은 스님들이 관여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결국,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를 위한 지원의 문제는 법률과 제도로써 해결할 일이지 몇몇 정치인과 연이 닿는 스님들이 정치인을 직접 만나서 할 일이 아니다.

개혁의 초심이 떠난 자리를 메운 것은 종단 정치다. 종단 발전을 위한 종책 개발 모임은 어느새 계파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익 단체가 되고 이 단체의 합종연횡으로 총무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종권이 이동한다. 종권 수립 기여도에 따라 큰 절 주지 자리 등의 논공행상이 이뤄진다. 종단 개혁 이전에는 정치 승들이 일부였다. 그러나 오히려 개혁 이후 더 많은 스님들의 정치력이 향상되고 어느새 세속 정치인, 행정가를 뺨치게 되는 것 같다.

종단 정치를 단순히 폄훼할 생각은 없다. 민주주의 아래에서 정치란 어느 종교나 사회에 있는 것이고, 종단정치가 민주적 원리에 따라 견제와 균형, 권력의 분립과 참여와 비판의 보장 등 바르게 이뤄진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그러나 그 정치는 정교분리를 실현하고 종교의 자주성을 지키는 일을 기반으로 했을 때 용인되는 것이다. 이 파수꾼의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종단의 계파 정치는 이권을 위한 야합 행위가 되고 만다.

작은집 안상수는 깃털, 몸통은 큰집?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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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회와 총무원은 봉은사 직영화 통과에 외부 압력은 없었다고 한다. 외부 압력의 당사자인 안상수 의원의 그 압력을 받은 자승 총무원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안상수 의원의 발언은 김영국 거사의 증언으로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실제적인 압력은 작은집의 안상수 의원이 아니라 큰집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안상수 의원은 한나라당의 원내대표로 헌법을 부인하는 망언을 했고 그것만으로도 공직 사퇴를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권력 실세들이 포진한 청와대의 기류를 대변했을 가능성이 크다. 명진 스님은 4월 11일 일요 법회에서 "총무원 기획실장 원담 스님이 청와대를 여러 차례 오갔는데(만난 대상은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특히 3월 초 청와대 회담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히라"고 했다. 이동관 홍보수석이 김영국씨와 한 통화에서 회유와 쌍욕을 했다는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이 부분이다. 이동관 수석과 박재완 수석이 명진 스님과 관련된 일에 개입했다면 이 일은 안상수, 이동관, 박재완 수석의 사퇴는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진퇴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종단 주변에서 일하는 재가불자들의 모습에서도 종단 정치에 익숙해진 것을 보게 된다. 94년 서의현 총무원장을 퇴진시킬 때 명분은 권력과 결탁한 권승을 몰아내고 불교의 자주화와 청정 승가를 이룩하고 불교가 우리 사회 희망의 등불이 되자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종권을 가진 스님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고 많은 명분을 갖고 있겠지만 결국 어떤 명분이든 권력과 야합한다는 것은 또 다른 서의현이 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경제 성장을 위해 인권탄압, 빈부격차 심화, 자연환경 훼손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지난 독재정권이나 현 이명박 정권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이는 철저히 기득권자들의 논리다. 어느새 개혁의 주체들이 기득권자가 되어 보수화된 것일까. 불자들은 그런 스님을 절대로 존경하지 않는다. 명진 스님의 직영화 반대는 바로 이 더욱 강고해진 기득권의 구조를 깨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깨어 있는 불자들이 명진 스님을 지키고 종단이 다시 94년 개혁과 자주의 초심으로 돌아가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이유이다. 이번 초파일엔 지난 94년처럼 자주와 개혁의 등불을 밝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희선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생불교연합에서 활동했고 80년대 민중불교운동연합에서 활동했다. 1986년 <월간 법회>의 편집장을 하며 9.7 해인사 대회 준비에 참여했고 94년 종단 개혁 시에 홍보를 도왔다. 현재 부천 시민연합의 공동대표이다.



태그:#봉은사, #명진 스님, #조계종, #안상수, #이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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