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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3월 4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호주를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다. 방문 이틀째인 3월 5일에는 호주의 수도 캔버라를 방문했다. 케빈 러드 총리의 관저 '로지(Lodge)'에서 밤늦은 맥주파티를 열기도 했고.

그동안 청와대에서는 바로 그 맥주파티를 거론하면서 이 대통령과 러드 총리의 각별한 친분을 강조하곤 했다. 그러나 3월 5일 밤 갑작스럽게 맥주파티가 열린 데는 두 정상의 친분 말고 다른 사정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당시, 이 대통령의 국빈방문이 워낙 갑작스럽게 이뤄져서 일정상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서 국빈환영만찬을 열 수 없었던 것. 그런 연유로 그 전날 시드니에서 뉴사우스웨일즈 주(NSW) 주총독과 주총리가 국빈환영만찬을 대신 주관했다.

외국 정상이 호주를 국빈방문하면 연방총독과 연방총리가 캔버라에서 공식 환영만찬을 주관하는 게 관례다. 그러나 그런 관례를 지킬 수 없어서 아쉬움을 느낀 케빈 러드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을 총리관저로 초대해서 맥주파티를 열었던 것.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호주 행정도시 캔버라의 '문화의 거리' 전경.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호주 행정도시 캔버라의 '문화의 거리' 전경.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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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캔버라는 실패한 수도"

지난 27일, MB정부는 '세종시 수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동안 들끓었던 찬반논쟁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 대국민 홍보와 지역주민 설득작업은 계속되겠지만, 정부 나름대로 수순 밟기에 들어간 셈이다.

한편 2009년 11월 5일, 청와대는 '수도이전 및 분할과 관련한 6개국 사례'라는 제목의 참고자료를 내놓았다. '세종시 수정안' 홍보차원으로 보이는 문건이었다. 그중에서 캔버라와 관련된 청와대의 분석은 이렇다.

"1927년 건설된 호주의 수도 캔버라는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고 국립도서관, 국립미술관, 국립대학 등도 입주해 있지만, 산업 기능이 약해 일자리 창출이 제한되고 장기적으로 도시의 경제적 활력과 발전에 한계가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무총리실장은 "세종시는 (캔버라처럼) 베드타운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호주 캔버라 역시 행정수도로 계획된 곳이지만 주말이 되면 사람들이 다 시드니로 빠져나가 식당도 문 닫고 상가도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야당에서는 "청와대의 주장은 견강부회이며, 억지춘향과 다름 아니다.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호주의 캔버라, 터키의 앙카라 등은 대표적인 수도 이전 성공 사례"라고 반박했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을까?

"캔버라가 실패한 수도라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

캔버라 행정수도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는 청와대와 야당의 견해를 이해할 수는 있겠으나, 수정안을 내놓은 MB정부가 대국민 홍보를 위해서 캔버라를 실패한 사례에 포함시켰다면 외교적 결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은 캔버라를 누구보다 잘 알 터인데, 청와대에서 마치 달나라 얘기처럼 눙쳤다면 도덕성까지 의심받을 것이다. 정략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만약 호주 총리실(한국의 청와대와 비슷함)에서 똑같은 얘기를 했다면 청와대는 어떻게 반응했겠는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서 전직 행정관 트레버 클라크를 인터뷰했다. 그는 '연방 과학 산업 연구기구(CSIRO)'를 캔버라에 유치하기 위해서 10여 년 동안 프로모션을 벌인 인물이다. 그러다보니 인터뷰 초반부터 엇갈린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캔버라가 실패한 수도라는 얘기는 한국으로부터 처음 들어본다"는 것. 다음은 클라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캔버라는 호주 균형적 발전의 버팀목"

- 캔버라에 CSIRO를 유치한 이유는?
"캔버라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국립체육학교(AIS)와 연방정부 산하 '과학산업연구기구(CSIRO)'다. 호주에서 배출한 올림픽 메달리스트 절반 정도가 캔버라에 있는 국립체육학교 출신이다. 그뿐 아니다. 호주의 과학 두뇌들이 모인 CSIRO 본부도 캔버라에 있어 IT와 BT를 포함한 호주의 과학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 캔버라가 호주의 2대 도시인 시드니, 멜버른과 너무 떨어져서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시드니와 멜버른뿐만 아니라 호주 전역에 CSIRO 지부가 있다. 산업과 직접 연계된 연구는 주로 그곳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입법부, 행정부와 업무협조 및 마스터플랜 수립, 업무조정 등은 캔버라에 위치한 본부에서 역할을 맡는다."

- 그러다보면 지역 간의 경쟁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캔버라는 시드니와 멜버른의 배타적 경쟁의 결과물이다. 다행히 캔버라가 호주 6개 주의 균형적 발전을 도와주는 버팀목이 되어서 행정수도로서 입지가 튼튼해졌다. CSIRO도 같은 맥락으로 발전해왔다."

- 그럼에도 캔버라의 고립감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로 보이는데.
"1930년대 출범 당시에도 행정수도의 고립감 때문에 시비가 일었다. 자동차가 막 생활화 되던 시기였으니 왜 안 그랬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호주 내륙의 보석으로 변했다. 캔버라는 호주의 주요 도시 중에서 유일하게 내륙에 위치해서 다양성 측면에서도 크게 기여한다."

캔버라 선술집은 6시에 문 닫는다고?

캔버라시의 중앙상가 모습. 캔버라는 주민 숫자 대비 레스토랑과 카페 숫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캔버라시의 중앙상가 모습. 캔버라는 주민 숫자 대비 레스토랑과 카페 숫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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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 클라크의 캔버라 옹호 발언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캔버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내비치면서. 그의 답변만으로는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울 것 같아 혹시 반대의견은 없는지 알아보는 도중에 미국에서 캔버라로 유학 온 학생의 얘기를 듣게 됐다.

2년 전, 뉴욕에 거주했던 그는 캔버라로 유학을 떠나오면서 <채널7방송>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올려놓았다.

"캔버라가 아주 심심한 도시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공부도 공부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호주의 진정한 모습을 배우고 싶다. 주말 저녁에 선술집에 가서 문화적, 인종적 차이를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 특히 미국 액센트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인생을 논하고 싶다. 그런데 캔버라는 오후 6시만 되면 술집이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듣고 시드니, 또는 멜버른으로 진로를 바꾸려고 한다."

그러자 게시판에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캔버라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터무니없다는 반응이었고, 그 반대쪽에서는 캔버라의 약점을 슬쩍 흘리면서, 기왕이면 자기가 사는 도시로 오라고 꼬드기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그 일하고는 상관이 없지만, 최근 호주에서는 각 주정부(특히 해당 관광청)에서 자기의 주를 홍보하면서 다른 주의 도시를 깎아내리는 내용을 담아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특히 애들레이드가 시드니를 문화적으로 심심한 도시라고 시비를 걸었다가 주지사들끼리 설전을 벌이는 사태로 진전한 바 있다.

캔버라가 심심하지 않은 이유 10가지

그 과정에서 "캔버라는 심심한 도시"라는 얘기도 불거졌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었다. 그러자 캔버라 옹호론자인 마크 주드리가 <트래블러>지에 "캔버라가 심심하지 않은 이유 10가지(10 Reasons Why Canberra is Not Boring)"라는 반박문을 올렸다. 각종 통계숫자가 곁들여진 장문의 보고서 같은 글이었다. 그중에서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캔버라가 행정수도라서 정치인의 숫자가 많은 것으로 오해하는데, 인구비율로 따져보면 그 반대다. 정치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오히려 캔버라로 와야 한다.

# 누가 캔버라를 문화생활 하기에 부적절한 도시라고 했나? 캔버라에는 호주에서 관람객수가 가장 많은 미술관이 있고, 클래식과 록을 포함한 음악, 무용, 뮤지컬 등이 1년 내내 무대에 올려진다.

# 호주 통계청의 자료다. 캔버라는 주민 숫자 대비 레스토랑과 카페 숫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프랑스 파리가 그 다음. 세계적인 레스토랑 비평가 바바라 센티치가 캔버라 레스토랑들을 <뉴욕타임스> 여행 섹션 첫 페이지에 썼을 정도다. 그런 레스토랑들이 저녁 6시에 문을 닫는다고?

# 영국에서 발행되는 <더 타임스>가 보도한 내용이다. 캔버라 소재 호주국립대학은 호주 최고의 대학일 뿐만 아니라 세계 16위에 랭크된 우수한 대학이다. 그것 하나로도 캔버라에서 왜 고수익을 올리는지, 취업률이 높은지, 각종 문화지수가 높은지 설명되지 않는가? 그런데 캔버라가 실패한 도시라고?

1908년에 연방수도로 선정된 원주민 마을

캔버라엔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느거나왈(Ngunnawal) 부족'이 살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캄버라(Kamberra)로 불렀다. 그곳에 백인들이 나타난 건 1830년대였다. 백인들은 애버리진(원주민) 땅을 빼앗아 농장과 목장을 만들었다.

캔버라에 큰 변화가 일어난 건 1908년 연방수도 이전지로 결정되면서부터였다. 그때까지 호주의 연방수도는 빅토리주의 주도 멜버른이었다. 그로 인해서 라이벌 도시 시드니는 불만을 터트리던 중이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호주의 역사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주에 백인이 정착하기 시작한 1788년부터 하나의 국가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6개 식민지 국가로 나뉜 상태였다. 그래서 국경을 넘으려면 관세를 물어야 했고.

그러던 중 1888년에 식민지 건설 100주년을 맞으면서 연방국가의 탄생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국의 반대에 부딪쳤다. 영국의 식민지 관리방식이 '분할통치'였기 때문이다. 식민지들끼리 앙숙이 되도록 만드는.

결국 1901년에 호주연방국가(Commonwealth of Australia)가 출범했고, 연방수도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라이벌 도시들인 시드니와 멜버른의 중간쯤에 위치해야 하고, 호주 대부분의 도시가 해변에 위치한 점을 감안하여(안보적인 측면도 고려) 내륙에 행정수도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축제의 도시 캔버라에서는 매년 크고 작은 축제가 벌어진다. 사진은 기구축제 장면.
 축제의 도시 캔버라에서는 매년 크고 작은 축제가 벌어진다. 사진은 기구축제 장면.
ⓒ 캔버라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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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 교육, 체육, 관광, 축제의 도시

그런 과정을 거쳐서 캔버라가 새로운 연방수도로 결정됐다. 그런데 그 후에 알아보니 애버리진 언어 캄버라(Kamberra)의 의미가 '만남의 장소'였다. 그런 우연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새롭게 출범한 연방정부는 야심찬 마스터플랜을 갖고 행정수도 건설에 착수했다. 우선, 세계 최고 수준의 수도를 만든다는 목표로 도시설계도를 국제 공모했다. 자연과 문명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인공도시를 설계하도록 유도한 것.

당선자는 미국 시카고에서 활동했던 건축가 월터 B. 그리핀이었다. 그는 캔버라 중심부에 인공호수를 만들어서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가 확대되도록 설계해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결국 그의 설계대로 1913년에 착공하여 1927년에 수도이전을 마무리했다.

그후 캔버라는 호주의 역사, 교육, 체육, 과학, 관광의 도시로 발전했다. 국립도서관, 국립미술관, 국립박물관, 전쟁기념관, 영화 자료관, 국립공원 등이 속속 캔버라에 자리를 잡은 것.

캔버라는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호주 한인동포들도 즐겨 찾는 꽃 축제(Floriade), 다문화 축제, 민속 축제, 과학 축제, 국제 기구(balloon) 축제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축제가 1년 내내 열린다. 특히 10월에 열리는 '술과 장미의 나날들(Days of Wine &Roses)'은 호주 주당들의 발길을 끌어 모은다.

"청와대에서 왜 터무니없는 말을 했는지..."

캔버라에 관해서는 호주 한인동포들도 나름대로의 답변을 해줄 수 있다. 21년 동안 호주에서 살아온 한인동포 김아무개씨(뉴스 에이전시 경영)도 "지정학적 중심지인 캔버라는 호주 화합의 아이콘"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어서 "캔버라 주재 한국 대사관에 물어보면 캔버라가 얼마나 활기 넘치는 도시인지 금방 알 수 있을 터인데, 청와대에서 왜 터무니없는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자칫 한국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경솔한 발언"이라고 우려했다.

'세종시 수정안'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 MB정부의 처지를 호주 한인동포들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캔버라를 실패한 수도로 소개한 청와대의 행태는 지나쳤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힘들수록 정공법으로 나가야 국민들도 수긍하지 않을까?


태그:#캔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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