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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실에서 쉽게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든 평범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다. 정치하는 분들이나 학자, 교육전문가나 학부모들이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 문제들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의 '내면'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무관심했다. 문제의 해결은 현실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아이들이 풍요롭게 교육을 받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한다면 아무리 좋은 교육제도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저자의 말 중에서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겉그림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겉그림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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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동녘 펴냄)는 르포작가 김순천이 전국의 수많은 청소년들을 인터뷰, 그들의 고민과 좌절, 꿈과 사회(어른)에 대한 바람 등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책 속 주인공 10대 14명은 우리 사회 '대표 청소년'이랄 수 있다. 인문계, 실업계, 대안학교 등 책 속 주인공들이 다니는 학교도 다양하고 지역 또한 강남이나 강북, 지방학교 등 다양하다. 공부 꽤나 잘한다는 아이도, 자퇴생도, 복학생도 있다. 재수생 또한 있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10대라면 누구나 이처럼 많은 경우 중 한 가지 이상에 반드시 속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이뤄진 시점은 2007년~2009년. 저자는 3년 동안 책속 주인공들보다 훨씬 많은 10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고 그들의 이야길 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왜 들어야만 하는 것이며, 그들의 외침을 왜 귀담아 들어야만 할까? 우리 아이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아이들에게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은? 아이들이 어른들과 사회에 바라는 것은?

"공부 잘하는 애들 반절만이라도 대우받고 싶어요"

아이들은 안다.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는 학생들 10퍼센트를 보고 가르친다는 걸. 나머지 90퍼센트는 수업을 듣고는 있지만 수업과 상관없는 일로 시간을 때운다. 그중 일고여덟은 수업내용을 전혀 모르는 외계인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를 의미 없는 시간 때우기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저자의 말 중에서

중대부속고등학교 1학년 총희의 꿈은 경찰이다. 일곱 살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 현재 4단인데 운동을 좋아하는지라 경호학과에도 가고 싶고 태권도장도 차리고 싶지만 "공무원이니까 나중에 편할 것"이라고 총희의 아버지가 적극 경찰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희의 성적은 중하위권이다. 경찰이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걸 아는 총희는 어떻게든 공부를 잘하고 싶기에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중에도 공부를 염두에 둔다. EBS 방송을 보는 등 성적 올리기에 신경을 쓰지만 그리 쉽지 않다. 수학과 영어는 특히 어렵다. 때문에 공부를 쉽게 잘하는 친구들이 부럽고 신기하다.

이런 총희의 불만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 위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다. 모든 선생님들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선생님들은 노골적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의 수업을 하고 질문을 한다. 때문에 총희는 모르는 것이 있어도 질문이 부끄럽고 망설여진단다.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모르는 것이 있어도 물어보지 않는단다.

- 질문하는게 부끄러워요? 어떤 질문을 주로 해요? 선생님이 물어볼 때 상위권 애들한테만 시켜요? 모르는 것이 있어도 물어보지 않아요?
"네. 애들 많은 데서 질문하기가 그래요. 질문을 하면 흐름이 끊기고, 내 질문에 답하다 보면 다른 애들이 방해를 받을 것 같아서요. 선생님이 먼저 질문하라고 시키는데 대부분 상위권 애들한테 시키기 때문에 저한테는 차례가 안 오는 것 같아요."

- 그럼 상위권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는 거예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선생님들이 운동하는 아이들을 나쁘게 봐요? 선생님들이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선생님도 있구요. 보통 애들처럼 대해주는 분들도 있고요. 보통 하위권 애들한테는 질문을 거의 안 시키죠... 아니요. 그건 아니고 좀 차별한다는 생각...너무 성적만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 목표가 다른 건 보지 않고 차별하시니까 서운해요... 넌 학교에 왜 왔냐? 차라리 자퇴를 해라. 지금이라도 기술을 배워서 밥벌이를 해라... 공부 잘하는 애들만큼은 아니어도 절반 정도의 대우는 받고 싶어요."

(책속에서)

"학교 안에서는 성장할 수 없었어요"
"현실을 알게 되니 꿈이 점점 작아져요"

어른들의 편견과 선생님들의 차별, 모순투성이 교육현장과 교육제도, 어느새 우리 교육의 최대 이상형이 되어버린 경쟁위주 교육 시스템을 총희처럼 어떻게든 견뎌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를 견뎌내지 못하고 자퇴를 선택하거나 삶을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한국디지털미디어고 한결이는 심한 매질과 단순하게 반복되는 수업을 견디지 못하고 중학교를 자퇴했었다. 한결이는 말한다. "학교 안에서는 성장할 수 없었어요!"라고.

"현실을 몰랐을 때는 꿈이 크잖아요. 나중에 현실을 알게 되니까 꿈이 점점 작아졌어요!"

혜원이의 이 말은 가슴에 박혀든다. 혜원이는 3년 내내 최선을 다해 공부했단다. 가족여행도 가지 않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일도 포기하면서 공부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이런 노력으로 혜원이는 고2때부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내신 등급 1.3퍼센트.

책속에서
동준(담양공고1)이에게 나중에 어디에서 일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녀석은 한국시그네틱스나 하이닉스에 취업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갈등이 일었다. 한국시그네틱스나 하이닉스라면 비정규직 사원을 집단으로 해고해서 오랫동안 시끄러웠던 사업장이 아니던가.

동준이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의 삶을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곳이 쓰렸다. 동준이에게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노동자로 사는 삶이 어떠한지, 얼마나 많은 것을 견뎌야 하는지, 알게 모르게 흘려야 하는 눈물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도.

문득 노동자들을 교육하는 하종강 선생님이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노동조합에 대해 알리는 내용이 들어갓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동준이도 막연하게나마 회사에 들어가면 일이 힘들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도권 대학에서는 지방 학교라는 이유로  이런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혜원이는 대학에 떨어졌다. 혜원이는 한 인간으로서 한계를 느끼며 공부에 전념했지만 잘못된 교육정책이 만든 학교간의 격차 때문에 낙오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혜원이의 말보다 더욱 가슴 아리게 박혀드는 말은 "IMF가 제일 무섭다"는 담양공고 1학년 근태의 말이다. 근태에게 대학 입학의 꿈은 멀다. 기술자격증을 하나라도 더 따서 졸업 후 취업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 동준이도 근태와 비슷한 상황이다. 동준이는 졸업 후 "한국시그네틱스나 하이닉스에 다니고 싶다"가 꿈이란다. 근태도 동준이도 선배들에게 이미 들어 저희들 말로 "빡쎄게 14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지방 학생들의 엄연한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외에도 ▲"너희가 머리 기르면 나라 경제가 망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연택이 ▲중1때 자퇴와 가출, 취업을 할 수 없는 14살 나이에 주유소며 옷가게 등을 전전, 심지어는 성매매까지 해야만 했던 예지 ▲14살 때 엄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집을 나가 방황하다가 복학을 한 미진이 ▲시험(점수)에 대한 압박(긴장) 때문에 시험기간만 되면 귀신까지 본다는 민정이 ▲불 다 끄고 닷새 동안만 실컷 자는 것이 소원이라는 상현이 ▲원하는 1등을 했는데도 좋기는커녕 굉장히 우울하다는 혜정이 이야기 등이 있다.

저자는 또한 교육현장의 선생님들과 정신과 의사, 교육관련 교수 등 7명의 전문가와 10대를 둔 학부모를 인터뷰, 칼럼 형태의 글을 사이사이에 실었다. 이들의 이야기만 따로 읽어도 좋을 만큼 오늘 우리 청소년의 현실과 문제점, 대안을 담고 있는 글들이다.

대한민국에서 10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난 청소년을 둘씩이나 둔 엄마다. 서울을 막 벗어난 외곽지역에 산다. 서울 근교 외곽지역에 사는 학부모 중에는 위장전입을 해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서울에 있는 학교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수준이 낮은 지방학교에 보내면 수준 낮은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도시 아이들에 비해 수준이 떨어져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내게 말했다.

손에 땟국물까지 졸졸 배어있을만큼 작은 꼬마들이 책가방을 메고 졸고 있는 것을 보며 아이를 깨워 어디까지 가는가 물어보면 아이의 집은 서울과 버스로 40여분이나 떨어진 거리일 때가 많았다. 우리 아이들이 집에 있을 시간에 그 아이들은 졸린 눈을 다시 감고 버스와 함께 사라지곤 했다. 그 아이들은 지금 어떤 꿈을 꾸며 어떤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있을까?

중간고사를 망치고도 천연덕스럽게 "보충반이 좋다"고 말하는 내 아이, 그러나 중간고사의 실패를 어떻게든 메워야 한다며 요즘 며칠간 제 스스로  TV를 끄고 공부에 미쳐있는 둘째를 보면서,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를 통해 인간의 행복까지 입시 이후로 미뤄야만 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을 만나는 동안 그때 그렇게 만났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 교육문제에 관심이 지극하고 극성인 사람들에게 나는 한편 참 한심한 엄마지만, 난 평소 우리 아이들과 아이들 주변을 많이 알고 싶어 하는 편이다. 때문에 이 책을 선택했다. 우리아이 또래들의 꿈과 고민을 알게 된다면 내 아이들을 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거란 기대와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책은 기대 이상이었다. 애초에 기대했던 10대나 교육문제만이 아니라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과 비정규직 등 문제까지 담고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읽는 동안 참 많이 우울했고 이처럼 광폭한 현실을 견디고 살아야만 하는 아이들의 현실 때문에 울렁거리기도 했다. '내 아이들에게 너무 무관심한가?' 이제까지의 생각이 흔들리기도 했다.

'내 아이도 공부 잘하는 10%에 들지 못하기 때문에 책속 아이들 90%처럼 선생님께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공상이나 하고 소설책이나 보면서 하루하루 대충 때우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학교에 간 시간에 책을 읽으며 당장 학교로 가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후회도 했다. 나도 청소년들이 머리와 옷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공부 방해와 경제적인 문제를 들먹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와 3년 넘게 벌이고 있는 머리전쟁을 일단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왜 교복 바지통을 그렇게 줄이고 싶은 건지, 치마를 그렇게 짧게 줄여 입고 싶은 건지 이유를 진지하게 물어 본적이 있었나? 생각이 분분했다.

마치는 글에 저자가 '슬픈통계'라는 제목으로 올린 통계 하나. 저소득층 학업포기자는 일반 학업포기자보다 높다.인문계 2학년때 가장 많이 학업을 포기한다. 저소득 학생 중 90점 이상을 맞은 학생은 단 1명뿐이고 3명중 1명은 아예 학업을 포기한다...통계와 함께 있는 책속 글이다.
 마치는 글에 저자가 '슬픈통계'라는 제목으로 올린 통계 하나. 저소득층 학업포기자는 일반 학업포기자보다 높다.인문계 2학년때 가장 많이 학업을 포기한다. 저소득 학생 중 90점 이상을 맞은 학생은 단 1명뿐이고 3명중 1명은 아예 학업을 포기한다...통계와 함께 있는 책속 글이다.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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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학원 같은 경우는 예전에 건물 벽에 크게 플래카드를 붙여놓았는데 '자물쇠학원'이라고 씌어 있어요. 거기는 정말 애들이 공부하면 밖에서 자물쇠를 잠근대요. 그걸 자랑스럽게 플래카드에 써서 붙여놨어요. 저녁이 되면 학원 앞에 셔틀버스가 쫙 깔려요. 부모들이 그런 곳에 애들을 더 보낸다는 소리죠. 애들 심정이 어떻겠어요? 그렇게 안하면 대학에 못 갈 것 같으니까 참고 하는 거예요." - 책속에서(강남 거주 학부모)

대한민국에서 10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은 지금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나처럼 10대 청소년을 둔 부모들과 10대 청소년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도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책임지는 교육현장의 선생님들과 전문가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그런 책이다. 좀 더 많은 아이들이 숨만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도록!

덧붙이는 글 |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김순천 (지은이) | 동녘 | 2009-08-31|정가 : 13,000원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김순천 지음, 동녘(2009)


태그:#청소년, #10대, #학업포기, #입시위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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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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