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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선생님과 나
 장영희 선생님과 나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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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에서 장영희(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황망하고 믿기지 않은 마음에 공항 벤치 아무 데나 앉아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오래 병고에 시달리는 것은 알았지만, 올해도 또 어떻게 이겨내시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에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오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으니까요.

라오스에서 다녀오면 스승의 날일 터이니 이번엔 꼭 장미 바구니를 들고 뵈러 가야겠다고, 그 정도로 제자의 도리랄지, 사랑의 표현으로 족할 거라고 그런 계획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선생님은 예쁜 카드와 꽃 같은 것들을 참 좋아하셨지요. 가끔 연구실에 가보면 즐비하게 늘어놓은 성탄 카드나 앙증맞은 장식품이나 식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미국 문학을 알려준 장영희 선생님

새봄이 되면 새책을 보내주실 거라고 하신 말씀에, 저는 그저 이제 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책을 안 보내시는구나, 곧 보내시겠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메일 박스를 뒤져보니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받은 메일은 1월말이었습니다.

'새로 시작한 항암제가 좀 낯설어서 한참 좀 헤맸단다. 그저께 7번째 맞았는데 아직 갈 길이 좀 멀어. 여름부터 안식년이라 미국 갈 계획 다 세워 놓았는데 그냥 발이 묶여 버렸어. 할 수 없지 뭐. 그냥 그동안 써놓은 글로 책 내려고 준비하고 있단다. 3월쯤 나올지 몰라.  나오는 대로 보내 줄게. 2009년, 네게도 내게도 좋은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치?'

마지막 문장, '네게도 내게도 좋은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마음에 아립니다. 계속되는 항암 치료로 면역도 약해지고, 암 자체보다 심장이나 다른 곳들까지 나빠져서 힘드신 상황에서 그래도 올해는 좋은 해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늘 간직하신 우리 선생님….

서강대에서 미국문학 수업에서 만난 장영희 선생님은, 수필가로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 전부터 문학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던 진정한 문학의 전도사였습니다. 에밀리 디킨슨과 마크 트웨인을 가르쳐 주실 때, 저는 시의 문장 하나하나가 생명을 얻고 살아나서 우리의 삶으로 깊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Love- is anterior to life-
Posterior to death-
Initial of creation, and-
The exponent of earth  (Emily Dickinson)

사랑은- 탄생 이전-
죽음 이후-
천지창조의 근원이고,
지구의 해석자-

디킨슨의 시를 좋아하셨던 선생님은 시인의 고독하지만 정결한 삶, 절대자를 사랑하고 삶과 죽음의 본질을 관통하던 시인을 닮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디킨슨은 세상과 고립되어 시를 썼지만, 선생님은 문학이 무언지도 모르는 세상의 작은 사람들, 그저 일상조차 버거운 보통 사람들을 위해 문학의 숲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유난히 읽기 편하고 재치가 넘치며 글 하나하나 깊이 무릎을 치며 공감하게 되는 것은, 선생님이 문학을 위한 문학을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위로가 되는 문학, 희망이 되고 힘이 되는 문학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영문 에세이집인 <Crazy Quilt>부터, 베스트셀러가 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내 생애 단 한번>, 그리고 <문학의 숲을 거닐다>나 <생일, 축복> 등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의 글에는 진솔함과 소박함이 묻어 있습니다.

'장애인 교수', 선생님은 그 말이 싫다셨죠

고생 한 번 안해보고, 무난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무조건 인생이 얼마나 눈부시냐고, 살 만하지 않느냐고 말을 한다면 우리는 시큰둥하게 듣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늘 진지하게 생의 순간순간을 살았던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경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실 때,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목발을 짚고 캠퍼스를 다니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서 눈이 많이 오는 게 싫었다고 하시던 분. 오랜 기간을 준비하며 박사논문 자료를 찾고 글을 준비하고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되는데,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려 연구자료가 고스란히 사라져 버렸지만, 절망을 털고 다시 처음부터 글을 쓰셨다지요.

다리가 불편해서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상을 느리게 볼 수밖에 없다는, 그렇게 느리게 보는 풍경이 좋다던 말씀도 떠오릅니다. 그런 느림이 있었기에, 선생님은 작은 것들, 하찮은 것들도 세밀하게 보시고 거기서조차 삶의 경이를 보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지요. 세간에서 레떼르처럼 붙여서 말하는 '장애인 교수의 성공과 재기 등등' 그런 표현이 싫다고 하셨죠. 그냥 인간 장영희인데, 왜 자꾸 그런 꼬리표를 붙이느냐고….

언제고 선생님과 같이 아름다운 숲에 산책도 하고 언제고 영화도 보고 그런 것들을 해야지 생각했는데 13일 오늘 장례미사에서 선생님을 떠나 보냅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지요. 살면서 쉽게 죽음을 말하던 때가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좋은 글과 아름다운 삶으로, 인생에 겸손해야 함을, 감사해야 함을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셨는데도 순간이 지나면 관성대로 함부로 살았습니다. 그 소중한 사랑, 이렇게 떠나고 나서야 더 절절하게 마음에 사무치네요.

선생님, 저희 가슴에 영원히 계실 선생님, 평온한 휴식을 누리세요. 돌아가시고 나서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2009년 5월 13일 은미


태그:#장영희 , #서강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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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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