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 여자. 건강 검진으로 한쪽 갑상샘에 8mm 유두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갑상샘 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 전에 한쪽만 뗄 수도 있고 수술 당시 상황에 따라 피막침범이 있거나 림프절 전이가 있으면 모두 뗄 것이란 말을 듣고 수술에 동의한다.
수술 후 림프절에 전이가 있어 갑상샘이 모두 없어졌다는 사실에 실망하지만, 전이되어 죽을 뻔했는데 암이 완전히 제거된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갑상샘을 모두 떼길 잘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정말 잘한 것일까? 그러나 이는 멀쩡한 갑상샘을 도둑 맞은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갑상샘암 수술의 목표는 암 조직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지, 갑상샘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암 주위 조직을 포함해 암을 제거하면 충분하다. 예상되는 전이 림프절을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치료가 된다. 물론 전이 림프절이 1cm 이상인 경우라면 재발 위험이 있지만, 2~3mm 크기의 작은 림프절 전이는 수술 시 잘 청소해서 제거하면 생존이나 재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개정 가이드라인의 권고 "1cm 이하는 문제 발생 안해"
특히 수술 시에는 전이가 없어 보이다가 수술 후 병리 검사 시 현미경으로 발견되는 0.1mm 정도 되는 전이는 더욱 위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일부 의사는 환자에게는 '전이가 있었다'고 설명함으로써 전 절제를 정당화하고, 환자도 그렇게 믿는다.
이런 치료를 하는 의사들은 자신들이 가이드라인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가이드라인을 만든 미국갑상선학회는 이미 이 길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지 오래다. 지난 2009년 미국갑상선학회는 1cm 이상의 갑상샘암은 갑상샘을 모두 절제할 것을 권유했고, 1cm 이하라 하더라도 모두 절제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선보였다.
그러나 2014년 10월 전문가에게 배포된 개정 가이드라인은 사뭇 다르다. 여기에는 1cm 이하의 갑상샘암은 지켜봐도 좋고, 1cm에서 4cm까지의 암은 한쪽만 떼도 좋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1cm 이하의 암은 18년간 지켜봐도 사망률이 0%라는 논문에 근거한다. 1cm 이하의 암은 림프절 전이와 무관하게 거의 20년을 지켜봐도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 가이드라인을 추종하던 의사들은 이제는 어찌해야 옳을까? 가이드라인을 따른다는 자신들의 주장에 충실하려면 바뀐 가이드라인에 따라 1cm 이하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수술을 하더라도 지켜봐도 되는 암을 수술하는 것인 만큼 최소한의 수술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자신들이 그동안 해 왔던 방식을 바꾸는 것이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교묘히 그 중간의 입장을 취한다. 한국인과 미국인은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 가이드라인을 무조건 따르면 안 된다고까지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도 이전에 무조건 전(全) 절제를 하던 방식에서 은근슬쩍 반절제로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고 미국 가이드 라인을 모두 따르는 것도 아니다.
갑상샘 전 절제, 능사 아니다즉, 1cm 이하 암을 지켜보거나 일부분만 제거하는 것은 근거 없는 진료라고 비난한다. 근거가 없다면 왜 미국학회에서 이것을 강하게 추천했을까? 일부분 절제에 대해서도 근거 없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일부분 절제술이 전 절제술과 비교해 생존율과 재발률에서 차이가 없다는 논문도 있다. 지켜봐도 20년 생존율이 100%인 암에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암을 제거하고 림프절 청소까지 하는데 생존율이 높아지면 높아지지, 더 낮아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난 2013년 7월 토론토에서 열린 제2차 세계 갑상선학회 요약집은, 작은 암에서는 절제범위를 일률적으로 정해놓고 수술하지 말고 환자와 상의해 절제 범위를 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부분 절제술이 포함되는것은 물론이다. 그런 맥락으로 볼 때 위 환자의 경우 갑상샘 일부분 절제술과 주변 림프절 청소만으로도 100%의 생존율이 보장되는 충분하고도 안전한 수술이었을 것이므로 나머지 갑상샘은 도둑맞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부 절제술은 위험한 수술이라고 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무슨 근거로 위험한 수술이라고 하는지, 지켜만 봐도 생존율이 100%일 환자의 갑상샘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이야말로 오히려 위험한 수술이며 과잉 진료가 아닐지. 자신들의 과오를 감추려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멀쩡한 갑상샘을 도둑질하는 것은 그만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용식님은 건국대병원 이비인후-두경부외과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