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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공무원노조 한 투표소에서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 찬반을 묻는 투표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21일 공무원노조 한 투표소에서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 찬반을 묻는 투표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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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민공노), 법원공무원노동조합(법원노조) 등 3대 공무원노조의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 여부를 묻는 총투표가 전국에서 순조롭게 치러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부는 '엄정대처'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었다.

정부는 이번 공무원노조 총투표를 '정치중립위반'과 '강성노조 출현에 따른 국정방해' 등의 이유를 들어 불법 투표로 규정했고, 이번 투표에 관여한 공무원을 전원 징계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열린 관계 장관 회의에서 "통합 노조가 정치활동을 하는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은 매우 우려되고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노조 활동을 빌미로 공무원의 직무 전념 의무를 위반하거나 공직기강에 부정적 영향을 줘서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달곤 행정안전부장관은 21일 전북도청에서 현안을 보고받은 뒤 "공무원들이 강성노조를 구성해 국정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어떤 분야보다도 보호받는 공무원들이 강성노조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국민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비난했다.

정부는 근무시간 중에 투표하는 행위, 근무시간에 투표를 독려하거나 대리투표를 하는 행위 등이 불법이라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투표일인 21일과 22일 양일간 각 부처와 자치단체별로 채증반을 구성해 단속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단속에 적발되는 공무원에 대해선 징계에 부치거나 경찰에 고발하는 등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노동조합법 위반·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한 총리와 장관

민주노총은 21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공공부문 노조 탄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탄압은 정권의 시각과 태도를 그대로 대변한다"며 "투표방해와 지배개입행위를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선전포고로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21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공공부문 노조 탄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탄압은 정권의 시각과 태도를 그대로 대변한다"며 "투표방해와 지배개입행위를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선전포고로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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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은 21일 한승수 국무총리를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승수 국무총리의 발언은 노동조합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한 위헌적 행위로 부당노동행위"라며 "공무원들이 자기 조직을 통합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상급단체 가입을 위한 투표를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따져 물었다.

강 대표는 이어 "한 총리의 발언은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활동을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이자 지배개입행위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권영길 의원은 "행정안전부가 '3개 공무원노조 조합원 총투표 관련 공무원 복무관리 지침'을 전국 일선 행정기관에 배포해 투표를 방해했다"며 "정부가 나서서 상급단체에 가입지 못하도록 한 행위는 명백한 노동자 탄압"이라고 비난했다.

노무사 등 전문가들은 "국무총리가 직접 관계 장관들에게 투표 방해 행위를 독려한 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노동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의 자주적 의사결정을 방해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한 "노동조합 운영에 부당히 지배·개입한 직접적인 투표 방해 행위로 노동조합법 제81조가 규정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노동조합법 제81조는 사용자가 노동조합 가입·조직 등의 정당한 행위를 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6일 행정기관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전달한 지침
 행정안전부가 지난 16일 행정기관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전달한 지침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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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앞선 지난 18일에는 전공노 측이 이달곤 행정안전부장관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지난 10일과 16일 '총투표 관련 공무원 복무관리지침' 및 '추가지침'을 지자체에 내려 보내 조직적으로 총투표를 방해한 혐의다.

전공노는 고발장에서 "행정안전부가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지침을 통해 정당한 투표를 제한하고 징계하라고 행정기관과 지자체에 요구했다"며 "이는 형법상 직권남용죄와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고발 사유를 밝혔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0일 '자료의 대외유출 등 목적외 사용을 엄금'이라고 쓰인 비밀문서를 통해 "3개 공무원노조가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며 "투표와 관련해 복무감찰관을 운영하고, 가담자가 없도록 사전교육을 시킬 것"을 전국 지자체에 시달했다.

전공노 측은 "이 비밀문서에는 총투표와 관련한 홍보활동조차 규제하도록 해 사실상 투표자체를 무산시키려 했다"며 "행안부의 지침은 노동조합 활동 자체를 막겠다는 검은 의도가 숨어 있어 일벌백계 차원에서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시민의 이영직 변호사는 "근무시간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투표를 하는 행위 자체는 정당한 노동조합의 활동에 속한다"며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직권남용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징계 운운한다면 형법 제283가 규정하는 협박죄에 해당한다"며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을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력으로 방해하는 경우 형법 제314조가 규정하는 업무방해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정부가 공무원노조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을 방해하는 이유

21일 공무원노조 한 투표소에서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 찬반을 묻는 투표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21일 공무원노조 한 투표소에서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 찬반을 묻는 투표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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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공무원들은 "정부가 공무원노조의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을 방해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21일 이달곤 행정안전부장관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공무원들이 강성노조를 구성해 국정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들은 "이는 결국 공무원들은 국정이 옳건 그르건 관계없이 무조건 따르는 영혼 없는 인간으로 남길 바라는 정부의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표현"이라고 꼬집었다.

공무원노조는 2002년 출범 이래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삶의 질과 반하는 정책에 대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상수도 민영화, 국립대 법인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의료 민영화, 비정규직 양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니요'라고 외쳐왔다.

이런 이들이 통합할 경우 반대의 목소리가 커질 것을 우려한 정부의 고민이 통합과 상급단체 가입을 묻는 공무원노조 총투표에 대한 방해와 탄압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총투표 방해의 또 다른 이유를 공무원노조 통합 및 민주노총 가입이 여러 가지로 수세에 몰린 노동운동 진영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갈린 진보 정치에 마중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명박 정부의 우려에서 찾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공무원노조 통합과 이들의 민노총 가입이 현실화될 경우 약 12만 거대 노조가 민노총과 같이하게 된다"며 "7만7천 전교조가 우리 사회에 미친 악영향을 고려할 때 이것이 미치는 파장은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안 원내대표는 이어 "통합 공무원노조가 폭력투쟁과 정치 편향적인 민노총에 가입한다는 건 헌법 7조에 규정된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의 지위를 버리고 민노총의 전위대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상급단체 가입을 비판했다.

이보다 앞선 17일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은 교원노조와 공무원노조의 상급노조 가입 금지를 골자로 하는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 의원은 "현행 교원노조법과 공무원노조법은 조합원과 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으나 정치활동이 허용된 상급단체 가입에 대한 제한 조항이 없어 민주노총 등에 가입, 우회적으로 정치연대활동을 하고 있다"며 "법 개정을 통해 현행법의 취지를 확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진보정당의 후보단일화로 지난 4월 29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조승수 의원
 지난 5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진보정당의 후보단일화로 지난 4월 29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조승수 의원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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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가 통합해 민주노총에 가입할 경우 노정관계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65만8천명이 활동하고 있는 민주노총에 통합 공무원노조가 합류할 경우 조합원이 77만8천명으로 불어나 72만5천명이 활동하고 있는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노총 자리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제1노총 자리에 오른 민주노총은 정부가 구성한 각종 위원회에 더 많은 근로자 위원을 참석시킬 수 있게 된다. 또한 조합원 탈퇴 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민주노조에 새로운 변화의 기운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갈린 진보정당에서도 공무원노조 통합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 5월 전공노 사무실을 방문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기쁜 소식을 접하고 방문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며 "공무원노조의 통합 결정이 정치와 노동계에 큰 희망을 전해줬다"고 말해 진보정치의 통합에 대한 기대를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한편 공무원노조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 총투표는 조합원 과반수 투표에 각각 2/3이상과 1/2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투표가 끝나는 22일 밤 11시 정도면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여 관심이 쏠리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일 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시달한 지침으로 비밀문서임을 강조하기 위해 '자료의 대외유출 등 목적외 사용을 엄금함'이라고 썼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일 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시달한 지침으로 비밀문서임을 강조하기 위해 '자료의 대외유출 등 목적외 사용을 엄금함'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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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무원노조, #민주노총,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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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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