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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전 장관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해설서를 23일 발간, 노무현 전 대통령 NLL(서해북방한계선) 포기발언 의혹을 반박했다.
 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전 장관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해설서를 23일 발간, 노무현 전 대통령 NLL(서해북방한계선) 포기발언 의혹을 반박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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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조봉암을 죽였다. 왜 죽였을까. 최대 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김대중을 왜 죽이려 했을까. 부정선거로 당선된 뒤라 다시는 선거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그래서 죽이려고 했던 거다. 대화록 정국은 왜 대선이 끝났는데도 계속될까. 그건 문재인씨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또 나올지 모르지 않나. 새누리당의 최대 정적은 문재인씨다. 그러니 어떤 수를 써서라도 문재인을 정치적으로 죽여야 한다. 문재인을 종북에 가두고 득표의 외연 확장을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집권이 수월하지 않을까."

머리카락이 꽤 길게 자란 상태였다. 모자도 푹 눌러 썼다. 정치하던 시절 2:8 가르마에 살짝 기름칠도 느껴졌던 그의 머리카락은 <100분 토론> 사회자로 명성을 날리던 그 시절보다 더 뒤로 갔다. "그래, 내가 졌다"며 정치권을 떠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 파주 '자유인의 서재'에서 만난 그는 그렇게 변한 모습이었다.

빤딱빤딱한 검정 구두 대신 등산화를 신었고 말쑥한 양복 대신 점퍼를 입었다. 정치권을 떠나니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대뜸 "아침마다 유권자가 원하는 헤어 스타일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라며 맑게 웃었다. 한동안 사나워 보였던 그의 인상도 유들유들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차림은 많이 변했지만 여전한 게 하나 있었다. 아메리카노.

"내가 아메리카노로 싸웠더니 사람들이 요새도 커피 선물을 보내줘요. 브라질 커피, 괜찮아요?"

원두를 분쇄기에 넣고 드륵드륵 소리를 내며 갈기 시작했다. 곱게 갈린 원두를 여과기에 넣고 스테인레스 티폿으로 더운 물을 주르륵 부었다. 한 잔씩 커피를 돌린 후, 그는 깨지지 않는 전통의 미국산 면기 코렐 그릇에 통채로 담갔다. 설거지는 나중에 하자, 이런 주의 같았다.

 <노무현-김정일의 246분>
ⓒ 돌베개
<오마이뉴스>는 지난 23일 파주출판단지 내 위치한 유 전 장관의 서재에서 오랜만에 그와 만났다. 그는 새 책 <노무현-김정일의 246분>으로 돌아왔다. 기왕에 공개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해설서라고 했다. 법으로 허락된 사람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가 기왕에 공개됐으니 주권자인 국민들도 그 안에 뭐가 담겼는지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을 통해 꼭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 우리 대화록을 읽읍시다"라고 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시종일관 '사초 폐기', '사초 실종'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무식의 소치'라고 비판했다. 유 전 장관의 말이다.

"사초는 원래 폐기하는 거다. 사초가 뭔가. 실록을 적기 전에 사관들이 메모한 것이다. 사초를 기반으로 정식 기록을 남기고, 정식 실록이 작성되면 사초는 원래 없애는 거다. 혼돈을 막기 위해 당연한 조치다. 그러니 대화록 초본이 없는 건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 사초 실종이라고 개탄한다. 이건 무식의 소치다. 사초 폐기는 무식의 과감한 자기폭로다."

그는 지금 "철학과 전략이 충돌하고 있다"며 "새누리당은 북을 붕괴시켜 흡수할 대상이라고 보고 있다, 노무현-김대중 대통령은 질서정연하게 체제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며 "이제 그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 진짜 논쟁은 하지 않고 사이비 논쟁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대화록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며 "자기 아버지가 벌였던 일 때문에 고통받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 여과 없이 대화록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 것까지 다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아주 진지하게 대화록을 읽다보면 국정원의 저 바보 같은 대화록 공개사건, 그 어리석은 행동이 새옹지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유시민 전 장관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노무현-김정일의 246분>, 청와대에는 안 보낼 것"

- <노무현-김정일의 246분> 책이 나왔다. 책을 쓰는 데 얼마나 걸렸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된 게 지난 6월 24일이니까 석 달 정도 걸린 셈이다. 그런데 그것만 한 것은 아니고, 다른 작업을 하면서 짬짬이 했다. 그러다가 책으로 내야겠다고 했을 때는 이미 내 홈페이지에 8차례 연재 꼭지가 나간 터라 책 작업하는 데는 비교적 짧은 시간이 걸렸다. 짬짬이 쓴 셈이다. 처음에는 1000원짜리 소책자를 만들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미 때가 지났고 논란이 밑도 끝도 없이 확산돼서 기왕에 얘기할 거라면 남북관계사 기본사안들을 다 봐야 해서 충분히 얘기하는 게 좋겠다, 이렇게 된 것이다."

- 이 책은 왜 써야겠다고 생각했나.
"대화록을 직접 읽어봤나? 내 주변에는 대화록을 정독한 사람이 없다. 언론은 뭐하는 것인가. 대화록이 공개됐으면 일일이 분석해서 대화록의 쟁점을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대화록에 담긴 진실이 뭔지 취재해서 알려야 한다. 그런데 언론이 그런 기능을 거의 안 했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공방과 뒤범벅해서 뭐가 뭔지 모르게 다뤘다. 도대체 노무현-김정일이 만난 246분간 무슨 대화가 이뤄졌는지 국민들이 거의 아는 바 없다.

내가 만약 방송국 사장이나 신문사 사장이라면 아주 특집으로 한 달 내내 대서특필했다. 주류 언론이 죽은 탓이다. 공중파 방송을 포함해 종편은 말할 가치도 없고. 언론 기능이 완전히 죽었다. <한겨레> <경향신문>이 일부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공론의 장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돼 버렸다. 새누리당이 공론의 장을 죽였다. MBC <100분 토론>이 있지만 무슨 이슈가 터져도 토론이 안 된다. 자기 주장만 하지. 나 정말 어이가 없어, 정말."

- 벌써 1년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논쟁 중이다. 어떻게 보나.
"지난해 10월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처음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솔직히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대화록이 있긴 있을 텐데, 그것이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대화록은 공개될 리 없으니까, 정 의원의 발언 진위를 확인할 방법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몇십 년간은. 그냥 새누리당이 저렇게 나오는 걸 보니 대선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네? 그 정도만 생각했다. 대선이 끝난 뒤로는 새누리당이 대화록과 관련된 출구 전략을 마련해 끝낼 줄 알았다. 그런데 계속 확전해 끌고 나갔다. 혹시 트집 잡힐 일이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도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북한에 다녀오신 뒤에도 NLL은 안 건드렸다고 했고, NLL을 잘못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 것도 몰랐을 리 없는데 하던 중에 국정원에서 대화록을 공개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대화록을 읽어보니까, 도대체 한글을 읽을 줄 아는 건지 의심될 정도였다."

- 이 책을 어떤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나.
"정치 난독증에 걸린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병이 낫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화록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트집을 잡아 비판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 무슨 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청와대에도 안 보낼 거다. 박근혜 대통령이 혹시 대화록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싶으면 청와대에도 보내 대통령도 읽어 보시라 할 텐데 그럴 생각이 없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이 책을 읽지도 않을 것이다. 대화록을 정확히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 상식적 판단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국가와 남북관계에 관심 있고, 통일과 평화에 관심 있는 시민들, 많이 있지 않나. 그런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최대의 정적이 문재인씨다. 그러니 어떤 수를 써서라도 문재인을 정치적으로 죽여야 한다. 그래서 대화록으로 공세하면서 문재인을 종북, 친북에 가두고, 득표의 외연확장을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집권이 수월하지 않겠나."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최대의 정적이 문재인씨다. 그러니 어떤 수를 써서라도 문재인을 정치적으로 죽여야 한다. 그래서 대화록으로 공세하면서 문재인을 종북, 친북에 가두고, 득표의 외연확장을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집권이 수월하지 않겠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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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중요 정치 국면마다 대화록을 활용한다. 새누리당의 정치적 활용, 그것이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새누리당을 지지한다. 왜 이런 모순이 되풀이될까. 
"북풍은 난민촌 정서를 자극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 전체가 피난민촌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정전체제 60년간 계속 유지돼 왔기 때문에 국민 마음속엔 우린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다. 북한에서 일으킨 전쟁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가해자인 북한에 대해 조금이라도 우호적 제스처를 취하면 '저거, 우리 편 아닌 것 아닌가' 의심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65년간 대한민국의 모든 게 바뀌었지만 안 바뀐 게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난민촌 정서가 있는 한 새누리당은 그 정서를 계속 활용한다. 이건 논리가 아니라 정서다. 토론이나 대화로 안 바뀌는."

-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없었다는 게 확인됐음에도 왜 믿지 못할까.
"난민촌 정서에서는 적과 내통하는 자가 없는지 늘 감시해야 한다. 적과 내통하는 게 발견되는 즉시 격리 조치해야 한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이고, 남북정상회담까지 한 분이었지만 북과 대결하지 않고 손잡고 화해협력, 교류 그리고 장사를 하려고 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의심하는 것이다. 법치주의가 확립된 지 얼마 안 된 나라라서 증거에 의해 무엇을 판단하는 의식이 약하다. 어떤 혐의가 씌워지면 일단 유죄로 인정하는 게 굉장히 강하다. 정전체제 60년간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빠르게 변화했지만 유독 이 부분만큼은 느리게 바뀌고 있다."

- 북한도 비슷한 게 아닐까.
"북한이 좀 잘하면 훨씬 더 빨리 완화될 텐데, 북이 잘하지 못했다. 민주정부 10년간 북한은 너무 소심했다. 대화록을 통해 드러난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을 보면 여기저기 공단이 다 뜯어가면 주체공화국은 없어지고 민족경제가 파탄나지 않을까, 이러다 정녕 북한의 정체성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크다. 그러니까 북한 스스로 전환의 의지를 갖고 있는, 시스템 전환을 위한 준비를 갖춘 나라가 아니다. 민주정부 10년간의 대북정책도 이런 조건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진도가 매우 느렸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뭘 잘할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 박근혜 대통령도 DMZ평화공원 등 남북관계 발전을 이루겠노라 했는데.
"반북 정서를 가진 유권자들에게 인기를 받는 수준이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올 상반기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라는 게 결과적으로는 난민촌 정서를 가진 국민들을 기분좋게 했다는 것 아닌가? 북의 불합리한 행동에 대한 응징, 그 이상 뭐가 있었나.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뭘 잘할 거라고 기대하지 말아라.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형 보수니까 잘 할 거야. 잘했나? 천만의 말씀.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 대통령인데도 한미FTA를 추진한 것은 지지층에게 욕을 먹더라도 정치적 반대 진영이 환영할 만한 일을 한 것이다. 정치인 개인에게 데미지가 가더라도 국가적 충격을 덜할 게 있다면 그런 선택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전혀….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시대 국가관과 사회관, 인간관, 대북관 이걸로 가는 거다. 앞으로 4년간 어쩔 수 없다. 우리 국민이 그걸 선택하지 않았나."

- 부정선거와 대선불복 주장이 나온다. 4년간 이대로 가겠나?
"문재인씨가 100만 표차로 졌다. 이걸 법원에 소송을 냈다고 가정해 보자. 국정원 심리전단, 경찰, 국군 사이버사령부 그리고 십알단. 이들이 거대하게 움직였지만 100만 표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얻었다는 근거가 있지는 않다. 사이버상의 여론조작이 얼마만큼의 표차를 가져왔는지 계측할 수가 없다. 계측할 수 없는데, 당선무효될까? 법원이 선거무효 판결을 못 내릴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말대로 대화록 공세는 여론조작을 위한 작업의 콘텐츠였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8일 정문헌 의원이 폭로했을 때 이미 그 작업은 가동중이었을 것이다. 아주 용량이 큰 콘텐츠인 대화록을 여론 조작용으로 넣은 것이다. 그런데 이 작업 때문에 100만 표차? 이건 법으로 풀 수 없다. 정치로 풀어야 한다."

- 정치로 풀리지 않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몰랐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남김 없이 철저하게 조사해서 처벌하겠다. 또 내가 시킨 일은 아니지만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를 지지할 목적으로 못된 짓을 한 데 대해 정말 죄송하다. 그런데, 뭐? 내가 댓글 때문에 당선된 것은 아니다? 정의감이 발동해서라도 이런 나쁜 놈들 엄히 처벌해야 돼, 이게 정상 아닌가.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그 어떤 불법이 저질러져도 가만 있겠다는 건가 싶다. 준법정신이나 헌법수호 책무가 있는 대통령의 임무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게 아닌가 싶다."

- 박근혜 정부 임기 8개월째지만 대다수 지식인들은 역사의 후퇴를 우려한다.
"역사는 뒤로 가지 않는다.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대한민국은 절대 뒤로 가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가 요즘 하는 걸 보면 컴퓨터가 없던 시절 통치하던 박정희가 다시 인터넷 시대로 돌아오면 저렇게 할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삶의 기술적 조건은 자꾸 변화가 일어나고 이 변화에 맞춰나가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5년 포함 6년간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그러니 자꾸 마찰이 생긴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민주정부 10년간 많은 게 변했다. 그 변화가 갑자기 멈췄거나 변화의 속도가 굉장히 느리니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표면에서는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코 뒤로 가지 않는다."

- 제자리걸음으로 마찰이 증폭되면 결국 폭발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마치 압력밥솥의 꼭지 같은 특징이 있다. 폭발은 출구가 없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압력밥솥 꼭지처럼 부글부글 끓을 때 꼭지를 재껴놓으면 아무리 끓어도 절대 안 터진다. 민주주의와 독재의 차이가 뭔가. 국민이 합법적으로 정권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닫히면 독재다. 대통령은 단임제고 5년마다 바뀐다. 따라서 폭발은 안 일어난다. 선거에서 권력이 바뀐다 해도 국민이 100% 바뀌는 게 아니다. 51: 49에서 51이 되는 쪽으로 정권이 바뀌는 거니까. 어느 나라나 똑같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이제야 나라가 바로서고 있다, 박근혜 잘한다, 이렇게 판단하는 국민들 있지 않나. 그럼 그 판단도 존중해야 한다." 

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전 장관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해설서를 23일 발간, 노무현 전 대통령 NLL(서해북방한계선) 포기발언 의혹을 반박했다.
 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전 장관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해설서를 23일 발간, 노무현 전 대통령 NLL(서해북방한계선) 포기발언 의혹을 반박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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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대화록으로 돌아가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국가기록원이 아닌 국정원에 대화록을 남기라 했을까.
"그건 사실관계가 아직 확인된 게 아니다. 대통령이 언제 누구에게 지시해서 그것이 국정원에 남게 됐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지시와 무관하게 진행된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알겠지. 그런데 그 점에 대해 아직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다. 국정원에 대화록이 남은 건 사실이지만 누구의 지시로 왜 대화록이 거기 있는지는 앞으로 검찰이 밝혀야 한다. 다만, 국가기록원에 없는 점, 이건 기술적 문제 같다. 이지원을 통째로 넘겼는데 국가기록원에 없다면 그건 검찰이 밝혀야 한다.

그리고 사초는 원래 폐기하는 거다. 사초가 뭔가. 실록을 적기 전에 사관들이 메모한 것이다. 사초를 기반으로 정식 기록을 남기고, 정식 실록이 작성되면 사초는 원래 없애는 거다. 혼돈을 막기 위해 당연한 조치다. 그러니 대화록 초본이 없는 건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 사초 실종이라고 개탄한다. 이건 무식의 소치다. 누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 따위로 보고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무식의 소치다. 아니, 박근혜 대통령은 그럼 초안부터 다 보시나? 사초 폐기는 무식의 과감한 자기폭로다. 노 대통령은 그 문서를 감출 하등의 모티브가 없는 사람이다. 임기 중 내세울 만한 업적 중 하나인데 그걸 왜 없애겠나."

"대화록, 김무성은 봤는데 왜 주권자인 국민은 못 보나"

- 대화록 논쟁 초기에 과연 이 대화록을 공개하는 게 옳은가 논쟁이 있었다. 어떻게 보나.
"박근혜 선거대책본부에서는 구해서 볼 거 다 보고 토막쳐서 멋대로 활용하고 이미 고인이 된 대통령을 험담하고 모욕하는데, 보지 말아야 하나? 이미 박근혜 캠프에서는 여러 관련자들이 다 복사해서 봤는데, 그들을 처벌하고 회수해서 다시는 아무도 보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쪽은 보지 말라? 그건 불의다. 지들끼리만 돌려보고, 멋대로 발췌해서…. 언제까지 그 꼴을 봐야 하냐. 비밀이면 법에 의해 허락받은 사람만 보고 나머지는 몰라야 하는데, 주권자인 나는 모르는데 아무런 권한 없는 자들이 보고 기자들에게 떠들고, 그런 판국에 왜 주권자인 국민만 그걸 못 봐야 하나? 그것도 불법인데 불법은 묵인하면서. 이런 조건이라면 그냥 까는 게 정의로운 거다 생각했다. 국가기밀정보가 불법적으로 일부에 의해 독점돼 있는 상태라면, 차라리 까는 게 낫다."

- 그래도 정상간 대화를 공개하는 게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될까.
"남북 정상간 대화를 공개하는 게 멍청한 짓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이미 김무성씨가 유세장에서 다 읽었다. 불법으로 유출한 자료를 일부 정파만 독점해서 읽고 악용하는 건 사악한 짓이다. 그런 사악함을 용납하느니 차라리 어리석음을 용납하는 게 낫다는 생각인 것이다. 콜레라와 페스트 사이에서의 선택 같은 건데, 어쩌겠나."

- 대선도 끝났는데, 이미 끝났어야 할 이 대화록 논쟁이 왜 계속된다고 보나.
"대화록의 정치적 오남용과 관련해, 뚜렷이 어느 진영에 속해 있다고 생각지는 않고 사안에 따라 나름대로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화록의 정치적 오남용 속에서 정상회담 대화록 자체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좀 읽었으면 좋겠다. 246분간의 대화 속에 무슨 얘기가 오갔고 그때 이뤄진 합의가 어떤 성격을 가진 것인지 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면, 나중에 어디에 투표하든 상관없이, 이 대화록이 비이성적으로 악용하는 것에 비판적 인식을 가지면 된다. 시장점유율 2%, 100명 중 2명에게만 영향을 미치면 좋겠다."

- 권영세 주중대사가 지난해 대선 직전 밝힌 컨틴전시 플랜은 지금도 가동 중이라고 보나.
"원래는 대선용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경로의존성이라는 게 있어서 대선 때 엄청 써먹었는데 유야무야해 버리면 자기들이 거짓말한 셈이 되니까 무식하게 밀고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문재인씨 때문이다. 이승만이 조봉암을 죽였다. 왜 죽였을까. 최대 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왜 김대중을 왜 죽이려고 했을까. 1971년 90만 표차로 이겼지만 군 부재자 투표로 엄청난 부정선거로 당선된 뒤라 다시는 선거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래서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럼 왜 대화록 정국이 대선 뒤까지 이렇게 갈까. 그건 문재인씨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또 나올지 모르지 않나. 문재인씨는 일단 1469만 표를 받은 사람이다. 다음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될지 모르지만 문재인씨는 잠재적 걸림돌이다. 안철수씨도 있지만 그는 세력이 없는 사람이다. 정치는 알 수 없으니까 문재인씨가 다시 나와 50만 표만 더 받으면 정권이 바뀌는 거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최대의 정적이 문재인씨다. 그러니 어떤 수를 써서라도 문재인을 정치적으로 죽여야 한다. 그래서 대화록으로 공세하면서 문재인을 종북, 친북에 가두고, 득표의 외연확장을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집권이 수월하지 않겠나."

- 컨틴전시 플랜이 대선 전엔 박근혜 낙선에 대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문재인 의원 제거용이다?
"문재인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고 제2차 정상회담의 준비위원장이었다. 안 그러고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 장기집권플랜이다?
"그거야 자기들 생각이겠지. 장기집권계획을 세운다고 그게 되나? 그건 민심이 정하는 건대."

- 대화록을 둘러싼 충돌, 그 근본엔 뭐가 있다고 보나.
"철학과 전략의 충돌이다. 책의 5장에도 썼지만 심연으로 들어가면 새누리당은 북을 붕괴시키고 싶은 것이다. 말을 못할 뿐이지. 북은 붕괴해서 흡수할 대상인 거다. 그러나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은 북을 붕괴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붕괴되면 더 곤란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질서정연하게 체제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본 것이다. 이제 그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 진짜 논쟁은 하지 않고 사이비 논쟁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뭐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주제이고 어떤 게 바람에 날리는 먼지인지 구분이 안 된다. 좀 기다려야지."

"대선 불복할 방법이 없다... 난 박근혜 대통령 인정"

- 지난 대선의 정당성 논쟁이 붙을 것 같다. 대선불복논쟁, 어떻게 보나.
"대선에 불복할 방법이 없다. (웃음) 법적인 절차가 이미 없다. 선거법 공소시효가 다 끝났다. 그럼 흔쾌히 내 마음으로 대통령 인정 못하겠다, 이럴 수 있다고 본다. 불법행위 엄단하는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계속 감싸고 묵인하고 은폐하는 대통령이라면 인정 못하겠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나? 나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라는 측면에서 인정한다."

- 정치는 다음 생에서나 하겠다고 했는데 진심인가.
"다음 생에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생 같은 것 믿지도 않지만. 자유인의 서재에서 일한 지 1년 가까이 돼 가는데 만약 내가 정치를 계속하면서 이 책을 썼다고 해보자. 그냥 진영 논리에 갇혔을 것이다. 정치 안 하는 입장에서 이런 책을 내니까 개인적 이해관계로 엮어서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계속 정치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글은 그 자체가 논리의 연쇄, 해석, 이런 걸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건데,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해보면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게 내가 정치하면서 범했던 오류다. 사람들은 받아들이지도 않는데 계속 그렇게 해왔거든. 지금 이게 훨씬 나은 것 같다. 나는 거부 당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중에게 맞추질 못한 것이지."

- 그래도 정치를 즐긴 편 아닌가.
"내가 정치를 즐긴 적은 없다. 승부가 있는 게임은 하다 보면 원래의 태도와 상관없이 흐름 자체에서 오는 매력은 있다.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을 때나 4·15 총선 과반 자체가 주는 짜릿함, 그런 것이다. 내가 정치를 즐긴 건 아닌 것 같다.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느낌? 헐렁하거나 꽉 끼거나 뭐 그런."

- 정치를 관두고 제일 좋은 게 뭔가.
"아침에 머리 손질 안 해도 되는 것이다. 정치 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51: 49에서 그 51%의 구미에 맞게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것 안 해도 된다. 정치는 내가 하는 것이나 안 하는 것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나름 역할을 할 때가 있긴 했지만."

- 이석기 사태는 어떻게 보고 있나.
"RO? (웃음) 이것도 사회가 변화하는 것보다 더 더딘 속도로 나가 마찰이 생긴 거라고 본다. 그 허점을 국정원이 파고들어 사건을 만든 것이지. 좀 황당하다. 그런데 그걸 뭐 내란음모라고? 한마디로 웃기는 거지. 그러니까 진보진영에서 가장 변화가 더딘 쪽과 국가기관쪽에서 가장 변화가 더딘 쪽이 서로 싸우는 거다. 수업 다 끝났는데 공부 못해서 교실에 남아 나머지 공부하는 거다. 계속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면서. 정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정당해산청구 한다고 하던데 그것도 웃기는 일이다. 정당을 퇴출시키려면 정치적 과정을 통해 해야지 그게 말이 되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봐야 한다. 현실정치에 종사하는 정당으로 진보당이 다시 살아날지, 국민적 평가를 통해 사그라들지. 그게 정상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
"대화록을 한번 읽어 봅시다! 그 얘기를 하고 싶다. 얼마나 좋은 기회냐. 우리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지만 김정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 그런데 대화록을 찬찬히 읽어보면 김정일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소심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유머도 꽤 풍부하고. 또 회담 말미에 울분을 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미가 느껴졌다. 자기 아버지가 벌였던 일 때문에 고통받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 여과없이 쏟아져나온다.

결국 다 사람이다. 대통령과 국방위원장인들 보통사람과의 거리가 얼마나 멀겠나.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은 개체 사이의 차이가 아주 적다. 육체적 정신적 면에서. 그런 것까지 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아주 진지하게 대화록을 읽다보면 국정원의 저 바보같은 대화록 공개사건, 그 어리석은 행동이 새옹지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태그:#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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