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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 의원의 발언

또 터졌다. 역시 한나라당이다. 이번에는 강용석 의원이 대학생들을 상대로 못할 말을 했단다.

"토론할 때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로 구성해야 시선이 집중된다."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
"그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 옆에 사모님(김윤옥 여사)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

이라고 했다나, 어쨌다나.

물론 놀라운 일은 아니다. 어디 한나라당 의원의 성희롱이 한 두 번인가. 다만 이와 같은 발언에 예전과 달리 발 빠르게 움직이는 한나라당의 모습이 신기할 뿐이다. 억울하다고 읊조리는 강용석 의원의 해명은 싹 무시한 채, 당 윤리위원회를 열고 강용석 국회의원의 제명을 전격적으로 결정한 그들. 아무리 7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그만큼 6월 지방선거의 패배를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

어쨌든 강용석 의원의 망언에 관한 정치권의 반응은 대동소이하다. 민주당은 좋은 건수를 건진 듯 한나라당은 '성희롱당'이라며 집중포화를 쏟아내고 있으며, 한나라당 여성의원들은 비록 같은 당 소속이지만 요번에는 너무 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마녀사냥이라도 하듯이 비분강개의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는 그들.

그러나 솔직해지자. 과연 그들에게 강용석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성희롱에 무감각한 권력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사건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 전날까지도 비교적 언론의 큰 조명을 받지 못하던 민주당 소속 이강수 고창군수의 성희롱 의혹이었다.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면 이강수 군수는 계약직 여직원을 불러다 "누드 사진 찍어볼래?"라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군수는 이 사건에 대해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의혹을 부정하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맨 정신에 했다고 볼 수 없을 만큼의 무식한 발언. 그 강도를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이강수 군수는 작정하고 성희롱을 했다기보다는, 이와 같은 발언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법은 바뀌어 성희롱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있지만 실제 사회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희롱을 성희롱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기득권. 어찌 그런 이들이 다른 이들의 성희롱을 비난할 수 있는가.

이는 여성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전현희 의원과 나경원 의원은 강용석 의원의 '(전현희 의원은) 60대 이상 나이 드신 의원들이 밥 한번 먹고 싶어 줄을 설 정도", "여성 의원의 외모는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이 낫다", "(나경원 의원은) 얼굴은 예쁘지만 키가 작아 볼품이 없다"라는 발언에 불쾌함을 드러냈지만, 그들 역시 강의원의 성희롱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어쨌든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 역시 기존 사건들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리를 내세워 성희롱 전력의 우근민 도지사를 받아들이고, 최연희 의원의 성희롱 사건은 또 그냥 그렇게 묻어가고, "예쁜 여자보다는 못생긴 여자를 골라야 서비스가 더 좋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막말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없는 여성 의원들.

성희롱을 하는 사람과 이를 문제화 시키지 않는 사람. 이는 결국 우리 국회의원의 수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기득권의 수준을 이야기 한다. 공식화가 되었으니 오늘과 같은 마녀사냥이 벌어지지, 아마도 대한민국 곳곳에는 이와 같은 성희롱이 버젓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을 것이다. 당장 본 기자가 속한 사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와 같은 부적절한 언사는 술자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성희롱의 본질과 20대

국가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국회의원이 사회 경험을 쌓고 나름 인맥을 쌓기 위해 온 20대 대학생들을 성추행 하고, 나이 지긋한 군수가 자신의 딸쯤 되는 20대 계약직 여직원을 희롱하는 사회.

성희롱은 본질적으로 권력의 전횡이다. 그것은 권력을 지닌 자가 자신의 권력을 무기삼아 힘없는 자를 성적으로 희롱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희롱이 일상화 되어 있는 사회는 그만큼 권력을 지닌 자들이 비열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그 권력을 감시하는 힘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만 있으면 안하무인이 되어버리는 천박한 사회. 특히 기득권의 뻔뻔함은 현 정권 들어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강용석 의원이 20대 대학생을 성희롱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곧 강용석 의원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에게 20대 대학생이 전혀 위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 대학생의 남녀 구분은 필수 불가결하다. 온갖 성희롱이 넓게 포용되는 이 마초적인 사회에서 남학생은 잠재적 공범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여학생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강의원은 문제가 되는 발언을 하면서 남학생보다는 여학생을 의식했을 테지만, 무의식적으로 무시했을 것이다.)

만약 지금의 대학생들이 과거 80년대 운동권과 같은 '깡'을 가지고 있었거나, 정치적으로 큰 이슈를 만들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초선에 지나지 않는 강의원이 감히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그에게 그 자리의 대학생들은 상대하기 아주 쉬운, 힘없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하물며 20대 계약직 여직원이라니 이 군수가 누드를 쉽게 운운할 수밖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지금의 20대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20대들이 고발하고 나서지 않았던가. 20대들이 조금 더 용기를 내기 바란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지금 이와 같은 상황이 그대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비열한 권력을 바꾸는 건 우리들의 힘이다.


태그:#강용석,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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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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