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연기자로 적극적인 정치.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배우 권해효.
 연기자로 적극적인 정치.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배우 권해효.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조반을 생략한 아침이었지만, 결국 2분 늦었다. 안면이 없던 터라 먼저 도착해 노트북을 미리 켜놓고 카페로 들어서는 그에게 눈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인생은 뜻대로 안 된다.

지각생 주제에 부산마저 떨었다. 배터리 부족 운운하며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녔으니 첫 만남, 퍽 불편했을 게다. 그러나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냥 웃었다.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배우 권해효(44)와 첫 만남은 이렇게 어수선하게 시작됐다.

늘 무대에 서는 배우지만 직업인이자 생활인. 생각하는 만큼 실천하는 배우. 최근 소셜테이너(Social-tainer)라는 별칭까지 얻게 된 연기자. 한국여성단체연합과 맺은 9년간의 인연으로 12개 여성인권단체들의 터전 기금 마련을 위해 '연극기부'에 나선 따뜻한 사람. 

"아 글쎄 말이에요. 홍보대사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을!"

순간순간 장난기가 발동했지만 내면의 고민은 퍽 깊었다. 권씨는 한국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 길에 도움이 된다면 작은 실천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육, 여성, 정치 등 발 딛고 선 우리 현실에 대해 기탄없이 자기 의견을 말했다.

사느라 바빠 늘 생각주머니 한켠에 툭 밀어두었던 '행복'이라는 단어도 자주 꺼냈다.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인가,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연구하는 철학자 같았다.

특히 "학교에서 경쟁하는 것만 배우다 졸업한다"거나 "적어도 학교만큼은 아이들이 경쟁보다 나은 것, 돈보다 훌륭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학력신장 같은 허상을 다 없앴으면 좋겠"고, "수업내용을 지금보다 쉽고 편안하게 낮춰서 학교 다니는 순간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한다"는 당부는 동년배 아빠들과 고민이 닮아 있다.

"돈보다 훌륭한 가치가 있다는 걸 배우는 학교"... 안 되나?

최근 빈발하는 아동성폭행 사건과 관련해서도 "과거보다 빈발하는 게 맞느냐, 데이터는 정확한지 묻고 싶다"며 "혹여 과거에도 지금처럼 사건은 많았는데 알려지지 않았거나 묻혔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화학적 거세 논란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범죄자에 대한 계도를 포기하면서 출발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며 "성범죄자들이 좀 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가정과 교육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같이 해야 하는데 그런 문제의식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대중에게 카타르시스가 될지 모르나, 근본적인 성범죄 예방법은 아닐 것이라는 게다. 

또한 그는 최근 <한겨레> 한홍구-서해성 직설파문('놈현 관 장사' 표현문제)에 대해 "<한겨레>가 그런 식의 사과를 하는 것은 처음 봤다"며 "느낌상 과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논점이 데스크가 헤드라인 장사를 했느냐 안 했느냐로 흘러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는 하나 꼭 그렇게 반응 안 해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그 지면이 갖고 있는 형식에 대해 간과한 게 아닌가 싶고, 그것 때문에 상처 받은 지지자들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담대해질 때 우리가 다른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7월치고는 너무 더웠던 5일 아침, 배우 권해효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 12개 여성인권단체들의 터전인 '여성미래센터' 기금마련을 위해 <러브레터(Love Letters)> 연극기부에 나섰다.
"여성연합과 인연 맺은 지도 햇수로 만 8년이 넘었다. 옆에서 보면, 단체 상근활동가들이 힘 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늘 곁에서 후원하고 응원하는 분들도 시민사회 전반이 지쳐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어떻게 하면 신나게 할까 생각하다가.

나에게 대중 집회는 늘 벅찬 공간이었다. 사회 보는 일은 능력 밖의 일이고 힘든 일이었다. 한편으로 대중 집회에 참석하는 가수들이 참 부러웠다. 자기가 제일 잘하는 일로 대중과 소통하고, 노래 딱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갈 때, 참 좋아보였다.

이 연극은 이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여러 도네이션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연극공연은 지난 여성민우회 후원행사가 처음이었을 게다. 내가 즐거운 일, 하면서 행복한 일, (막상 만들어가는 과정은 힘들다^^)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 9년째 여성연합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무급일 텐데, 꾸준히 활동하는 이유가 있나.
"홍보대사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을! 겨레하나 빵공장 사업도 2004년에 시작했으니 여성연합과 거의 비슷한 시점에 시작한 셈이다. 또 독립영화제도 올 겨울에 또 사회를 보게 된다면 10년째 한다. 뭘 하면 오래하게 되는 것 같다."

- 연극 <러브레터>는 어떤 작품인가.
"이 작품은 1996년 한국의 초연무대에 내가 섰던 작품이다. 그때도 아내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번에도 같이 오른다. 아내 조윤희(배우) 이외에 다른 사람은 처음 함께하는데 이번에는 김여진씨가 함께한다.

이 작품은 미국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만나 45년간 친구와 연인으로 지냈지만 결국 결혼으로 함께하지 못하고 45년간 주고받은 편지, 제목 그대로 러브레터다, 그 편지를 무대 위에서 배우가 읽어주는 형식이다. 리딩 씨어터(reading theater). 한국에서는 이런 형태의 공연이 많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색다를 것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도네이션하니 행복해"

12개 여성인권단체들의 터전인 '여성미래센터' 기금마련을 위해 <러브레터(Love Letters)> 연극기부에 나선 배우 권해효.
 12개 여성인권단체들의 터전인 '여성미래센터' 기금마련을 위해 <러브레터(Love Letters)> 연극기부에 나선 배우 권해효.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비싸더라.
"하하. 비싸다. 5만 원. 이번 공연 자체가 새로 출발하는 여성미래센터 기금 마련에 목표가 있기 때문에 높은 가격이 책정돼 있다. 후원해주는 분들에게 후원도 받고, 그에 상응하는 좋은 작품도 보여주면서 뭐랄까…. 좋은 작품을 즐겁게 보고 좋은 일도 했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시도록….^^"

- 고 최진실씨 자녀의 친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친권법이 남녀 모두를 위해 평등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독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은 까닭은.
"우리 사회에 여러 문제가 있지만 따지고 보면 두 가지로 집중되는 것 같다. 교육과 여성 문제.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교육 틀은 일본 식민지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해 지금까지 연계돼오고 있다. 이승만 정권에서 '친일'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우리는 지금까지도 학교에서 제대로 된 근현대사 교육을 받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민주시민의 근간이 되는 시민사회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부재하다. 국민의 권리, 의무, 도대체 그게 뭔지 토론하고 배운 일이 없다. 학교에서 경쟁하는 것만 배우다 졸업한다. 적어도 학교만큼은 아이들이 경쟁보다 나은 것, 돈보다 훌륭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또 하나, 바로 여성문제다. 수십 년, 수백 년 남성 중심이었지만 동등한 투표권을 갖고 있는 여성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여성 자신들을 위해 투표하기 시작하면 정말 많이 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여성연합을 만나기 전에는 잘 모르던 일도 많았다. 같이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다. 그러나 생각은 단순하다."

- 이런 얘기를 집에 가서 하면 뭐라고 하시나.
"너부터 잘해라! 하하하. 집안에서 먼저 잘하고 그 다음에 나서라 뭐 이런 말을 듣곤 한다. 뜨끔할 때가 있다. 그러나, 또 때로 둔해진다."

- 최근 아동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뉴스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상상하기 싫은 불편함이 있다. 또 한 가지는 우리나라 매체가 이런 뉴스를 다루는 행태를 보면, 이야~ 참 기가 막힌다. 언론이 검찰 욕할 수 있나 싶다. 언론이 피해자를 배려하고 있는가. 대안과 처방은 고민하지 않은 채 경찰의 브리핑을 그대로 옮겨주는 나팔수 같다.

또 하나, 아동 성폭력 사건이 과연 과거에 비해 정말 급증했나 하는 점이다. 과거의 데이터는 제대로 갖고 있기는 한 것인지. 과거에도 끝없이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지인에 의해 터졌는데 묻혔고, 지금은 더 드러내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부모들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언론에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 성폭행범의 재범 방지를 위해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한 번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평생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는데…. 이런 방안은 기본적으로 범죄자에 대한 계도를 포기하면서 출발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 사람들이 좀 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가정과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같이 가줘야 하는데 그런 문제의식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화학적 거세, 그냥 보기에는 시원시원하지만 이것이 정말 성폭력 사건을 줄이는 획기적 방안인가 답답한 생각이 든다.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줄지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아닐 것이다."

"서울대를 없애고 서열화를 없애지 않는 한 교육현실 바꾸기 어려워"

배우 권해효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요즘 애들에게 학력 떨어졌다고 손가락질하는데 제발 학력신장 주문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우 권해효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요즘 애들에게 학력 떨어졌다고 손가락질하는데 제발 학력신장 주문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초등 2학년, 6학년 두 자녀를 두고 있다. 경제적으로 '특권학교'에 보낼 수 없는 사람들조차 보수 교육감을 지지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애들 학원은 보내나.
"피아노, 미술. 국영수는 안 한다. 큰아이가 자기 친구 다섯 명과 함께 1주일에 한 번씩 하는 글쓰기 수업에 나간다. 논술? 아니다. 일종의 '독토'(독서토론)다. 그게 다다. 솔직히 교육에 대한 걱정이 많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니 더 그렇다. 부부가 매일 고민한다. 대안학교를 보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100% 우리 아이하고 딱 맞으리란 보장도 없다. 어차피 겪어야 할 현실이라면 그대로 겪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한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얘기해서 내린 결정은 대안학교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학, 남들이 말하는 번듯한 직장도 우리 고민의 몫으로 하지 말자, 학교 다니는 동안 애가 재밌게 놀게 할 것이라면 대안학교 보내자 뭐 이런 거다. 교육은 답이 없다. 강준만 교수의 말대로 서울대를 없애고 서열화를 없애지 않는 한 이 교육현실을 바꾸기는 어렵지 않을까."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뭔가 변화를 보여주지 않겠나.
"하루아침에 학교현장이 변할까. 안타깝게도 정책은 현실이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과 상관없이 초등학교는 어떤 담임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갈린다. 일종의 로또 같다. 좋은 선생님 만나면 1년 해피하고, 아니면 정말 끔찍한 인연이 되는 게다. 그 선생님이 전교조든 아니든 상관은 없는 것 같다.

또 학교에는 교사가 처리해야 할 잡무도 많다. 그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내 생각엔 우선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다. 애들 문제풀이 하는 걸 보면 초등학교 4~5학년이 풀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선행학습 안 하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뒤로 처지는 아이들….

선행학습은 사교육시장을 도와주는 것이지 공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다. 학력신장 같은 허상을 다 없앴으면 좋겠다. 수업내용을 지금보다 훨씬 쉽고 편안하게 낮춰서 적어도 학교 다니는 순간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자기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의 학력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요즘 아이들 책을 보면 놀랍다. 이걸 초등학생이? 솔직히 우리 세대엔 고등학교 때도 수학문제는 단답식이었다. 사지선다, 찍으면 됐다. 또 우린 전두환 덕분에 학원금지-과외금지였다. 시간 '널널했다.' 그 시간에 팝송 듣고 책 읽고 딴짓 했다. 요즘 애들에게 학력 떨어졌다고 손가락질하는데 제발 학력신장 주문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

- 최근 드라마가 뜸한 편인 것 같다. 김제동씨와 같은 이유인가.
"하하. 전혀 아니다. 과거에 비해 드라마를 적게 하는 편이긴 하다. 그런데 그 이유를 개인적으로 따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시기적으로 그런 시기인 것 같기도 하다. 드라마가 됐든 영화 속에서든 배우의 자기 역할이 변하는 시기. 이를테면, 20대 여성연기자가 유부녀가 되고 엄마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볼 수 있겠다.

다행히도 내가 출연했던 작품들이 늘 성공적인 결과를 낳아서 사람들은 내가 많이 출연했던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는 드라마 한 편 찍고 공연하고 그랬다. 물론 정신없이 움직일 때도 있었지만."

코믹연기는 하지만 예능프로에는 안 나가는 까닭

연기자로 적극적인 정치.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배우 권해효.
 연기자로 적극적인 정치.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배우 권해효.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소셜테이너(Social-tainer)라는 별칭이 달려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에 갑자기 그런 말이 많이 생겼는데…. 음… 개념 있는 일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 건가. 하하!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실례되는 말인 것 같아서. 배우는 드라마 속에서 자기가 하는 배역으로 이미지가 남아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소셜테이너 이렇게 불리면 극중 배역과 자연인 권해효가 부딪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에서 내가 어설프거나 엉뚱한 짓을 하면 그냥 하하 웃던 분들도 '멍청하게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 이렇게 되는 상황이 제일 불편한 일이다.

과거에도 특정 후보 선거운동을 하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었다. 물론 그 부분도 일리 있는 말이긴 하나, 내 생각은 이렇다. 정작 뭔가 바꾸기를 원한다면 투표하는 일부터 움직여야 한다는 게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공짜가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약간의 대가와 시간 없이는 잘 안 된다."

- 명품조연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드라마에서 했던 일인데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한국에서 무엇을 규정할 때 상당히 '찌라시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 게 듣기 싫을 뿐이다. 한때는 1990년대 중반 '탈개맨'이라는 말도 들었다. 탤런트+개그맨의 조합인데, 드라마 속에서 재미있는 역할을 할 때 그런 소리를 들었다."

- 코믹연기를 많이 하셨는데 예능프로그램에는 왜 안 나가시나.
"낡은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음… 나는 내가 숨기고 싶은 부분까지 다 꺼내놓고 해야 하는 예능프로그램은 좀 불편하다. 요즘 예능프로그램은 그냥 재밌는 얘기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가 숨기고 싶은 부분까지 다 꺼내놓을 때까지 해야 한다. 그게 불편하지 않은 분들은 예능을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어렵지 않은가 싶다. 예를 들면 내가 중고등학교 때 했던 바보 같은 짓을 꺼내놓는다는 게 나한테는 불편한 거다. 그냥 나만의 이야기로 있으면 되는 건대."

- <전원일기> 양촌리 이장댁의 둘째 아드님이 문화부 장관이 되셨다. 일약 문화권력이 되신 듯한데.
"이전 정권과 비교하면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또 이전정권과 비교해 보면 문화부 장관이라는 자리가 권력처럼 느껴지는 것도 최근 일인 것 같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기능 및 역할 축소 논란)만 보더라도 그렇다. 현장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뭔가 많이 잘못되고 있는 거다.

마치 문화라는 게 조직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고가 문제다. 문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삶이 묻어나는 흔적이 문화다. 엄청난 빌딩을 지어놓고 랜드마크라고 지칭하는 것이 21세기 문화지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돈 들이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게 문화라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유시민 반응 이해는 되지만 꼭 그렇게 안 해도 됐을 텐데"

배우 권해효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노무현 대통령 후보시절 연설을 듣고 감동받은 일이 많았다"고 "멋지게 보이려고 포장한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며 노 전 대통령을 회상했다.
 배우 권해효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노무현 대통령 후보시절 연설을 듣고 감동받은 일이 많았다"고 "멋지게 보이려고 포장한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며 노 전 대통령을 회상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정치 얘기 좀…, 흔히 말하는 '노빠'신가.
"(끄덕끄덕) 나는 '노빠'다. 노사모 회원에 가입한 일도 없지만, 나는 '노빠'다. 참여정부 정책에 반대도 했다. 이라크 파병, 한미FTA 반대했다. 그러나 나는 '노빠'다. 노무현이라는 분에 대해 인간적으로 매료되고 끌린 바가 많아서."

- 인간 노무현,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배우로 살다보니까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할 때 그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다. 저게 머릿속에서 나온 것인지, 짧은 학습과정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긴 고민 속에서 나온 건지 잘 보는 편이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시절 연설을 듣고 있을 때 감동받은 일이 많다. 진짜라는 확신을 많이 갖게 됐다.

정확한 생각, 고민, 그 결과로서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었다. 쉽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멋지게 보이려고 포장한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늘 우리 시대 저런 정치인이 있다는 게 참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많다."

- 최근 <한겨레>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파문을 아시는지. '놈현, 관 장사' 표현이 문제가 돼서 1면에 편집국장 사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한겨레>가 그런 식의 사과를 하는 것은 처음 봤다. 느낌상 과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그 지면 자체가 그런 지면 아닌가. 뭔가 정색하고 얘기했다기보다는 그냥 이야기로 풀어놓은 수준 아니었나 싶다.

그 지면 자체가 한국사회의 당면 문제를 이야기로 풀어놓는 것인데 논점이 어느 순간 데스크가 헤드라인 장사를 했느냐 안 했느냐로 흘러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는 하나 꼭 그렇게 반응 안 해도 됐을 텐데… 생각한다.

어떻게 <한겨레>가 이럴 수 있어? 이럴 수 있다. 그러나 그 지면이 갖고 있는 형식에 대해 간과한 게 아닌가 싶다. 그것 때문에 상처 받은 지지자들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담대해질 때 우리가 그들과 다른 게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이기는 하나, 노 대통령이 살아 계실 때는 얼마나 더 심한 꼴과 상황을 대했나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 진짜로 하고 싶은 사회운동은 야생동물보호운동이라고 얘기했던데.
"하하 아주 오래 전 인터뷰를 보고 오셨네.^^ 생각해 보면 늘 약한 것들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다. 관성적으로 강한 것보다는 약한 걸 보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카리스마, 우리끼리, 파이팅, 의리 이런 거다. 특히 만물의 영장! 이런 말 굉장히 싫어한다. 뭘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건가 싶다. 지금도? 물론 비슷한 생각이다. 그런데 사람이 왜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바빠지기만 하는 걸까. 조급하다고 해야 할까, 점점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연극 <러브레터>는 7월 9일부터 11일까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조계사 경내)에서 4회 공연을 진행합니다.



태그:#권해효, #한홍구-서해성 직설, #한겨레, #노무현, #노빠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