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의 다른 시술을 강제로 당했던 개. 2000년 당시 조희경대표가 한 동물병원에서 촬영한 사진.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의 다른 시술을 강제로 당했던 개. 2000년 당시 조희경대표가 한 동물병원에서 촬영한 사진.
ⓒ 동물자유연대

관련사진보기


"한 동물병원의 지하. 저는 작은 케이지에 갇혀 수의사들에게 외과실습을 당하던 10여 마리의 반려동물들을 보았습니다. 2000년이었죠. 제가 본 하얀색 개 한 마리는 목과 귀를 실습하는 수술을 당했고 일주일 후에는 대각선으로 양 다리를 고의로 부러뜨린 후 수술하는 실습을 당한 채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 길로 저는 펑펑 울며 내 인생의 나머지는 그런 동물을 위해 일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 2010년 2월,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증언

"현재 학부생들에 의해 불임수술이나 골절 수술 등이 행해지고 있으며, 특히 골절수술은 건강한 개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리고 다시 붙이는 잔인한 수술입니다. 또 학생들이 하는 어설픈 수술이기 때문에 마취도중 깨어나 울부짖는 개들도 잊으며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아 상처에서 고름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아무 이유 없이 불임수술(castration)을 위해 배를 갈랐다가 다시 붙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1주일마다 마취하고 깨어나면 1주일 후에 다시 수술하고를 반복하다가 학기가 끝나면 해부실습용으로 안락사에 처해지게 됩니다." - 2009년 3월, 한 수의과 대학생의 증언

동물자유연대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직업상 위와 같은 사례와 제보들을 수없이 접한다. 그러나 상대는 의사, 수의사 등 과학적 지식을 갖춘 전문인들이다. 연구실은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실험실은 항상 외부인들에게 닫혀있다.

동물실험은 과학연구 발전에 꼭 필요한가

동물실험이 과학연구 교육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과 불필요하다는 주장간의 논쟁은 19세기 과학발전 이래 끊임없이 지속돼 왔다.

동물복지에 대한 의생명과학 종사자의 견해를 조사한 분석표에 의하면(최병인, 한국의 생명과학 연구윤리제도의 발전과학에 관한 연구, 건대수의학 박사학위 논문, 2006년 P253) 78.1%의 실험자들이 동물실험에 있어서 동물복지의 원칙(3R)에 대해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3R 원칙 : 동물이용수의 감소(Reduction) 대체실험법의 강구(Replacement) 실험동물에 대한 인도적 배려(Refinement)

실습용개가 살고 있는 케이지의 열악한 환경.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실험동물의 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실험동물시설에 대한 실사 역시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이다.
 실습용개가 살고 있는 케이지의 열악한 환경.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실험동물의 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실험동물시설에 대한 실사 역시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이다.
ⓒ 동물자유연대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이 판단을 연구자에게만 맡긴다면 얼마든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시술자가 개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수술을 하고 그 다음 주에 그 개에게 다른 시술을 한 뒤 과학적으로 어쩔 수 없으며 복지를 최대한 고려했다고 주장한다면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연구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인이 실험과정을 감시, 감독할 수 있도록 한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제도다. 1984년 캐나다에서 실험계획의 사전 승인을 위한 윤리위원회 제도가 마련된 이후 스웨덴, 미국,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 영국 등에서 차례로 이 제도가 도입됐다. 윤리위원회 제도는 동물실험이 법에서 규정한 복지적 조건을 만족시키는지 사전에 승인받도록 함으로써 책임의식을 갖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

따라서 동물실험 윤리위원회에 동물실험 연구원과 수의사뿐 아니라 일반위원, 특히 해당 기관과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위원의 참여가 핵심이다. 자신의 동료나 아는 사람이 일반위원으로 참여할 경우 비윤리적 실험을 방지하기 어렵다. 때문에 각국은 윤리위원회가 실질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동물보호단체의 참여를 명문화하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세계적 추세 '동물실험 윤리위원회' 명문화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발효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 "실험동물의 보호와 윤리적 취급을 위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동물실험시설에는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두어야 한다"(14조)라는 규정이 신설됐다. 동법의 시행령 제6조에서는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할 기관으로 국공립연구기관, 대학연구실, 민간실험실 등 동물실험을 하고 있는 모든 기관을 포함시켰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천여 개가 넘는 기관이 존재하며 연간 500만 마리 이상이 실험에 이용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개정안은 동물실험 윤리위원회의 공정성을 위해 위원회 구성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는데 "해당 동물실험 시설에 종사하지 아니하고 해당 동물실험 시설과 이해관계가 없는 자"(외부위원)를 총 3분의 1 포함해야 하며, 이중 "수의사법 제2조 제1호의 규정에 따른 수의사"와 "대통령령이 정하는 민간단체가 추천하는 동물보호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는 반드시 각각 1인 이상 포함하도록 규정했다.(14조2항)

여기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민간단체'란 시행령 제4조에서 규정한 대로 ▲'민법' 제32조에 따라 설립된 법인으로 동물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영리민간단체 지원법' 제4조에 따라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로서 동물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곳을 의미한다. 즉, 모든 동물실험위원회에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등록된 동물보호 민간단체가 추천하는 위원 한 명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법규정상으로 보면 매우 혁명적인 조항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개정안이 발효되었을 때 실험자들 사이에서 많은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제도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윤리적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정착은 난항을 겪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기관에서 미리 사람을 내정하고 그 사람에 대한 추천을 의뢰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대부분 법적 요건은 맞지만 입맛에 맞는 사람을 추천하기 때문에 윤리적 허점이 보완된다고 보기 어렵다. 이 경우, 동물단체는 행정서류를 대행해 발급해주는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 실제 2008년 법이 실효된 이후 각 동물단체들은 기관으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기도 했다.

또 실험자가 자신의 직장과 같은 계열사의 위원으로 추천받는 경우도 있다. 이 또한 기관명만 다를 뿐, 실질적 이해관계는 같다. 지난 2월 2일 동물자유연대는 한 연구소에 외부위원으로 위촉된 위원이 해당 연구소와 같은 계열사 연구소 직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동물보호법 제14조 2항에 저촉되니 그 위원을 해임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국립수의과학검역원(아래 검역원)과 해당기업에 보냈다.

당시 기업 측은 '추천받을 당시 검역원이 두 개의 연구소가 각각 독립법인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면서도 결국 다른 위원으로 교체하고 다시 추천받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2월 12일, 검역원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소속 동물보호 민간단체 위원 추천 및 위촉절차에 관한 권고사항'을 만들어 동물자유연대와 기업에 발송했다.

"우리원에서 마련한 권고사항을 근거로… OOO 위원은 A연구소와 이해관계가 있는 자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우리원에서는 연구소에 현 동물보호 민간단체 위원인 OOO의 즉각적인 해임을 적극 권고 드리나 상기의 우리원 권고사항이 마련되기 이전 해당 위원이 추천되어 위촉된 상황인 점을 감안하여 기관의 불가피한 상황이 존재하는 경우 해당 위원의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까지 동물보호 민간단체 추천 위원 구성기간을 유예해 드릴 예정입니다."

기업이 다른 위원으로 교체하겠다고 합의했음에도 정부기관이 이를 유예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생체실습용 개.
 생체실습용 개.
ⓒ 동물자유연대

관련사진보기


아직 우리나라 동물실험윤리위는 '폼'일 뿐

동물자유연대는 현재 각 대학의 학부생 실습이 윤리위원회를 통해 제대로 승인받고 있는지 현황을 파악 중이다. 그런데 여러 외부위원들과 인터뷰를 시도한 결과 매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많은 위원들이 서류와 다르게 실제로 실험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든 실험에 대한 서류가 빠짐없이 올라오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증언한 것. 이는 외부 윤리위원이 반드시 심사해야 할 사항과 기준점을 만들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 단순히 과학적 지식만이 아니라 어떤 심사를 해야 실질적인 윤리위원회로 가동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 필요하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제도의 정착이 어려운 것은 법의 미비한 규정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해도 설치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다보니 가장 많은 동물실험을 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 독성과학원조차도 동물실험윤리위원회가 설치되었는지, 운영하고 있다면 외부 위원은 법률에 근거해 추천되었는지 파악할 수 없다. 시행령 6조 3항에 따라 동물실험시설의 장은 매년 위원회의 운영 및 동물실험의 실태에 관한 사항을 다음 연도 2월말까지 농림수산식품부장관에게 통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강제할 방법은 없다. 말하자면 안 해도 그만인 것, 하면 순진하고 정직한 기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강제규정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동물실험이라는 영역 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성공우선주의, 권위주의, 연구 비밀주의, 과학기술만능주의 등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제대로 된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작동으로 과학연구 영역에 새로운 윤리적, 민주주의적 원칙이 세워지고 무분별한 실험을 제어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동물자유연대 회원입니다.



태그:#동물실험, #동물실험윤리위원회, #동물실습, #생명윤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6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물을 위한 행동 Action for Animals(http://www.actionforanimals.or.kr)을 설립하였습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은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감금된 동물(captive animals)의 복지를 위한 국내 최초의 전문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