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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지율 스님이 천주교 수녀들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은 14일 저녁 경남 마산 '수정의 성 트라피스트수녀원'(원장 장요세파)에서 천성산과 낙동강 지키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봉쇄 수도회인 트라피스트수녀원은 바로 앞에 있는 수정만 매립지의 용도변경(주택지→공업용지)과 조선기자재공장(STX) 건립에 반대하며 온갖 활동을 해왔고, 올해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로부터 '제4회 가톨릭환경대상'을 받았다.

 

 

장요세파 원장수녀를 비롯한 수녀들은 수정만의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왔고, 그동안 집회와 1인시위, 단식, 소송 등 활동을 해왔다. 장요세파 원장수녀는 지율 스님의 활동을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고, 지율 스님도 수정만 문제를 언론을 통해 대략 알고 있었다.

 

경북 영덕 '토굴'에서 생활하다 낙동강 답사를 하면서 상주로 거처를 옮긴 지율 스님은 요즘 주말마다 '종교인과 함께하는 1박 2일 낙동강 답사'를 하고 있다. 1박 2일 답사는 지금까지 네 차례 진행했는데, 회룡포 마을부터 상주보까지 걷는 행사다.

 

이날 강연은 지율 스님이 함안보 공사 현장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장요세파 원장수녀가 지율 스님을 초청해 이뤄진 것이다. 지율 스님은 이날 운문사 스님 등과 동행했으며, 이들은 수정만 일대 개발 현장도 둘러보았다.

 

지율 스님이 강연한 장소는 트라피스트수녀원 건물 안인데, '금남의 공간'이다. 강연은 1시간 넘게 진행되었고, 기자는 바깥에서 기다렸다가 강연 내용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지율 스님은 최근 들어 안동·구미·상주 일대 낙동강을 계속 걷고 있다. 낙동강 가까이에서 공사 현장을 보고 기록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날 지율 스님은 수녀들에게 현재 낙동강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장요세파 원장수녀는 "지율 스님이 보여주는 사진을 보니 가슴이 턱턱 막히더라"고 말했다.

 

"시대가 사람을 만들어 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4대강 정비사업을 해야 한다는 입장과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나뉘어) 있다. 그런데 스님은 모든 것을 안으려는 마음이었다. 시대의 신음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시대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요세파 원장수녀는 "수정마을 동네가 이렇게 되면서 마음이 간절해지더라. 탄원서며 항의집회까지, 짧은 시간에 안 해본 것 없이 다했다. 그럴수록 지율 스님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얼마 전 우연히 전화 통화를 했고, 오늘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천성산 문제와 4대강 문제는 같은 맥락"

 

강연 뒤 응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정마을 지키기 활동을 벌여온 주민들도 들어와 앉아 있었다. 지율 스님은 1주일 전 휴대전화를 '장만'했다. 이전까지는 휴대전화 없이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지율 스님은 "지금은 일을 하려고 생각한다. 핸드폰도 (마련한 지) 1주일 정도 됐다. 사실 안 갖고 싶었던 물건이다. 이게 족쇄다. 그런데 일을 하려니 없으면 안 되겠더라"고 말했다.

 

지율 스님은 경북 영덕 '토굴'에서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도롱뇽 소송' 이후 지율 스님은 영덕에서 3년가량 지냈다. 그곳은 산골 마을인데, 주민들과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영덕의 산 생활을 거의 정리했다. 다시는 안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왔다. 그곳을 나오면서 힘든 걸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지 모르는 속에 계속 걸었다. 처음에는 사회운동으로 옮겨갈 생각은 안 했다. 농민회를 비롯해 상주와 영주, 안동 쪽에서 지역 단체들과 인연이 맺어지더라. 공동대책위를 꾸려서 1박 2일 낙동강 순례를 하고 있다. 앞으로 매주 토·일요일 이틀 동안 낙동강 순례를 할 것이다."

 

 

지율 스님은 올해 봄부터 낙동강 전 구간을 걸었다. 강원도 태백에서 시작해 낙동강 하구 을숙도까지 두 발로 걸은 것이다. 지금은 그래도 개발이 덜 된 낙동강 상류라도 지키기 위해 상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명을 살린다'는 생각보다 '생명의 자유'라는 생각을 한다. 저 자신의 자유 같은 것이다. 모든 생명과 함께 자유를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육체적인 피로는 있다. 마음도 힘이 더 든다. 낙동강 강가를 8개월가량 걸었다. 파괴되는 낙동강을 보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제 눈을 빼서라도 보여주고 싶다. 강에서 보고 온 것을 말이다. 현장에 혼자 서 있으면 밀려오는 막연함은 말로 다 못한다. 그동안에는 감성적으로 그것을 느꼈다면 지금은 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지율 스님의 책임감?

 

지율 스님은 '4대강 정비사업'을 '대운하 사업'이라 보고 있다. 운하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자료를 살펴보았다고 한다. 고속열차를 달리게 하기 위해 뚫은 천성산과 운하를 위한 4대강사업이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다.

 

"운하 이야기가 처음 나올 때부터 들여다봤다. 운하를 하자는 사람도, 운하를 하지 말자는 사람도 꼭 천성산을 거론하더라. 어떤 이는 천성산 때문에 2조 원을 날렸다고까지 했다. 양측 모두 저를 거론했다. 천성산 문제를 잘 풀면 운하 문제도 잘 풀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운하 문제를 계속 들여다보았고 자료도 많이 갖고 있다."

 

지율 스님은 4대강 정비사업을 막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책임감'으로 설명했다.

 

"부모가 병상에 있던 자기 자식을 땅에 묻고 돌아왔어도 묻고 왔다고 못하는 것과 같다. 천성산은 터널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니까 느끼지 못했는데, 강은 다르다. 강에서 베어간 나무, 그 나무가 쌓이는 광경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독일 통일과 코스타리카의 자연보전 사례를 보면 안다.

 

독일 베를린 장벽은 '오보'에 의해 무너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국민들의 마음속에 통일의 염원이 없었다면 그날 밤 국민들은 망치를 들고 장벽으로 뛰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오보라도 말이다. 꿈을 키우면 결실은 있다. 코스타리카는 30년 전만 해도 국토의 70%가 파괴된 상태였다. 아름다운 국토가 커피 농장으로 파괴된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더 이상 파괴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지금은 생물 다양성 1위의 나라가 되었다. 남한보다 작은 나라인데 성공한 사례다."

 

수정만 매립지와 관련한 갈등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더니 '같은 아픔'이라 대답했다.

 

"평소 언론을 통해 대충 알고 있었다. 수정마을만의 단일 사안은 아니다. 낙동강도 마찬가지다. 뒷사람들은 이전 모습을 모른다. 뒷사람들은 지금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자연인 줄 알 것이다. 매립되기 전의 모습을 모르고, 매립된 뒤 모습을 보면서 원래 이랬겠구나 생각할 것이다. 낙동강 답사를 8개월 동안 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도 나중에 그 결과를 갖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사는 곳의 모습이 이렇게 변해갈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했고 뒷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정부는 작년 12월부터 한번도 공사를 멈춘 적이 없다"

 

지율 스님은 '함안보' 공사 현장과 '상주보'를 비롯해 4대강 정비사업 공사현장을 둘러보았다.

 

"함안보 이야기를 들었고 가보기도 했다. 정부는 작년 12월부터 한번도 공사를 중지한 적이 없다. 올봄까지만 해도 다들 4대강 정비사업이라고 했지, 운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 달 보름 동안 낙동강을 걷고 나서 운하 반대를 외쳤던 서울대 교수를 찾아갔다. 낙동강에서 벌어지는 공사 현장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처음에는 믿지 않더라. 정부가 운하를 포기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얼마 전 함안보 기공식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공사를 해왔다. 이미 지난 4월 함안보를 위해 도로를 내고 축대를 쌓는 작업을 해왔다. 지금 4대강 정비사업 하면서 내세운 생태공원이며 승마장, 자전거도로 같은 것은 '꽃단장'이다. 낙동강 주변에 어마어마한 부지가 조성되고 있다. 강을 6m 안팎으로 파내서 모래를 옮겨 놓은 자리는 완전히 공터다. 그 땅은 농지로 전용될 것이라고 하나 다른 용도로 전용될지도 모른다. 정부며 기업이며 그런 땅을 농지로 하겠느냐. 뭐가 될지 모른다. 그런 문제에 대해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 문제와 관련해 <조선일보>를 상대로 '10원 소송'을 내 승소했다. 그 뒤에 조선일보사로부터 10원도 받았다.

 

"잘 해결됐다. 그 뒤에 어느 언론사에서 전화가 왔더라. 소감을 물어 보는데 대답하지 않았다. 이긴 사람이 말하는 것은 같이 싸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만약에 졌으면 말을 했을 것이다, 인터뷰가 필요하면 <조선일보>에 가서 하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힘이 같이 간다. 이 사회가 가지는 두 개의 힘 중에 하나는 선이고 다른 하나는 악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물론 상대는 밉다. (그렇지만) 한배에서 나온 형제도 싸우고, 한 이부자리에 있는 부부도 싸운다. 선·악으로 가려서는 안 된다."

 

"한 번도, 한순간도 이것이 절대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 만약에 그 일이 벽처럼 느껴졌다면, 긴 시간을 거리에서 자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고 느꼈기에 지금도 일하고 있는 것이다."

 

"용어부터 부드럽게 쓰자"

 

지율 스님은 "이명박 정부는 저를 끊임없이 공부시키고 강으로 오게 했다"면서 "강의 소리를 전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일을 했고, 우리도 그 일을 되돌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끝장내자는 선택은 아니다. 우리가 하든 정부가 하든, 언제든 물길처럼 해야 한다. 물은 많은 장애를 갖고도 흐른다. 굽이를 갖고, 여울을 갖고도 흐른다. 물은 거부하는 게 없다. 그 흐름은 끝이 없다. 악한 감정과 분노를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지율 스님은 4대강 정비사업 반대 측에서 쓰는 용어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요즘, 저분들이 쓰는 용어는 너무 좋다. 말하자면 '녹색개발'이니 '친환경적 개발'이니 한다. 믿거나 안 믿거나 그런 말을 쓴다. 그런데 우리가 더 거친 말을 쓴다. '삽질을 멈춰라'는 말과 같이. 우리가 더 고운 말을 써야 하는데 말이다. 저쪽은 내용과 다르게 그런 말들을 쓴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언어를 좀 더 순화시키는 것이다. '녹색개발'이 싫어도 '삽질을 멈춰라'와 같은 말은 우리한테 어울리지 않는다."

 

지율 스님이 요즘 낙동강 걷기를 하면서 만든 홈페이지 이름은 '1박 2일 낙동강 숨결 느끼기'다. 이에 대해 지율 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병상에 있는 환자들은 숨이 거칠다. 같이 걸으며 숨결을 같이 느끼자는 것이다. 모성적인 힘을 좀 더 갖자는 것이다. 이전(천성산 문제)에는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보고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때는 위를 보고 했는데, 힘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농민들하고 하니까 너무 좋다. 농민들과 같이 호흡하고, 이웃과 같이하니까 좋다. 지금은 농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고 그냥 같이하고 있다."

 


태그:#지율 스님, #트라피스트수녀원, #장요세파 수녀, #천성산 지킴이, #4대강 정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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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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