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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도곡동 고층아파트 밀집지역.(자료사진)
 서울 강남구 도곡동 고층아파트 밀집지역.(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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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아무도 장담 못하지. 법원 경매로 나온 강남권 아파트의 경우는 처음 감정가보다 많게는 10억 가까이 떨어지고 있다는데, 거기에 돈을 대준 은행들은 몇억씩 손해를 봤을 거야…."

1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서 만난 한 시중은행 대출담당 임원의 말이다. 그에게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같은 금융위기가 일어날 수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다.

그는 "이번 미국발(發) 금융쇼크는 경기 침체기로 들어간 우리 경제 입장에선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은행들은 돈줄을 더 조이고 금리도 올라가는 추세인데, 앞으로 대출이자를 못 내는 사람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원금과 이자 부담을 느낀 대출자들이 집을 싸게 내놓고, 이는 다시 집값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금융권 부실도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이미 금융권에 널리 퍼져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는 당장 불거지지 않았을 뿐, 사실상 현재진행 중인 셈이다.

주택담보대출 연체 → 담보주택가격 하락 → 금융기관 부실

물론 정부는 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금융위기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집값의 60% 이상 대출을 하지 않는 등 금융 규제를 해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 2007년 이전에 정부 금융규제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 집을 샀던 대출자들이 원금과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집값 폭등 시기였던 2006년 전후로 나갔던 주택담보 대출 규모가 55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식 금융위기 가능성에 정부가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자칫 늑장 대응하거나 시기를 놓칠 경우, 진짜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를 금융공황으로 몰아넣은 것은 무엇보다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부실이다. 문제는 이 같은 주택담보 부실 조짐이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경매시장. 지난 11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경매법정에 매물로 나온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타워팰리스(전용면적 165㎡)의 최초 감정가는 28억원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사려는 사람이 없다 보니 두 번에 걸쳐 유찰이 됐고, 최종 16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감정가격의 66% 수준이다.

또 전용면적이 158.7㎡인 송파구 문정동의 올림픽훼밀리타운의 한 아파트 역시 첫 감정가 16억원에서 6억원이나 떨어진 10억2550만원에 낙찰됐다. 분당 새도시의 고급아파트들도 당초 감정가보다 적게는 5억~6억원에서 많게는 10억 가까이 떨어진 값에 낙찰됐다.

A은행의 대출담당 임원인 김아무개씨는 "경매에서 낙찰된 금액을 현 시세로 그대로 인정하긴 어렵다고 하더라도 현재 부동산 시장 값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면서 "만약 이 수준으로 (부동산) 시장가격이 떨어질 경우 대출자뿐 아니라 금융기관도 상당 부분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 경매로 형성된 값으로만 따지면 서울 강남 등 버블세븐지역의 아파트 값엔 30% 정도의 거품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정부 "주택담보비율 50%도 안 돼"... 2007년 3월 전에 빌렸으면?

게다가 이 같은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꺼지게 될 경우, 과거 집값 폭등시기에 돈을 빌려 집을 샀던 대출자들의 원금 상환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정부는 그동안 대출규제 등으로 금융부실이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입장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17일 국회에 나와 "우리는 (주택)담보 비율이 50%가 채 안 돼 미국처럼 급하게 (금융부실이) 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지난 2007년 3월부터 총부채상환비율(DTI:Debt To Income)에 따라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DTI란 대출자의 월소득에 따라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갈 수 있는 능력을 따지는 것으로, 대개 연봉의 40%까지만 적용돼 왔다.

문제는 DTI가 적용되기 이전에 나간 주택담보대출 규모와 상환시기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지난 2006년말 기준으로 이미 주택담보 대출로 217조원이 나간 상태였다. 특히 이 가운데 만기가 1~3년짜리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38조6000억원이고, 3~5년이하인 담보대출 규모는 16조1000억원이다. 5년 이하 단기 주택담보대출규모만 54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들 대출의 상당규모는 집값 폭등기인 지난 2006년 전후로 이뤄졌으며, 은행과 제2 금융권 등에선 집값의 거의 100%까지 돈을 빌려줬다.

이규복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대출규제를 하기 이전에 나간 주택담보대출의 원금과 이자상환이 본격적으로 돌아올 예정"이라며 "최근 경기침체와 맞물려 집값하락이 계속될 경우 대출자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판 서브프라임은 이제 시작... 정부, 면밀히 검토중

실제 이 연구위원 말대로 서울 강남권을 비롯해 경기도 분당 신도시, 과천 등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의 아파트 값은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2년 전인 지난 2006년 10월에 비해 이들 지역의 아파트값은 거의 20% 가까이 떨어졌다. 일부에선 앞으로 더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하다. 게다가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금융권의 유동성 위기가 가시지 않고 있고, 대출금리도 오르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산 사람들 입장에선 원금상환에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정부에선 이들 대출자들에 대한 심사를 통해 대출금 상환을 연장해주거나, 다른 대출로 옮겨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다른 대출로 갈아타더라도, 현재 담보대출 금리가 10%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불씨를 안고 가는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최근 경기침체와 함께 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고,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부동산 시장이 더욱 위축될 수 있다"면서 "이럴 경우 주택가격의 추가 하락 가능성도 있으며, 이는 주택담보대출과 금융권의 동반부실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위원도 "최근 가계부채가 크게 증가하고, 금리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도 함께 늘고 있다"면서 "여기에 주택담보대출의 거치기간이 끝나기 시작하면서 원금 상환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문위원은 "이 때문에 가계의 30% 정도가 이미 적자 살림을 하고 있고, 금융권도 가계대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금융부실이 더 커지기 전에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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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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