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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24일.

<오마이뉴스>가 오늘로 광화문 시대를 접습니다. 내일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Digital Media City)로 이사 갑니다.

 

우리는 광화문에서 <오마이뉴스>를 낳았습니다. 2000년 2월 22일 오후 2시22분. 정확히 말하면 광화문 뒷골목(내수동)에서 기쁜 진통 끝에 <오마이뉴스>를 출산했습니다. 4명의 상근기자와 727명의 시민기자가 저널리즘의 새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우리가 창간의 터전을 광화문 뒷골목에 잡은 것은 여러 가지 꿈이 있어서였습니다.

우선 조중동 등 전통적인 신문들, 우리의 극복대상이 광화문 근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그들을 보면서 우리의 꿈을 키워나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8:2의 구도인 세상을 5:5로 바꿔보겠다는 것이 우리의 꿈이었습니다. 우리의 무기인 시민참여저널리즘을 통해.

 

광화문을 선택한 것은 또 다른 상징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화문은 해방의 광장이요, 민주의 광장이요, 참여의 광장입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광화문의 함성을, 그리고 그 함성을 고스란히 담았던 <오마이뉴스>의 공간을. 그곳에 뿌려졌던 시민기자, 독자 여러분들의 박수와 눈물과 분노와 채찍을.

지난 8년간 광화문과 함께 한 <오마이뉴스>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참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민기자 6만명, 상근직원 80명이 되었습니다. 세계가 우리의 모델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건대 지난 8년간 우리는 매일 1백미터 달리기를 해왔습니다. 뒤도 옆도 바라볼 겨를도 없이 뛰었습니다.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오마이뉴스>를 지속가능한 시민참여저널리즘 모델로 만들기 위해 우리의 보폭, 호흡, 시선을 더 효과적으로 재정비할 때가 되었습니다. 1백미터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 대열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제 우리는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제1사무실)와 강화도 오마이스쿨(제2사무실)을 양 날개로 창간 편집철학인 '열린 진보'를 실현하기 위한 마라톤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오마이뉴스> 제2기를 시작하려합니다.

 

디지털미디어시티는 쓰레기더미였던 난지도를 조성해 탄생한 공간입니다. 강화도 오마이스쿨은 폐교였던 초등학교를 되살려 만든 시민기자학교입니다. 두 곳 모두 버려진 곳, 가장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 최악의 조건에서 새로운 꿈을 만들어내고 있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입니다.

 

최근 역사는 과연 발전하는 것인가를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절망도 때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멀리는 아니더라도 근현대사를 되돌아봅시다. 역사는 우리의 피땀에 의해 조금씩 전진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겁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여러분의 가슴이 살아있는 한.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시민기자 여러분. 새로운 대안의 사다리를 엮어가며 뚜벅뚜벅 함께 걸어갑시다. 그리하여 마라톤에서 승리합시다. <오마이뉴스>는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와 강화도 시민기자학교를 양 날개로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뛰겠습니다. 지난 8년처럼 사랑과 채찍으로 동참해주십시오.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오연호 2007년 12월 24일

광화문시대를 접으며, 상암동-강화도 시대를 열며.

 

 
 

태그:#오마이뉴스, #상암동,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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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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