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교육계를 강타했던 '역사교과서 전쟁'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2일 법원은 "저자 동의 없이 교과서를 수정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부장판사 이성철)는 이날 역사교과서 저자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51) 등 5명이 금성출판사와 한국검정교과서를 상대로 낸 저작인격권침해 정지 청구 소송에서 "저자 동의 없이 임의로 수정된 금성출판사의 역사교과서 발행 판매 및 배포를 중단하고 저자 5명에 각 4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김한종 교수 등이 집필한 역사교과서 <한국근현대사>는 그동안 '논란의 핵'이었다. 전국 1547개 학교 중 54.4%가 채택한 인기 교과서였지만 이명박 정부 집권 후 사정이 달라졌다.

 

MB정부 집권 후 시작된 '역사교과서 전쟁'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는 이 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집요한 공격을 가했고 이에 발맞춰 각 지역 교육청은 지난해 일선 학교에 교과서 교체를 독려했다. 이 과정에서 관련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교과서를 바꾼 대부분의 학교들은 '학기 시작 6개월 전까지'라는 주문시한을 지키지 않거나 초중등교육법이 정한 학교 운영위원회 심의도 거치지 않았다.

 

게다가 교육과학기술부는 교과서 내용 수정 지시를 내려 저자 동의 없이 가위질을 자행했다. 특히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모두 73곳이 수정됐다. 이는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보다 최고 다섯 배가량 많은 분량이었다.

 

이념 전쟁이 되어버린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법정으로까지 번졌다. 저자들은 지난 해 12월 출판사를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자 교과서 수정 금지 본안 소송을 청구했다. 결국 긴 공방 끝에 법원은 1차적으로 저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판이 끝난 후 김한종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먼저 "학문의 자유와 교과서의 자율성을 지켜준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그는 "교과서라 하더라도 저자의 동의 없이 정부가 맘대로 고치는 것은 안 된다는 상식이 재확인된 것"이라며 "앞으로 저자의 학문적 양심이 아니라 정치적 고려에 따라 교과서가 바뀌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좌편향' 공격을 주도한 보수단체에 대해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제발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놓고 자신들의 정치적 관점을 관철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정치적 고려에 따라 혹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내용이 바뀐다면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의 중립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김 교수 등 저자들은 저작권 침해 소송과는 별개로 '교과부의 수정지시가 위법하다'며 행정소송도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재판 초기이긴 하지만 이번 판결이 행정소송에도 유리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오늘 판결이 교과서의 수정은 저자의 학문적 양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라고 본다면 행정소송에서도 저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한종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내년부터는 재수정된 교과서 배포되어야"

 

- 이번 판결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재판부는 '교과서 수정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학문의 자유와 교과서의 자율성을 지켜줬다고 생각한다. 교과서라 하더라도 엄연히 저자가 있고 수정을 하려면 저자의 동의가 있어야지 정부 맘대로 고치는 것은 안 된다는 상식이 재확인된 것이다. 앞으로 정치적 고려에 따라 교과서가 바뀌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 그렇다면 임의로 수정된 교과서는 재수정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법원은 저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수정된 교과서의 발행 및 배포를 중단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수정된 교과서가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이미 배포된 교과서에 대해서 사용중지 요구를 한다면 교사들이나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것 같다. 올해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내년부터는 임의로 수정된 부분이 저자의 의사에 따라 재수정돼서 교과서가 발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재수정 작업은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가.

"교과부 권고 이전에도 발행된 교과서에 대해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보고 통상적인 수정작업을 계속해 왔다. 심지어 뉴라이트 단체가 주장한 내용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였다. 그리고 교과부에서 수정 권고안을 보내왔을 때 무조건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권고안 중 받아들일 부분들은 수용해서 저자들의 수정의견을 다시 올렸다. 하지만 교과부는 무시했다. 재수정 작업을 한다면 그때 교과부에 제시한 수정의견을 기초로 다시 저자들과 협의하고 새 수정안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 뉴라이트 같은 보수단체들의 반발 등 교과서 재수정 작업에 난항이 예상된다.

"제발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놓고 자신들의 정치적 관점을 관철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사를 보는 데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다. 다만 자신의 관점과 다르다고 해서 교과서를 자기의 역사관에 맞게 고치려고 하거나 없애려고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정치적 고려에 따라 혹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내용이 바뀐다면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의 중립성은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교과서 체제는 '국정 교과서'가 아니라 '검정 교과서' 체제다.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교과서에 정치적 관점 관철시키려고 해서는 안 돼"

 

- 지난해 12월 교과부의 수정방침에 반발해 저작권침해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기각을 당했다.

"기각은 당했지만 법원은 교과서라 하더라도 저자들이 저작권을 가지고 있고 저자들의 저작권을 무시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다만 출판사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제출한 동의서, 즉 '교과부 장관의 수정 개편 지시가 있을 때에는 작업을 완료할 수 있도록 원고를 인도해야 한다'는 내용을 들어 기각을 한 것이다."

 

- 이후 교과부를 상대로 '수정지시를 취소하라'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는데.

"저작권 침해 가처분 신청은 출판사를 상대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의 시발점은 교과부의 부당한 교과서 수정지시라고 봤다. 출판사가 저자 동의 없이 교과서를 수정한 것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교과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출판사는 경영상의 이유 등을 들어 어쩔 수 없이 수정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과부를 상대로 수정지시 취소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 교과부의 수정지시가 위법이라는 이야기인데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교과부의 수정지시는 권한을 넘어선 것이다.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보면

교과부 장관은 수정을 할 필요가 있을 때 수정을 명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수정을 명하려면 교과서 내용에 문제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는 정당하게 검정을 통과해 아무런 문제 없이 사용돼 왔다. 다만 정권이 바뀌고 뉴라이트와 일부 경제 단체들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 왔을 뿐이다. 이 문제를 법정에서 다툴 것이다."

 

- 이번 판결로 행정소송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는 시각도 있다.

"지금까지 4차례 심리가 열렸다. 재판부가 판단하겠지만 임의로 수정된 내용에 문제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따져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 번의 심리가 필요할 것 같다. 오늘 법원 판결은 교과서 수정은 저자의 학문적 양심이나 교육적 고려에 따라 이루어져야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이해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행정소송에서도 저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태그:#김한종, #역사교과서, #금성출판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