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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 외국인이 기사 썼네?" 편집국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의 시선으로는 기사 거리가 안 되는 것들이, 그들의 눈에는 기사거리가 됩니다. 그 기사를 읽은 편집자와 독자는 치부를 들킨 듯, 얼굴이 화끈거려집니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무릎을 치기도 합니다. 한국 속의 외국인 시민기자들, 그들을 만나봤습니다. [편집자말]
마티아스 슈페히트의 개인블로그.
 마티아스 슈페히트의 개인블로그.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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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들 좋아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알게 된 모든 남자들에게서 이 질문을 듣는다. 일단 잘 모르는 사람이 물어보기엔 좀 개인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대답하기가 좀 난처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자,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아뇨, 한국 여자들 다 싫어요!"라고 한다면 어떤 대화도 그걸로 끝나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당근이죠, 한국여자들 너무 좋아요!"라고 하면 그것도 아주 이상하고 어색하다.

그래서 나는 보통 "그럼요, 다른 나라 여자들보다 더 좋아요…"등으로 대답하곤 한다. 나도 모호하다는 건 알지만 뭐라 달리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흥미롭게도 그 뒤에 "그럼 여자친구 있어요?" 등의 질문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건 좀 덜 흥미로운가 보다. 한국남자들이 어떤 자부심을 갖고 "한국 여자들 진짜 예쁘지, 사실 최고야, 맞지?"란 말을 하고 싶어 그렇게 묻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한국여자 좋아해요?"이런 거 묻지 말아 주세요> 중에서

독일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마티아스 슈페히트(27)씨를 만나러 가기 전, '밑취재'를 위해 지금까지 그가 쓴 기사를 읽어보면서 든 생각은 '까칠하다'였다. TV에 나오는 외국인들이 한결같이 '한국 좋아요', '한국음식 맛있어요', '한국여자(혹은 남자) 좋아요'와 같은 달콤한 말만 늘어놓는 것과 달리 그의 기사에는 한국, 한국인에 대한 쓴소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기사에는 종종 논쟁적인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본 한 공익광고에 대해 비판한 글에는 22개의 댓글이 달렸다.

지난 19일 저녁, 인터뷰하기로 한 시각에 딱 맞춰 약속장소인 신촌의 한 카페에 나타난 그는 기사에서처럼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그러나 조리있게 이야기했다. 특히 한국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독자들, 그리고 한국의 교육에 관해 말할 때 그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그러나 쓴소리도 애정이 있어야 하는 법. 12년 전 한국인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그는 그후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을 방문했고, 결국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 와서 사업을 하고 있다. 슈페히트씨는 유년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 한국이 자신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 모든 걸 좋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독일인 시민기자 마티아스 슈페히트
 독일인 시민기자 마티아스 슈페히트
ⓒ 마티아스 슈페히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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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는 어떻게 알게 됐나.
"한국에 사는 외국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쓴 후, 많은 미디어 프로그램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고 싶어 게시판 같은 곳에 글을 남겼고,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전화로 '기자회원으로 가입해서 글을 쓰면 된다'고 알려줬다."

- 블로그와 <오마이뉴스>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블로그는 9개월, <오마이뉴스>는 7개월 정도 된 것 같다."

- 기사를 쓰면 번역은 누가 하나.
"번역은, 내가 한국어로 쓰면 처음엔 친구들이 도와줬고 현재는 회사에서 통역을 담당하고 있는 분이 봐준다."

- 블로그는 왜 시작하게 됐나.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업가로서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또 현재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여러 가지 심각한 주제에 대한 내 의견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싶었다."

- 라디오에 출연하고 있다고 들었다.
"TBS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코너가 있는데, 한국에 와서 적응하려고 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처음 오면 어떤 걸 알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코너다. 3월부터 하고 있는데 재미있다."

- 혹시 TV 출연도 하나.
"제안이 있었지만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하지 않았다. 외국인들이 나오는 미디어 프로그램의 문제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여자들 나오는 어떤 TV 쇼는…."

- <미녀들의 수다>를 말하는 건가.
"맞다. 난 그 쇼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동물원 같다. 외국인 데려다 놓고 한국말 시키고, 그들의 억양을 듣고 웃고, 김치 먹을 수 있냐고 묻고. 웃기다. 내게 그런 건 마치 10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난 유러피안이고 유럽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섞여 있다. 그런 쇼가 나에겐 당황스럽다." 

- 쓴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뭔가.
"내가 좋아하는 기사와 독자들이 좋아하는 기사가 다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 기사는 유감스럽게도 방금 말한 TV 쇼와 비슷하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에 기초하는, 예를 들어 내가 외국인이고 한국음식을 먹었는데 '김치, 스파이시!, 산낙지, 우!, 보신탕, 오마이갓!' 이런 글을 좋아한다. 하지만 난 여러 나라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이탈리아에 가서 이 음식 뭐야, 미국에 가서 이 음식 어때 하는 건 너무 지루하다.

내가 정말로 관심 있는 건 더 진지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 혹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일에 대한 건데 이렇게 심각하고 비판적인 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건 단지 (한국에 대한) 내 의견일 뿐인데 내가 좋지 않다고 하면 싫어한다. 그런 반응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글을 그만 쓰고 싶을 때도 있다."

- 기사를 쓸 때 압박감 같은 걸 느끼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사를 써야겠다는.
"반반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쓰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거짓말을 하긴 싫기도 하다. 진짜 내 의견을 쓰고 싶다. 한국에 대해 모든 걸 좋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러려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한국은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다. 무조건 좋거나 무조건 나쁜 건 없다."

-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나?
"아주 좋았던 댓글들 중 하나는 부모와 자녀에 관한 글에서, 어떤 아이의 엄마가 내 글을 읽고 '매우 감동받았다'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는 글이었다. 부정적인 댓글은, 한국에 대해 뭔가 비판을 하면 많이 달린다. 한국인들이 너무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하면 '넌 한국인이 아니니까 이야기할 자격이 없어. 너희 나라에도 그런 문제가 있어. 넌 말하면 안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보 같은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나라에는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한국 '경쟁'은 치열한데 '경쟁력'은 없다"

댓글이 22개나 달린 마티아스 슈페히트씨의 공익광고 비판 기사.
 댓글이 22개나 달린 마티아스 슈페히트씨의 공익광고 비판 기사.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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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처음 온 건 언제인가.
"12년 전에 처음 왔다. 15살 때 기숙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내 룸메이트가 한국인이었다. 여름방학 때 친구랑 함께 한국에 온 이후로 매년 왔다."

- 연세대로 MBA를 왔다가 계속 남기로 한 이유가 뭔가.
"질문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왜 내가 한국으로 MBA를 오게 됐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한국에서 MBA를 나오면 한국 밖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난 이미 내가 여기에 머무르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 왜?
"그렇게 묻는 게 맞다. 난 경영학을 전공했고 독일의 다국적 회사에서 일했고 프랑스와 일본에서도 일했다. 난 그러한 국제적 라이프 스타일을 좋아했고 내 일도 좋아했다. 하지만 늘 한국이 그리웠다. 나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 한국과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의 길만 있는 삶, 일만 하는 삶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 오기로 했다."

- 하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많은 압박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들은 한국이 싫다고 한다. 
"아마 이 이야기는 밤새 해도 모자랄 것이다. 교육문제는 내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분야다. 먼저, 선진국 어디를 가든지 젊은이들은 압박감 속에 살아간다. 뉴욕에서도 직업을 구하는 건 어렵고 압박이 크다. 압박감은 직업시장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온다. 만약 내 부모님이 내게 학원에 가라고 한다면 그건 압박이다.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지만 현명하게 공부하지 못한다. 한국인 선생님과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지 않고 처벌하려고만 한다.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학원에 데려간다. 그럼 누가 공부에 관심을 가지려 하겠나.

10살짜리 아이한테 네 꿈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내 가장 큰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라며 카이스트에 갈 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너 카이스트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니 아빠에게 들었다고 하더라. 한국사람 모두가 대학에 간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대학에 간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 압박과 경쟁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거다. 그래서 한국은 경쟁은 치열한데 경쟁력은 없다."

- 20대인데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적 압박감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막는다. 미국에서는 만약 실패해도 두 번째 기회가 있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대학졸업 후에 뭐 할거냐고 물으면 직업을 구해야겠다고 한다. 사업을 하려면 돈이 없고 만약 실패하면 그 누구도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MBA친구들에게 졸업하기 전에 어떤 직업을 구하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대부분이 '안전한 직업을 원한다'고 말했다. 재미보다는 안전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김치도 직접 만들어... "한국은 내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 



- 여러 나라에서 살아봤다고 했는데 어떤 나라에 살아봤나.

"1년 넘게 산 나라는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한국 5개 국가다."

- 12년 동안 한국을 지켜봐 왔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다.  
"큰 변화가 있었다.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땐 다른 외국인은 볼 수 없었다. 내가 길거리를 다니면 사람들이 날 가르키면서 모두 '하이', '헬로' 그랬다. 그리고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너 미국인이지?'라고 물었는데 이제는 프랑스, 러시아,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좀 더 다양해졌다." 

- 외국인이 살기에 좀 더 편해졌다고 생각하나.
"내가 막 한국에 왔다고 생각한다면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모든 게 복잡하다. 특히 버스. 처음 5년 동안은 버스를 안 탔다. 버스 타고 가다가 내릴 정거장을 놓치고. 한국어를 하지 않는 이상엔 별로 편해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비자 인터뷰를 가도 영어를 못하는 직원들이 한국말로만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지하철을 타면 모든 사람들이 날 쳐다본다."

-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만들기도 하나.
"한국음식 잘 만든다. 부모님께 비빔밥도 만들어 드렸다. 다양한 종류의 김치도 만든다."

- 김치를 만든다고?
"대형서점에서 요리책을 사서, 사전 찾아가면서 만들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양념 만들어 넣고. 처음 만들 때는 망치기도 했지만."

- 가장 자신있는 음식은.
"다양한 종류의 비빔밥이 자신 있다. 개인적으로 고추장의 맛을 좋아한다. 그래서 고추장을 이용한 음식을 많이 만든다. 제육, 불고기 등등."

- 한국인인 나도 잘 못 만드는데, 신기하다.  
"재미있는 게, 많은 한국인 친구들이 그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이 (한국요리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다."    

- 한국에서 계속 살 생각인가.
"적어도 5년 이상은 살 것 같다. 한국을 영원히 떠난다 해도 한국에는 내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아이가 생기면 함께 올 것이다. 아이들이 한국을 볼 수 있도록, 한국음식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한국은 나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태그:#마티아스 슈페히트, #외국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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