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정00 조회수 348 게시일 2008-09-17 오전 2:47:33
제목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1. Yesterday
저는 '중간평가'를 제안했습니다. 물론 언론특보 출신 인사가 사장이 된 방송국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길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했습니다. 공정방송이라는 가치를 한 점의 양보없이 쫓아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희생과 눈물을 담보해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건 아니다' 싶은 일들이 후배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성적 판단 이전에 감정적 반응을 하도록 몰아가고 있습니다. 대화가 잠시 교착상태에 빠졌다고 참을성 없는 부팀장 인사와 사원인사가 강행됐습니다. 회사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던 선후배들이 고발됐고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눈 동료들이 고발됐습니다. 노조의 대열에 앞장서지는 못해도 양심상 따라가기만 했던 사람들까지도 인사명령 거부로 징계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건 아닙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 사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반발을 불러올 뿐이고 침묵하는 다수의 이성을 빼앗고 자극하는 행동일 뿐입니다.
2. Tomorrow
'질서'와 '정의' 최근 호흡조차 곤란한 보도국에 들어설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양립하면 가장 이상적인 두 단어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두 가치들이 현실 속에서는 어떻게 변형되고 왜곡되는지 마흔을 넘긴 이제 서야 조금씩 느껴가고 있습니다. 정의가 없는 질서는 무의미하지만 질서가 없는 정의도 공허합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목표를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공정방송이라는 정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언론사로서 시청자의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조중동'은 포지셔닝을 이미 한 조직입니다. 확실한 보수 독자층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막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어리고 약한 조직입니다. 또한 논조보다는 팩트를 위주로 24시간 쉼 없이 가동돼야 할 채널입니다. 이런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돌아올 비난의 쓰나미 앞에 버텨낼 자생력도 없고 지원군도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이 내가 희생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후배들의 용기를 선배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상처투성인 이 조직을 다시 정비하는 것입니다. 선후배간의 반목과 단절은 도를 넘고 있습니다. 14년간 지켜왔지만 한순간에 찟겨질대로 찟겨지고 갈라질 대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외부에서 시작된 위기가 이제는 내부에서 바이러스보다 강하게 번지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좌초의 위기에 있는 YTN을 다시 세우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3. Now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지금을 놓치면 우리 모두가 패배자가 됩니다. 잡초처럼 버티며 일궈낸 성과들이 모래성이 되어 파도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해법은 다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 길만이 불안에 떨고 있는 YTN 가족들을 이성적 판단의 자리로 다시 불러 모으는 길입니다. 지금처럼 징계와 투쟁으로 맞서는 마주보는 전차의 대결에서는 그 누구도 결코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대화를 위한 조건을 다시 한번 제안합니다. 진심으로 바랍니다.
누가 유리하고 불리하고를 떠나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생각해 줄 것을 다시 한번 제안합니다.
첫째, 그동안 내려진 모든 고소·고발과 징계를 철회해야 합니다. 징계를 당하는 사람이 늘면 늘수록 대화의 가능성은 적어집니다.
둘째, 인사 조치를 원위치 시켜야 합니다. 사측의 인사는 지금이 아닌 사태가 해결된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배가 기울어진 상태에서는 협상의 테이블이 수평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사원들 인사라도 재발령을 내는 방식으로 원위치 시켜야 합니다.
세째, 노조 역시 "끝장투표"를 재고해야 합니다. 적어도 끝장투표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사원 전체 또는 노조원 전체의 의견을 물어봐야 합니다. 출범 당시의 공약이라 하더라도 당시는 지도부를 뽑는 선거였지 공약을 평가하는 선거가 아니었음을 인정해주기 바랍니다. 어울리지 않는 비교지만 대운하도 이 정권의 공약이었습니다.
네째, 공방위를 좀 더 강화해야 합니다. 현재의 사내 공방위 수준이 아닌 좀 더 확대된 공방위를 제안합니다. 사측 추천 10명, 노조 추천 10명 그리고 인터넷 등을 통해 신청과 추첨을 통해 선정된 10명 등 다수의 외부 시청자들이 공방위 구성에 참여할 수 있게 해서 보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정방송의 약속 이행 여부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재신임을 전제로 한 중간평가를 향후 1년 이내에 받을 것을 약속해야 합니다. 평가 방법과 시기를 사전에 구체적으로 약속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후배들에게는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선배들에게는 돌아가는 길이라도 제공하자는 것입니다.
4. YTN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을 이렇게 정의했다고 합니다. 강력한 외부 문명으로부터 도전이 주어졌을 때 성공적으로 응전한 문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문명은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성공적 응전이란 도전의 성격을 이해하고 올바른 대응을 강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맞서 싸워 물리친 문명도 성공했지만 힘이 약할 땐 일단 받아들이고 이를 최대한 이용한 문명도 결국 성공했습니다. 언론특보 출신이 정당한 도전이 될 수 있는냐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의는 아니지만 법질서라는 권력의 힘으로 들어온 도전인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저에게 패배주의자요 기회주의자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글을 올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선배와 후배 모두에게 욕먹을 소리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창 싸움을 진행하는 지금 이 시기에 또다시 올린 글이 "결국 중간평가 하자는 것 아니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최근의 회사 상황을 그저 지켜보기는 더 힘들었습니다. '사랑하는'이라는 표현까지는 아니지만 '형같고 동생같은' 동료 선후배들이 사법처리에 위협당하고 징계에 직면하는 현실을 그저 모른척 넘어가기는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사실 제 이름도 징계 대상에 올라 있음을 처음 알았을 때만 해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설마…" 라는 믿음으로 버티기에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이 조직이 이렇게 흘러가서는 결국 외부의 공격이 아닌 내부의 분열로 좌초하겠다는 안타까움에
용기를 내서 말씀드림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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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00에게
00아! 매일 새벽 국회 기자실에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대변인과 당직자들에게 전화 마와리 돌던 너의 모습이 생각나는구나. 그런데 그런 너를 고발하다니…. 너의 이름이 대상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도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단다. 지금은 지나가는 소나기일 게야. 천둥 번개가 무서워서 우산을 받쳐주지 못하는 선배를 용서해 주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