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교육과 의료 분야는 민생 영역에서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최전선이라 할 수 있다.

 

가계가 어려워질 경우, 먹고, 입고, 마시는 것에서 지출을 줄이면서 견딜 수는 있다. 음식의 질과 여가의 횟수를 줄이는 불편함을 감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비와 의료비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줄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가계가 아무리 어려워도 아픈데 병원에 안 가고 약을 안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에게 교육은 곧 아이의 미래이다. 그래서 생활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자신이 굶을지언정 아이들에게 학교나 학원은 어떻게든 보내려고 한다. 이는 교육과 의료 서비스가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큼을 의미하고, 이로 인해 이 분야가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민생분야 최전선이 되는 것이다.

 

공동체와 연대의 정신을 중요시 하는 진보의 입장에서 교육과 의료 분야는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공공성의 마지노선으로 본다. 즉, 적어도 교육과 의료서비스만큼은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공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개인의 이익과 경쟁을 더 중요시 하는 보수의 입장에서는 효율성과 경쟁우위를 위해서라면 교육과 의료 분야 역시 얼마든지 민영화 내지 상업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이번 교육감 선거가 진보와 보수의 대리전 양상을 띠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보수언론이 가치와 정책 중심의 대결을 '전교조 대 반전교조'의 구도로 몰아가며 이를 이념 대결로 변질시키고 있다.

 

'전교조 대 반전교조'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여기서, '소모적인 이념대결 양상을 생산적인 정책대결로 바꾸자'는 식의 뻔한 공자님 말씀으로 글을 끝내지 않으려면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솔직하게 제기할 필요가 있다.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이번 교육감 선거를 '전교조 대 반전교조'의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이러한 구도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교조로 대표되는 어떠한 가치 또는 상징이 국민의 속마음과 일치되지 않는 점이 있음을 의미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교원평가제 반대'이고, 다른 하나는 '평준화'이다.

 

우선, '교원평가제 반대'로 인해 전교조는 이익집단이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해졌다. 학부모들이 공교육 현실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일부 자질 없는 교사들이 보여주는 몰지각한 행태는 공교육에 대한 불신의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극소수 자질 없는 교사들을 걸러내는 수단으로서 교원평가제에 나름대로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전교조가 지적하는 교원평가제의 문제점은 분명히 그 근거가 있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공교육에 대한 불만의 수위를 고려할 때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행위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다. 진보진영 인사들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교원평가제 문제는 매우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평준화'를 둘러싼 인식은 좀 더 복잡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


평준화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평가의 잣대는 '어느 시스템이 학력신장에 더 도움이 되느냐' 이다. 여기서 학력신장이라 함은 주요과목 즉 '국, 영, 수' 점수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즉, 평준화를 주장하는 측이든 비평준화를 주장하는 측이든 서로 자기 시스템이 더 우수하다는 주장의 가장 중요한 근거를 주요과목 점수를 올리는데 더 유리하다는 것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성교육 이나 특성화교육 등에 대하여도 이야기하지만, 공교육에서 이를 기대하는 학부모는 별로 없어 그냥 구색 맞추기로 끝나는 실정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수준에 맞는 아이들끼리 공부시키는 것이 점수를 올리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국제학력경시대회에서 우리나라 학생이 우수한 성적을 낸다는 사실과 평준화 지역의 평균 점수가 비평준화지역보다 높다는 통계자료 등을 내세우며 반박하기도 하지만, 일선 학부모들에게는 '국제학력경시대회에서 높은 점수를 따게 만든 공헌은 오히려 사교육에 있다'거나 '평준화 지역의 점수가 높은 이유는 비평준화 지역보다 학교가 일찍 끝나 학원에서 공부할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는 비통계적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평준화 정책의 지지자이며 지나친 점수 경쟁은 옳지 않다는 소신을 가진 학부모들 역시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고 있다는 현실은 평준화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으로 옳다'는 생각과 '내 자녀에게 더 유리한 것'의 생각에 괴리가 있을 때 학부모들은 무엇을 선택할까? 자녀의 성적이 상위권에 속할수록 이러한 생각의 괴리는 더욱더 클 것이다.

 

문제 복잡하고 꼬일수록 기본으로

 

그러면, 결론은 무엇인가? 그냥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문제가 복잡하고 꼬일수록 기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 영, 수 실력이 곧 인재인가?'

 

40대 중반 이후로서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이해도가 빠를 것이다. 이 세대의 학부모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인생은 다음과 같이 이미 결정 난 것으로 보였다.


상류층 - 일류대 합격자
중류층 - 그저 그런 대학 합격자
하류층 - 대학 못 간 사람

 

고등학교 졸업 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러한가? 일류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들어가 30대까지 목에 힘을 주던 소위 '상류층'이 지금은 언제 잘릴지 전전긍긍하는 사오정이 되지 않았는가? 또는 이미 퇴직하여 퇴직금으로 음식장사하다 친구에게 돈 빌리는 처지가 되지 않았는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로부터 사람 취급도 못 받던 소위 '하류층'이 30대까지 온갖 고생 다하며 그야말로 하류층으로 살다가 어느새 특정분야에서 자기영역을 구축하여 당당한 중상류층이 되어 있지 않았는가?

 

지식경제에서는 암기력보다 다양성과 창조성이 더 중요시되므로 국영수 실력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 사이의 괴리는 앞으로 더욱더 커질 것이다.

 

아마 이쯤에서 코웃음치는 독자가 생길 것이다. '일류대학을 나와야 제대로 대접받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

 

필자 역시 치열한 입시경쟁을 겪으며 자란 토종이라서 이러한 현실을 모를 리 없다. 획일적으로 서열화된 대학체계가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원흉이라는 것이 필자의 굳은 신념이다. 98점과 97점이라는 의미 없는 점수차이마저 아이들의 미래를 갈라놓을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잔인한 대학의 서열화체계이다. 이러한 서열화를 혁명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1~2점에 목숨 거는 아이와 학부모의 잔인한 희생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대학체계는 교육감 권한 밖의 문제이므로 교육감 선거 국면에서 본격적으로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평준화가 국영수 성적 올리기 유리하다?

 

'평준화가 국영수 성적을 올리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은 별로 설득력도 없을뿐더러 진보진영에서 취할 입장도 아니라는 것이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이다.
 
학부모들은 내 지역의 평균점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아이의 등수와 점수가 중요하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성적을 기준으로 판단할 경우, 전부 다 1등으로 만들지 않은 한 어차피 점수로 아이들을 줄 세우기 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사교육열풍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국영수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 일류대학에 못가는 아이들도 인생에서 충분히 성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한 교육정책 방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정책 두 가지만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지역단위로 방과후 특성화 교육을 강화하여야 한다. 일반대학 진학 외에 나름대로 자신의 진로를 정한 학생들을 위해 맞춤식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요리사가 꿈인 학생이 강제로 밤늦게까지 남아서 미적분을 풀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 시간에 요리사가 되는데 필요한 공부나 실습의 기회를 갖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러한 맞춤식 교육의 기회는 학교 단위로 제공하기 어려우니 지역단위로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0교시금지, 야간자율학습금지 등은 당연히 따르는 부수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둘째, 일선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류대학 지상주의 또는 점수 지상주의 현상을 없애야 한다. 이를 위해 반평균 점수로 담임선생님을 평가하거나 학교별 평균점수로 학과 선생님을 평가하는 관행을 금지시켜야 한다. 또한,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는 선생님의 언행도 금지시켜야 한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개선된 교원평가제를 도입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학력점수로 인한 평가비중을 적정선에서 제한하는 평가방법을 도입한다면 점수 위주의 경쟁 분위기를 개선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일류대학을 목표로 하는 상위권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큰 기대를 기대하지 않는다. '점수 따기 경쟁'을 위한 수업에서 학교는 사교육에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교육이 안 되는 실력 갖고 사교육 흉내를 계속 내다가는 그 위상만 더 추락하고 말 것이다.

 

공교육이 해야 할 일은 점수 따기 경쟁의 허상을 깨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진짜 교육을 차분히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학부모들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국, 영, 수 점수에 올인하도록 하는 것이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옳은 일인가?'라고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며, 이 순간 우리나라 교육혁명은 시작된 것이다.


태그:#교육감 선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