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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 연합교섭단체 구성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인 정당이라고 공인받아온 자유선진당과 진보쪽 이미지를 갖고 있는 창조한국당이 손을 잡은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연대'라는 간판을 내세우면서도 "국회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있다. '가치와 비전의 공유'를 통한 연대가 아니라 '세불리기 야합'이라는 비판이 거센 이유다.

 

두 당 모두 이번 합작의 근본원인을 국회가 교섭단체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0석에 미달한 군소정당들은 국회운영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해, 상임위 배분에서도 소외되고 상임위원장도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작은 정당이지만 의정활동 경험이 많은 인사들로 구성된 자유선진당은 '원내 3당'으로서 캐스팅 보트를 쥐기 위해 교섭단체에 구성이 더욱 절박한 과제였고 결국  3석(구속된 이한정 당선자 포함)의 창조한국당에 손을 내밀었다.

 

자유선진당은 친박연대에 손을 내밀었다가 실패한 상태였다.

 

사면초가 상황... "소수당 한계 벗기 위한 기술적 결합일 뿐"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는 더욱 절박한 상황이었다. 대선과정에서 정동영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부해 그의 기반이었던 시민 사회진영과 괴리됐고, 그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가 확산됐다.

 

대선 이후에는 내부 이탈자가 속출했다. '문국현 현상'을 일으키는 데 크기 기여했던 김헌태, 정범구, 김갑수, 고원, 김영춘, 이정자 등의 핵심인사들과 선대위의 실무책임자들은 그의 기업 CEO식 리더십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결별했다.

 

문 대표에 대해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없다", "대선에서 그의 가치를 알리려 나선 것을 반성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대선과정에서 90억원 정도의 사재를 썼고, 그 후유증으로 차압을 당하는 등 재정적인 압박을 받은 것도 그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이중 45억여원을 당 차입급으로 돌린 것도 문 대표의 이미지를 훼손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총선에서 대운하저지를 전면에 걸고 나서 여권의 핵심 이재오 의원을 격침시키면서 회생의 발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한정 당선자 공천'파동이 터졌다. 문 대표는 수습과정에서 우왕좌왕했다. "경찰이 전과조회기록서를 잘못 발급했기 때문"이라며, 경찰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기도 했다.

 

그때까지 상층의 탈당자들에 대해서는 "자기 이익을 찾아갔을 뿐, 3만5천 평당원들은 굳건하다"고 말해왔으나, 평당원들도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 게시판에는 '탈당신청'글이 이어졌다. 게다가 문 대표 자신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됐고, 검찰의 소환요청을 2번이나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 의석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던 문 대표에게 자유선진당의 이상민 의원이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제안해 왔다. 지난 해 대선 과정에서 대통합민주신당에 있던 이 의원은 문 대표와 여러차례 만났고, 그에 대한 지지 의사를 보여 서로 신뢰가 있었다. 결국 문 대표는 이회창 총재의 손을 잡았다.

 

합당으로 이어질까... 문국현 "내 정체성은 창조적 보수"

 

양당 모두 이번 합작이 합당으로 이어지느냐는 데는 고개를 젓고 있다.

 

특히 창조한국당쪽은 "기술적 접근일 뿐 대운하 저지, 쇠고기 문제, 중소기업 활성화라는 3가지 사안에 대한 이견이 나타나면 언제라도 파기할 수 있는 제한적인 것"이라며 "문 대표는 중소기업부 신설의지가 강한데, 자유선진당이 이를 수용했기 때문에 손을 잡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문 대표의 김동민 전 공보특보는 "거대 정당 중심으로 국회가 움직이는 상황에서 작은 당들은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면서 "그들을 우리쪽으로 끌어와서 극우적 색채를 탈색시킨다면 좋은 일 아니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유선진당쪽은 분위기가 다르다. 이상민 의원은 "합당논의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공감대가 넓어지면 혹시 모르는 것 아니냐"며 "현재 우리 정치에 민주노동당을 빼고는 사실상 큰 차이가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회창 총재도 내부에서 "합당을 하는 것은 안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미지를 걷어내고 보면, 실제 문 대표의 정체성은 보수에 가깝기 때문에 이번 합작은 물론 두 당의 합당으로 이어져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문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핵심기준의 하나인 대북정책에서 보수성을 드러낸 바 있다. NLL(북방한계선)문제와 관련해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을 설득시켜 가지고 이것이 오히려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좋아하실 것", "우리 배도 사실은 못 들어가게 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럼 우리 배는 들어가게 하면서 북쪽에서는 가능한 한 이용을 못하게 하는 그런 생각들을 이제 남쪽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그의 국방분야 대선공약에는 "육군은 북한의 비대칭전력 대응능력을 확보하면서 정예화', '공군은 하이-로우믹스를 통해 북한의 수적우세에 대응하는 한편, 전략적 운영에 적합한 체제구비' 등의 내용이 담겨있어 북한과의 군사적 대결의식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경제분야에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온정주의적 보수' 라는 시각도 있다.

 

문 대표는  이번 합의가 정체성을 무시한 이합집산이라는 비판에 대해 "저를 비롯, 저희 당의 국회의원 2명이 대기업 회장 출신이고 당원 중 기업인 출신이 1000명이나 되는 만큼 (노선에서) 선진당과 배치될 게 없다"고 답했다.

 

YTN과의 인터뷰에서도  "선진당과의 정책 연대로 그동안 가졌던 '진보'의 꼬리를 떼는 것이냐"는 질문에  "나는 보수에 바탕을 두고 개혁을 지향하는 '창조적 보수'"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 게시판 "희망의 불꽃은 꺼졌다"... 탈당신청 줄이어

 

문 대표는 이번 결정으로 다시 한번 위기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당 게시판에는 10건 정도의 탈당신청 글이 올라왔고, "희망의 불꽃은 꺼졌다", "교섭단체 구성못한다고 우리가 버리나", "왜 하필 선진당과..."라는 글도 보였다. 문 대표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도 비판글이 올라오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대변인도 모르게 자유선진당과 교섭을 추진해 '밀실야합'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문 대표는 이날 오후 당직자들에게 "사안의 성격상 극비리에 추진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정치권 안팎의 반응도 싸늘하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이 총재를 향해 "김대중 정권시절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이 인위적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한 것에 대해 거세게 비난해놓고, 같은 전철을 밟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면서 "국회 소수당이라고 하지만 정도를 걸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통합민주당도 "자기부정이다. 문 대표의 정치생명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차영 대변인), "21세기에 전형적인 구식 정치를 하고 있다. 생활비가 없어서 계약동거에 들어간 것 아니냐"(최재성 원내대변인)고 질타했다. "정동영과의 단일화는 그렇게 거부하더니 기껏 이회창한테 가느냐"는 말도 나왔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은 문국현 대표에게 "보수정당으로 투항한 것이므로 진보의 껍데기를 걷어버리라"고 말했다.

 

이번 합작이 문 대표의 지지기반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연구실장은 "이른바 '문국현 현상'은 수도권의 중도진보층에 '반한나라 비민주당' 성향의 20대와 50대 도덕적 보수의 일부가 결합한 것이었는데 이번 합작으로 수도권의 중도진보층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태그:#문국현, #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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