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노동당 단배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천영세 당대표 직무대행.
 민주노동당 단배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천영세 당대표 직무대행.
ⓒ 황방열

관련사진보기


"불행히도 나는 손석춘씨가 민주노동당과 무슨 관계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입당을 하여 당 활동을 하다가 종북파들과 부딪히는 체험을 단 한 번만이라도 해 봤다면 이 상황에서까지 저렇게 태평한 소리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그에 대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적인 해석은 '그는 민주노동당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진중권)

위에서 보듯이 진중권은 두 가지 이유로 손석춘의 '민노당 분당 불가론'을 비판했다. 첫째는 손석춘이 민노당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손석춘이 민노당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손석춘은 태평한 소리 하지 말라고 치받는다.

먼저 손석춘은 전혀 태평하게 말하지 않았는데 진중권은 태평한 소리처럼 들은 것 같아 의아하다. 또한 위의 발언에는 첫째, 진중권 자신은 민노당과 모종의 관계가 있고, 둘째 진중권 자신은 민노당을 퍽 잘 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진중권은 4년 전까지 민노당 당원이었고 탈당 후에도 지하철 입구에서 홀로 민노당 선거운동을 했다고 하니 그로서는 해줄 수 있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발언은 그동안 진중권이 쌓아온 명민한 논객으로서의 명성을 다소 균열시키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 보자. 만약 진중권이 한나라당에 뭔가 충고하는 발언을 했다고 치자. 그랬을 적에 한나라당과 조금 연고가 있는 누군가가 나서 진중권은 한나라당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고, 한나라당을 너무 모르면서 태평하게 말한다고 공격한다면 그때 진중권은 어떤 답변을 준비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손석춘보다도 더 민노당과 관련이 없으며, 손석춘보다도 더 민노당을 알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민노당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는 진중권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진중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진중권에 대해 말 한 마디는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민노당에 대해 말할 자격은 누가 주는가

진보란 무엇인가? '인간의 힘으로 역사를 새로이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이 바로 진보 아니던가?

먼저 종북주의 운운하는 진중권, 그리고 김종철 등에게 묻고자 한다. 스스로 진보를 입에 담으면서 종북이라서 함께 하지 못 하겠다는 말이 그리도 쉽게 나오는가?

그것은 지금 폐품창고에나 가있어야 할 국가보안법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전형적인 수구 ·보수적 가치관이 아닌가? 진중권과 김종철은 종북을 매도하려면 국가보안법에 대해 찬성하는지 아니면 반대하는지부터 먼저 명백히 밝히는 것이 순서에 맞는다고 본다.

"종북파들은…남조선 민중이 실업과 비정규직 사태로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대선구호로 고려연방제를 외치고, 대선후보 뒤에 미군 철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다가 카메라에 찍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들이다. (진중권)"

대관절 남조선의 실업·비정규직 사태와 고려연방제, 미군 철수가 무슨 관계라는 말인가?

여기서 고려연방제나 미군 철수 주장에 대한 가치판단은 따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이런 주장들이, 남조선의 실업이나 비정규직 사태 하에서는 절대 제기되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어디 호들갑을 떨 일인가? 이것이야말로 <조선일보>가 애용하는 어법이 아닌지? 과연 이게 그 날카롭던 논객 진중권의 말인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3%도 못 받았던 김종철의 득표율은 무엇인가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19일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문래동 당사에 마련된 선거개표상황실을 굳은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19일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문래동 당사에 마련된 선거개표상황실을 굳은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정훈

관련사진보기


"종북패권주의가 당을 망쳤다…진보 정당임에도 북한의 핵무기도 비판하지 않고 일심회 사건도 비판하지 않는, 북한을 무조건 추종하는 태도를 종북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김종철)"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이 실패했다는 논리는 뭐니뭐니 해도 3%의 낮은 득표율에 근거를 두고 있다. 나 역시 권영길이 아닌 심상정 같은 이가 대선 후보로 나서 새 바람을 일으켰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선 실패의 책임을 권영길을 민 자주파에게만 전가한다면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본다.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의 득표율이 저조했던 것은 보수의 위세가 유달리 강했을 뿐더러 문국현이라는 변수가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3% 득표율이 그리도 큰 징벌감이라면 김종철이 출마하고 진중권이 지원했던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3%에도 미치지 못한 득표율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다음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비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고 일심회를 비판하지 않았다고 해서 진보가 아니라는 말에도 오류가 있다. 그것은 핵무기의 불균형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유독 북한의 핵무기만 문제 삼으려는 편파적인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심회 비판 운운은 전형적인 덮어씌우기 색깔론에 불과하다. 그들이 북한의 핵무기를 지지했거나 일심회 사건에 동조한 게 아니지 않은가? 비판하지 않는다고 해서 곧장 종북이라고 모는 흑백논리의 수법 역시 <조선일보>의 그것 아니었던가?

보수와 싸울 것인가, 반대 '정파'와 싸울 것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진보란 '다원론을 인정하는 균형 잡힌 가치관'을 이른다. 세상에는 예수에 미치는 사람도 있고 이승만에게 미치는 사람도 있으며 김일성에게 미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신개념의 진보는 이제 이데올로기에 따위에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

종북의 논리가 잘못된 것이라면 종북을 무조건 배타하는 논리 역시 응당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이 땅에는 친미도 있고 종미도 있으며 하물며 숭미까지 큰소리치며 나대는데, 왜 친북이나 종북은 죄악처럼 금기시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손석춘의 주장에는 나름대로의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최소한 정파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진중권이나 김종철의 주장에는 반대자에 대한 맹목적 혐오감이나 정파적 목적성이 개입되어 있는 것처럼 비친다.

이번 대선에서 범여권이 처절하게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민주당-열린우리당-통합신당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난 분열주의에 있다. 미묘한 정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권 분열의 신호탄은 독선적인 친노 세력이 쏜 것이었다. 당시 유시민을 비롯한 친노들은 어제의 동지들에게 예의 서슴없는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

민노당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국민들은 민노당을 기성정당으로 인식한 지가 오래되었다. 대체로 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은 독설을 자제하는 법이다. 자기 정당성에 믿음이 없을 때 서슴없이 독설이 나오는 법이다. 그러니 말을 하되 표현을 정확히 해야 한다. 진중권 자신도 '민노당의 유시민'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지난해 12월 26일 오전 문래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성현 대표 등 참석자들이 구체적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오전 문래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성현 대표 등 참석자들이 구체적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상균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한겨레 토론방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태그:#종북주의, #색깔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