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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혜순 한국여성상담센터 소장
 현혜순 한국여성상담센터 소장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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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거세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주사를 놓는 것이다. 이 방법은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는 데 도움은 될지 모르나, 성폭행 사고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매일 놓을 수도 없고, 또 이 주사를 맞는다고 해서 성적 욕구가 줄어든다고 장담도 못한다."

현혜순 한국여성상담센터 소장의 말이다.

최근 정부여당이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화학적 거세론을 강조하고 있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17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8세 여아 초등학생을 납치성폭행 한  '김△△ 사건'으로 촉발된 화학적 거세 논란과 관련해 화학적 거세를 통해 성욕을 없애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추진해 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정책대안이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있다. 지난 10년간 교도소에 수감된 성폭행범들을 교정치료해온 전문가인 현혜순 소장은 한나라당식 극약처방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근본적으로 성폭행 사건을 줄이는 방법이 아니라는 게다. 대중의 공분을 삭이는 데 필요한 카타르시스는 될지 모르나 실질적으로 성폭행사건을 줄이는 대책이 아니라는 것.

<오마이뉴스>는 지난 14일 현혜순 소장을 만나 최근 아동성폭행사건이 빈발하는 이유와 성폭행사건을 줄일 수 있는 대책 등에 대해 물었다. 그는 교도소에 수감된 성폭행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교육만 실시해도 발생 빈도를 줄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성폭행범으로 수감된 재소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교정치료를 통해 성폭행 발생빈도를 많이 줄였다는 연구결과도 전했다.

다음은 현혜순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성폭행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사후프로그램 전혀 없다"

- 정부는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화학적 거세를 주요 정책방향으로 삼고 있다.
"화학적 거세를 한다고 해도 성폭행에 대한 사고가 바뀌지 않는 한 사건을 줄일 수는 없다. 화학적 거세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주사를 놓는 것인데 이 방법은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는 데 도움은 될지 모르겠으나 성폭행 사고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매일 놓을 수도 없고, 또 이 주사를 맞는다고 해서 성적 욕구가 줄어든다고 장담 못한다.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화학적 거세를 하니 성폭행이 줄었다더라 하는 연구조사 결과를 보고 정부가 추진하는 모양인데, 실제 거세를 해도 성폭행범은 다른 방식으로 또 성폭행을 하더라는 논문도 있다. 그러니 화학적 거세는 함부로 적용할 일이 아니다.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문제를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신중하게 검토하고 효과를 확인한 뒤 시행할 정책이다. 한나라당은 극약처방만 내리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대책이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아니다."

-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아동 성폭행 사건을 줄일 수 있겠나.
"문제는 성폭행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사후프로그램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성폭행 가해자들에게 성폭행이 무엇인지, 왜 성폭행을 하면 안 되는지, 성폭행 피해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건강한 성은 무엇인지, 스스로 갖고 있는 상처나 욕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최대한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

그런데 성폭행 가해자에 대한 교도소 프로그램이 체계화돼 있지 않다. 교정치료를 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강제조항이 아니다. 20~30시간 정도 교육하는데,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수준이다. 권유는 하지만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성폭행범들을 구슬려서 교육하는 수준이다. 이 프로그램을 받으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설득한다. 한시적 프로그램이다."

- 외국은 어떤가.
"캐나다는 수감 내내 프로그램을 계속 돌린다. 성폭력, 분노관리, 의사소통훈련, 약물남용 등 성폭력에 부가적으로 영향을 주는 여러 프로그램을 다 들어야 한다. 교도소에서 출소할 때까지 사회적응단계까지 마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한시적이다. 교도소에는 성폭행 고위험군, 중위험군, 저위험군 등등 분류가 다 있다. 특히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은 장기간에 걸친 교정치료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그런 프로그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최근 영등포교도소의 경우에는 수강명령이 떨어지면 100시간 정도 교육을 받는다. 또 서울 남부보호관찰소도 1주일 단위로 6주~8주간 교육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 교정기관들이 몰아서 한다. 일상생활에 적용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하니 집중력 있게 소화를 못한다."

교정당국은 교정치료에 관심 없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17일 국회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17일 국회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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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 교정당국은 이 같은 교육에 적극적인가.
"법무부 교정당국이 교정치료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치료프로그램이 내실 있게 진행돼야 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전자 발찌로 묶어놓는다고 해서 사후관리가 잘되는 게 아니다.

최근 진행되는 교정치료 프로그램도 2004년 복권기금으로 진행하고 있다. 전국의 성폭력상담소들이 교도소나 보호관찰소와 협의해서 들어가 교육하는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피해자를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민간 여성단체들이 나선 것이다. 최근 들어 하도 성폭행 사건이 많이 발생하니 법무부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아직은 미약하다.

무엇보다 가해자들이 출소한 뒤에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내가 직접 가해자 교정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이래서 재범 방지가 될까 씁쓸하다."

- 교도소에서 가해자들에 대한 교정치료를 하면 효과가 있나.
"예방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만 문제가 아니다. 사건화 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서도 지금 현재 벌어지는 성폭행 사건들은 굉장히 많다고 봐야 한다. 고소고발 직전 단계에서 피해자와 합의한 경우도 많다.

초범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상담을 해보면 그 전에 성폭행했던 경우가 많다. 초범으로 교정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 중에 자신이 초범이지만 그 전에 38번 강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초범이 아니라 이미 38범인 것이다. 그런데도 법률적으로는 초범이다.

성폭행 가해자들에게 '동의' 개념을 알려줘야 한다.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육을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 같은 성폭행 사건은 지속될 것이다."

- 성폭행 가해자들도 알고보면 피해자였다, 이런 시각도 존재한다.
"피해자가 다 가해자가 됐다면 그 많은 피해자가 다 가해자가 됐다는 거냐. 꼭 그렇지 않다. 남성은 피해를 보고 가해로 갈 수 있는 통로와 힘을 갖는다. 그러나 여성은 계속 피해자가 된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취약한 계층이기 때문이다.

또 가해자들이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일 수도 있지만 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학대 받는 상황에 있었던 경우가 많긴 하다. 대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많다. 가족 안에서 의사소통구조가 없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외롭고 정서적으로 취약한 경우가 많다."

초등학생 여야를 납치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가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초등학생 여야를 납치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가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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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어 성충동 조절 못했다는 건 핑계다"

- 8세 여아를 초등학교에서 납치해 성폭행한 김아무개는 어떤 경우라고 생각하나.
"일부의 전문가들은 김씨가 지능이 모자라서 저지른 범행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나름대로 상황을 판단하고 피해자와 장소를 물색했다. 성폭행범들도 처음에는 남모르게 은밀히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한다. 그런데 한두 번 했는데 안 걸린다, 그러면 계속 한다. 성폭행 가해자들이 자기 욕구에만 충실해서 사건을 내는 것은 아니다. 다 정황을 살피면서 한다. 한두 번 성공하면 그 뒤로는 자기 노하우가 생긴다. 해도 안 걸린다는 확신이 서면 범죄는 반복되는 것이다."

- 성충동을 조절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
"나는 술을 먹어서 성충동을 조절할 수 없었다, 그 여자도 좋아하는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등등은 핑계다. 왜 어린아이를 택해 범행을 저지르겠나. 아이가 쉽기 때문이다. 꼭 소아기호증이어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아동이 성인여성보다는 손쉽고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범행대상으로 삼는 거다. 아이는 성인여성에 비해 덜 위협적이고, 힘도 없으며, 꾀면 쉽게 넘어온다. 또 겁만 주면 된다.

김아무개도 술 때문이라는 것은 핑계다. 아이의 눈을 가리고 끌고 갔다는 것은 매우 전략적으로 계획을 세운 결과다. 한 아이를 타깃으로 삼았다가 도망가버리니까, 다음 타깃을 노린 것이다."

- 김아무개 사건은 학교 안에서 벌어져 더 큰 충격을 줬다. 학교안전대책이 쏟아지는데.
"CCTV 설치는 범인을 잡을 때는 도움이 되지만 예방효과는 없다.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에 쫓아갈 수 없다. 경비제도가 사라졌다는 것도 문제다. 경비뿐 아니라 학교 안에 경찰이 상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주변에 112 초소도 설치하고 계속 순찰을 돌아야 한다. 문방구 할아버지도 성추행하는 판에 학교 주변 안전지킴이 설치는 효과적이라고 볼 수 없다."

- 8세 A양의 피해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아는 사람에게 당한 경우보다 모르는 사람에게 당한 경우 후유증은 훨씬 크다. 신체적 외상으로 인공항문, 성기파손 등 외적 상처가 크다. 또 트라우마도 아주 심각하다. 극심한 공포다. 심리치료를 잘하지 못하면 평생 일상생활이 어렵다. 성폭행을 당했던 곳과 비슷한 골목과 장소는 절대로 못 지나간다. 학교와 국가가 손해보상을 해야 한다."

- 과거에 비해 성폭행 방지운동이 줄어든 듯하다.
"1990년대만 해도 분연히 일어나 데모했다. 각종 엄마들의 카페나 모임 등이 나서야 한다. 법무부에 건의도 해야 한다. 애들 과외공부 시키는 것보다 성교육 잘 시키는 게 훨씬 중요하다. 아무리 공부 잘해도 성폭행 당하면 치유하기 쉽지 않다. 최근엔 대학가 성폭행도 만연하다. 도처에서 손만 뻗으면 되는 가해자들이 타깃을 노리고 있다. 개인의 힘으로 이런 환경을 개선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 어떤 인식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고 보나.
"성폭행은 당해도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니 더 맘놓고 활개친다. 그러면 안 된다. 엄마들도 일단 당하면 잊어 버려라, 재수없다 생각해라 뭐 이런다. 이게 관행이다. 그러나 반드시 신고해서 잡아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습범을 길러내는 꼴이 된다.

계속 신고해야 한다. 성폭행을 저지르면 반드시 걸린다는 법칙이 생겨야 한다. 가해자 가족들은 도시락 싸갖고 다니면서 신고하지 말라고 부탁하는데, 그렇다고 나 혼자 입 다물고 있으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조용히 넘길 일이 아니다. 이게 가해자를 양산하는 지름길이다."

- 가해자에 대해서는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보나.
"연중 상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교도소에 성폭행 가해자로 수감되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 의례적으로 원하는 사람에게만 교육할 게 아니라 의무적으로 최소 16주 이상은 해야 한다."


태그:#아동 성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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