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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일)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주제는 '청년실업'이었다. 이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청년실업의 주요 원인을 좋은 직장만을 찾으려는 청년들의 안이함에서 찾는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청년들에게 지방중소기업의 생산현장도 마다하지 않고 취업하라고 단호하게 권유하고 있었다.

 

전체 산업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고용 비중은 87~88%에 이른다. 따라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률을 높이는 것이 기본 방향에서는 맞다. 그런데,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하지 않으려고 하는 원인 진단이 잘못되었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단지 안이해서가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는 자신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 중소기업에서 젊은 시절을 불태울 경우 자신의 전문성과 기술이 향상되어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면, 우리나라 청년들의 대부분은 젊은 시절의 고생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갖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고, '중소기업 취업=노동빈곤층(Working Poor)'인 경우가 대다수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중소기업이 확신 못 주는 이유, 알고는 있나

 

그렇다면, 청년들의 안이함을 질타하기 전에 중소기업이 왜 청년들의 미래가 될 수 없는지 그 구조적인 원인부터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일 것이다.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여기서는 중요한 몇 가지만 지적하겠다.

 

우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부당한 하도급 관계와 대기업의 중소기업 아이디어 훔치기가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환율변화, 수입원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 상승 등과 같이 대기업의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하는 경우, 대기업은 자체 기술개발이나 원가절감 노력으로 극복하기 전에 먼저 하청기업에게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방법으로 쉽게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청기업이 납품단가 인하 요구를 거부할 경우 하청업체에서 제외되는 등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부당한 납품단가 요구를 고발할 수도 있지만, 후환이 두려워 섣불리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실제로 삼성SDS의 입찰조건이 부당하다고 고발했던 한 중소기업(구 얼라이언스시스템)은 모든 프로젝트에서 쫓겨났고 지금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

 

오래 전에 어느 중소식품업체에서 누룽지맛 사탕을 개발한 적이 있다. 이게 히트 칠 조짐을 보이자 어느 대기업에서 이를 모방하여 비슷한 사탕을 만들고 막강한 유통망과 자본력을 이용하여 전국적으로 싼값에 유통시켜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하였다. 최초 개발한 그 중소기업은 당연히 망했을 테고. 이처럼 중소기업이 오랫동안 피땀 흘려 만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도둑질한 사례 역시 비일비재하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자신이 최초로 (현대건설에) 입사했을 때 90명의 중소기업이었지만 나중에 최대기업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그건 벌써 40년 전 이야기다. 1980년대 이후, 중소기업에서 출발하여 대기업으로 발전한 기업이 있는가? 창고에서 출발하여 세계 최대 기업이 된 사례는 대기업의 불공정거래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처하는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위에서 예로 든 대기업의 횡포를 없애지 않는 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이는 중소기업이 청년들의 미래가 될 수 없음을 뜻한다.

 

당사자인 중소기업의 신분상 비밀을 철저히 보장하는 독립적인 사법기구인 '경제신문고'를 별도로 조직하여 강력하게 단속하지 않는 한 대기업의 횡포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도 폐지하여 중소기업 당사자도 '경제신문고'에 직접 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R&D 예산 지원방식 바꾸고 중소기업 임금 수준 높여야

 

또한, 중소기업은 돈이 없으니 연봉이 높은 유능한 연구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유능한 연구 인력이 없으니 경쟁력이 저하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도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2007년 전체 R&D(연구·개발) 예산 중 중소기업에 직접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예산은 4%에도 미치지 못한다. R&D 예산의 대부분은 국책연구기관과 대학 등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쓰이는데, 이들 연구기관과 대학이 개발한 기술은 자체 연구 인력이 충분한 대기업에 의해 주로 활용되고 있다. 즉, 국가 R&D 예산의 혜택의 대부분 역시 대기업이 가져가고 있다.

 

중소기업에게 R&D 예산의 혜택이 좀 더 많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R&D 예산 지원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연구기관과 대학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줄이고, 연구기관(또는 대학)과 중소기업 간의 산학공동연구개발에 대하여 프로젝트별로 지원하는 형태를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별로 연구중심대학과 혁신클러스터를 조성해야 한다.

 

한편,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 노동자의 60%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저임금이다 보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연장근무를 밥 먹듯 해야 하고, 그러나 보니 쉬는 시간이 부족하여 자기 자신의 계발에 투자를 할 여력이 없게 된다. 그 결과 대기업 노동자와 생산성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되고, 이는 임금 격차로 이어지게 된다.

 

중소기업 노동자가 과로에서 해방되어 자기 자신의 계발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급 학습휴가제와 학습휴직권을 도입해야 한다. 유급 학습휴가는 노동자가 매년 일정기간 유급 학습휴가를 받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학습휴직권은 노동자가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정규과정의 직업교육을 받기 위해 휴직을 신청할 경우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휴직과 복직을 보장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이로 인한 중소기업의 추가적인 부담은 국가재정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 이외에도 부품소재산업을 육성시키기 위한 'Mentor-Protege 프로그램' 도입,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환경 조성, 중소기업을 위한 컨설팅 지원 확대, 창업보육정책 활성화 등등 여러 가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수십만의 대기업 취업 준비생 양성할 건가

 

이처럼 중소기업에게 불리한 사업 환경을 바로 잡고,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도록 정부가 기술, 인력, 자금 면에서 다방면으로 지원을 해주어야 중소기업이 청년들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이 대통령 연설의 골자는 '청년 여러분이 안이함을 버리고 어디든지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다면, 중소기업, 공공기관, 해외 등에서 여러분이 인턴으로 여러 경험을 쌓을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아마, 세상물정 모르는 청년들이 인턴 경험을 통하여 세상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군소리 없이 열심히 일하는 착한 백성이 될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이 대통령의 뜻대로 수십만 명의 청년이 각 기업과 해외에서 인턴으로 경험을 쌓았다고 하자. 그 후에는 어디에 정착할 것인가? 지금처럼 중소기업이 청년들의 미래가 되지 못한다면, 그 수십만 명은 또 다시 '대기업 취업 준비생'이 될 것이고, 인턴제 확대는 청년실업의 해결이 아니라 청년실업의 유보에 그칠 것이다.

 

12월 1일자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의 제목은 '이명박 정권에 사람이 없다'였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명박 정부의 좁은 인재풀과 편협한 인사구조를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듣고 나니 <조선일보>마저 현 정부의 인재난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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